글은 님이 잉태하니
글은 님이다.
요염한 웃음으로 희롱하여 밤마다 괴롭히고,
훌훌 옷을 벗어 미끈한 몸을
침상 안으로 들이밀어 나를 부둥켜안으니,
황홀한 살결의 스침으로 혼이 녹아
하룻밤에도 몇 번씩이나 담금질 당하여,
밥을 입속에 넣으면서도 밥이 아니요,
잠을 자면서도 잠이 아니라,
어찌 꿈이 따로 있으며 생시가 홀로 설 것인가,
늦가을의 글은 건들이면 터질 것 같은
정열과 얼음장 같은 싸늘함으로 오니,
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도다.
상큼한 표정으로 입술을 갖다 대는가 싶더니,
별안간 냉랭한 미소를 흘리며 서 있고,
죽어도 안 떨어질 것처럼 허리를 감아
몸을 비비다가 내치듯 나를 밀어 별안간 원망을 토하니,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어라,
조마조마한 눈길로 처분만 기다리고 있어라.
님은 변덕꾸러기요,
글은 천만가지 심성을 가졌다.
예고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 멋대로 방문을 드나들고,
나를 실오라기 하나라도 걸치지 못하게 하여
정사의 준비로 시달리게 하니,
염장을 질러대는 님의 요염함을 참지 못하여
겁탈이라도 할라치면 어여쁜 님의 모습이
별안간 칠십 넘은 할망구처럼 변해 버린다.
글은 님의 발자취요, 내 발길이 아니다.
잉태는 님이 하는 것이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라,
낙엽을 밟으며 장독대를 살금살금 돌아서
방문을 들어서는 님의 얼굴에
홍조어린 수줍음이 가득해야 하며,
그윽한 눈빛에 사랑의 열정이 깃들어
내 눈짓 하나에도 겁먹어 고분고분하니,
내가 일컬어 저 위에 뜬 달이 녹두빈대떡이라 하면,
님은 복종하여 군침을 꼴깍 삼킬 것이라,
비로소 정사의 밤을 맞이한다.
글의 옥동자가 님의 뱃속에서 팔딱 뛴다.
첫날밤에 영혼을 흔드는 소리,
입덧에 구역질하는 소리,
내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고 흔들며 산고에 원망하는 소리,
붉은 양수가 터지면서 허벅지로 흘러내리는 순간,
머리를 불쑥 내민 옥동자가 하늘을 두 쪽내는 울음소리.
아하~
님은 어젯밤에 다녀갔네......
가을의 정사도 치루지 않고,
글 / 이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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