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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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은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282회 작성일 2003-02-24 20:46본문
겨울 초입부터 그리기 시작한 자화상이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그림에 있어 초보가 겁도 없이 인물을 그리겠다고 덤빈 것부터 욕심이긴
하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라 시작은 했는데 유화의
기본도 안되있어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밀레전을 보면서도 인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서점의 귀퉁이에 앉아
커다란 칼라북을 한손에 들고 손이 저리도록 도둑공부를 하며 두 번을
개작했지만 아직도 캔바스 속의 얼굴은 평면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화상전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은 당연하다. 화가
들이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아주 궁금했던 것이다. 그들역시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였다.
자신만 보면 두려움에 바들바들 떠는 자신의 강아지가 생각나 개의
형상만 그려놓은 작가, 모든 사물의 주체가 항상 ‘나’라는 인간이라는데서
벗어나 주위의 사물이 주체인 상태에서 보이는 객관화되고 약간은 소외된
듯한 나의 모습도 있다. 그래서 낳설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인간의 얼굴은 ‘얼’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커다란 검은 얼굴 사이를
지나가는 나무 실가지같은 것들이 사람을 지배하는 혈관처럼 보이게 하고,
이 혈관을 통해 사실은 네트워크화 되어가는 인간을 표현하려고 했다고도
한다. 실존으로서가 아닌 조직화의 일부로서의 인간이 그 암울한 얼굴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그림은 하나같이 전쟁이나 다름없다. 예술은 생업과는 다른 일이다.
인간이 먹고 일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 전혀 인간의 생존과는
관계가 없는 일임에도 결국은 인간을 살게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느 사진작가의 말처럼 예술은 분명 쓸데없는 짓이다. 하지만 여러 쓸모
있는 일을 제외한 이 쓸모없는 짓이 의외로 인생을 살게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일 수도 있다고 했다.
시작은 장난과 재미였지만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쓸데있는
짓 이상의 의미를 차지하게 된다. 나를 넓히고 나의 무거움을 가볍게 해주고
나를 채워주고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의 근원이 된다고 화가의 노트에 적혀있다.
자화상전은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화가들이기전에 한 개인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가 좋았고 한치도 자신의 생에대해 방치 하지 않겠다
는 야무진 모습을 보는 듯했다.
모든 예술의 목적이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정신을 치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다.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또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어루만지는 일
이다. 작가는 직접 참여하며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관객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 내부 깊숙이 숨겨진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도 글도 사진도 음악도 힐링상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첫걸음이 자화상인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혹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꿰뚫을 수 있는 깊이. 외양에 가려진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
그림에 있어 초보가 겁도 없이 인물을 그리겠다고 덤빈 것부터 욕심이긴
하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라 시작은 했는데 유화의
기본도 안되있어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밀레전을 보면서도 인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서점의 귀퉁이에 앉아
커다란 칼라북을 한손에 들고 손이 저리도록 도둑공부를 하며 두 번을
개작했지만 아직도 캔바스 속의 얼굴은 평면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화상전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은 당연하다. 화가
들이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아주 궁금했던 것이다. 그들역시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였다.
자신만 보면 두려움에 바들바들 떠는 자신의 강아지가 생각나 개의
형상만 그려놓은 작가, 모든 사물의 주체가 항상 ‘나’라는 인간이라는데서
벗어나 주위의 사물이 주체인 상태에서 보이는 객관화되고 약간은 소외된
듯한 나의 모습도 있다. 그래서 낳설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인간의 얼굴은 ‘얼’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커다란 검은 얼굴 사이를
지나가는 나무 실가지같은 것들이 사람을 지배하는 혈관처럼 보이게 하고,
이 혈관을 통해 사실은 네트워크화 되어가는 인간을 표현하려고 했다고도
한다. 실존으로서가 아닌 조직화의 일부로서의 인간이 그 암울한 얼굴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그림은 하나같이 전쟁이나 다름없다. 예술은 생업과는 다른 일이다.
인간이 먹고 일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 전혀 인간의 생존과는
관계가 없는 일임에도 결국은 인간을 살게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느 사진작가의 말처럼 예술은 분명 쓸데없는 짓이다. 하지만 여러 쓸모
있는 일을 제외한 이 쓸모없는 짓이 의외로 인생을 살게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일 수도 있다고 했다.
시작은 장난과 재미였지만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쓸데있는
짓 이상의 의미를 차지하게 된다. 나를 넓히고 나의 무거움을 가볍게 해주고
나를 채워주고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의 근원이 된다고 화가의 노트에 적혀있다.
자화상전은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화가들이기전에 한 개인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가 좋았고 한치도 자신의 생에대해 방치 하지 않겠다
는 야무진 모습을 보는 듯했다.
모든 예술의 목적이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정신을 치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다.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또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어루만지는 일
이다. 작가는 직접 참여하며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관객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 내부 깊숙이 숨겨진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도 글도 사진도 음악도 힐링상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첫걸음이 자화상인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혹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꿰뚫을 수 있는 깊이. 외양에 가려진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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