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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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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항식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2건 조회 1,208회 작성일 2003-05-12 23:29

본문



<<<<<< 피란민>>>>>>
                     



이 나라 북쪽 끝
압록강변 신의주에서

임진강 넘어
대한민국 영역까지
서울까지

인간 사슬이 이어졌다
피란민 행렬이 이어졌다
이른바 1.4 후퇴 때

국방군과 유엔군이 후퇴하자
북한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너도 나도 남으로 남으로

머리엔 큰 보따리 이고
지게엔 온갖 살림도구들
소 달구지엔 양식을 실었는가 

엄마 아빠 손 잡고 잘도 따라 가더니
한눈 잠깐 팔다가 놓쳐 버린 손
울며 불며 이리저리 헤매는 어린이들

압록강에서 임진강까지
아니 서울까지 이어진 인간사슬
끊어짐이 없었던 피란민의 행렬 

황해도 어느 길가의 시골 아주머니는
"왜들 그렇게 난리들입니까요?"
"인민군대는 우리 군대 아닙니까요"

안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있는가
저 아주머니는 인민군대 첩자 아닌가
불안해 하면서도 가는 길은 바쁘다

하늘에는 미군 비행기가 떠돌아도
사람들은 아무 걱정도 안 한다
하늘 같이 믿고 있는 피란민들

기차도 끊어진지 오래고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또 걷고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고
발이 부르터 터졌는지 자꾸만 아파 온다
신발도 다 떨어지고 너들 너들

점점 더 걸음이 느려지고
걷는 때보다도 쉬는 때가 많아진다
밤이면 빈 집에 들어가서 자고-

지나 오는 집집마다 다 빈집
떨어진 양식 보충도 빈집에서
어느 집에서는 독에 꿀이 가득

임진강은 얼어 붙어 있었다
걸어서 건너고 뒤돌아 보니-
그 많았던 피난민 행렬은 간 곳 없다

나와 몇사람만 맨 뒤의 꼴찌로 남고
앞에도 사람들이 안 보인다
행렬 아닌 작은 섬으로 남은 피란민들

느린 걸음, 쉬고, 자고, 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모두 가 버리고
노중에 만나 일행이 된 대여섯 뿐

그나마 일행중 이발사 한 가족이
安城에 친지가 있다고 떨어지니
남은 사람은 朴淸水와 나 둘 뿐

나는 그때 스물 여섯 꿈 많은 젊은이
그는 나보다 댓살 연하(年下)의 순박한 청년
평양떠날 때 맨처음 길에서 만난 사람

평양서부터 부산 끝까지
그림자처럼 내게 붙어 다닌 사람
지금 생각하면 나의 분신(分身)이었다

나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를 의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덤덤하면서도 정(情)이 들어 있었다

임진강 건너기 전엔 검문(檢問)은 없었는데
건넌 다음부터는 가끔 당한다
한 다리목에서는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했다

그야 줄줄 외웠지 - 나도 朴淸水도
어떤 검문소에서는 날 보고는 무조건 가라 하고
朴淸水만 붙잡고 무조건 딱딱거린다

아무래도 보낼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일행이라 난 좀 기다리다가
혼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한참 가다 보니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
피난길에서 우연히 만난 朴淸水
여러 날 함께 걷고 자고 정도 들었던 친구

혼자 떠나기가 참 안 되었더니
이렇게 안 떨어지는 것도 인연인가 보다
헐떡거리며 뛰어 오는 朴淸水가 반갑다

이럭 저럭 서울이 바라다 보이는
어느 이름 모르는 강변 나룻목
우리는 나룻배를 탔다

드디어 서울 시내로 진입 -
서울 시내는 왕래도 드물고 조용하였다.
나는 길을 물어 가며 남산을 향했다

남산에는 내 형이 살고 있다는 소식
평양서 듣고 왔기에 찾아 가는 길에
남산밑 서울시경찰국에 붙들려 갔다

나는 또 곧 풀려 났다- 5분도 안 되어
어딜 가나 하늘의 천사가 날 돕는가 보다
하지만 뒤에 남은 朴淸水 -

그를 위해서는 해줄 말이 없었다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 - 그래도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으로 혼자 남산에 오르는데

멀리 뒤에서 또 날 부르는 朴淸水의 소리
두 사람의 인연은 소 힘줄처럼 질겼던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남산으로

형의 집으로 생각되는 집에는 사람이 없고
방 바닥에는 피란짐 옮기고 난 후의 쓰레기뿐
우리는 다시 가까운 영락교회로 -

나의 어릴 적 평안북도 宣川 南교회에서
날 가르치시던 姜信明 목사님을 찾아 가니-
15년 전의 내 이름 잊지도 않고 부르신다
 
헤어진지 15년도 넘은 긴 세월에
어찌 내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였던고

갈만한 시민은 다 벌서 서울을 빠져 나가고
마지막 남은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 활동 -
난 부탁도 안했는데 신분증명서도 써 주시고

여기서 제2국민병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대로 부산까지 가라고 하시면서
양식도 얼마간 주시겠단다

나는 사양하고 그 길로 한강철교를 건너야 했다
부산 가는 마지막 기차는 영등포에서 떠난다니까
그런데 철교 입구에서 헌병대에 두 사람이 붙들렸다

붙들려 갈 때도 아무 이유 없었다
그저 들어가서 하루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나올 때도 아무 이유 없었다.

이유 없이 들어갔다가 이유 없이 나왔다
아무런 심문도 조사도 없었다
나올 때는 신분증명서를 돌려 받았다

(朴淸水야 아무 증명서도 없었고)

....아니야. 朴淸水은 뭔가 있었어
국군 평양 수복후 들어선 새 평양시청의
직원신분증명서를 본 듯 해........

두 사람은 영등포에서 기차를 탔다
사람들이 개미 새끼처럼 다닥 다닥 달라 붙고-
매달리고, 지붕까지 가득 자리 잡은 화물차

그래도 젊은 힘에 간신히 화물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차가 가는지 멎는지도 모르는 북새통 속에서

부산 도착이 1951년 1월 4일 오후
평양서 걸어서 출발한 것이 꼭 한달 전-
1950년 12월 5일 아침

나는 부산진교회 목사 형네 집을 찾아 가고
소 힘줄처럼 질긴 인연 朴淸水는 따라 오고
나는 그해 여름 국군에 들어갔다

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용케도 군대 안 가고
사업해서 돈도 벌고 공부해서 박사도 되는데
나는 1955년 봄까지 중동부 전선에서 푹 썩었다

아 - 지금 생각하면
朴淸水는 나의 수호천사(守護天使)였던가
평양의 기림리- 고노꼴-
골목길에서 만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

평양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의 난리판 속에서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가까와졌다가는 멀어지고
가까와졌다가는 또 멀어져간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朴淸水는 이상했다
자나 깨나 나를 떠나지 않는 나의 그림자
그러나 나는 그에게 무관심했다
내 마음은 저 앞의 딴세계에만 홀려 있었다

평양에 홀로 남은 어머니도 잊었다
모든 것을 다 잊었다
그러나 꿈꾸던 신천지(新天地)에서는
날 기다리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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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창윤님의 댓글

이창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예전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피난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지석동님의 댓글

지석동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안녕하세요 지석동 문안입니다 이나라 아픈 현대사 가운데 서서 아프게 살아오신 님의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은 잊어져가는 그어려운 때 단신으로 넘기신 고초를 아주 조금은 짐작하며 머리숙입니다  이사람도 9살에 서대문 형무소 터지는것 보고 산 사람입니다 하여 더 님의 글에 마음이가요 그것은 이민족의 서사시로 기록되는 부분이라 더와 닿는군요
건강하시고 후학들에게 상세히 기록으로 남겨야 역사가 복원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소서 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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