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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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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o_profile 안성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467회 작성일 2003-03-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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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지붕







해마다 사월이면 작천정(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소재)에 화사한 벚꽃이 반발하게 피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일제시대에 심어졌다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2킬로미터에 걸쳐 두 줄로 빼곡이 들어서 있다. 그 길 한가운데를 통과하면 하늘이 보이지 않아 천국의 하얀 터널 속에서 꽃잎을 즈려밟으며 거닐 수 있다.

나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쳐다보면 구멍이 숭숭 뚫리거나 곳곳에 마른 가지가 뻗어 있어 고풍스런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때마침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화사한 꽃잎들이 눈처럼 날려 연세 든 할머니는 물론 중년신사도 동심으로 돌아간다.

봄의 울산은 꽃길이 별로 없어 울산사람들이 작천정 벚꽃 길을 많이 찾는다. 벚꽃을 보기 위해 인근 경주까지 가야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이 몰리는 듯 싶다. 수천 평의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어 다녀가기가 수월한 모양이다.

벚꽃터널에서 3백 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어 아파트 창문만 활짝 열면 벚꽃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그곳에 아무리 주차장이 넓고 먹거리들이 많지만 아파트 7층에서 내려다보면 벚꽃의 또다른 화사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축제날 밤이 되면 잡상인들이 켜 놓은 온갖 색깔의 불빛들이 하얀 꽃잎을 물들여 멀리서 보면 장관이다. 마치 여려가지 색의 파스텔 형광 빛을 발하는 길쭉한 우주선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 발 디딜 틈 없이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 여느 번화가 못지 않게 왁자지껄한 게 번잡스럽기도 하다.

벚꽃축제가 있는 때에는 객지 사람들에게 눈요깃거리를 양보한다. 우리야 항상 보는 것이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멀리서 오는 관광객들은 꽤 볼거리가 많은 모양이다. 팔도의 온갖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비공식적인 사행행위(?)도 즐길 수 있다. 늦은 밤에는 취객들이 소란을 부리는 바람에 산통을 깨지만 그래도 일년 내내 텅 비어 있는 황량한 벌판에 사람이 분비면서 생기가 돌아 웬만한 불편은 감내할 수 있다.

벚꽃터널 주변에는 군데군데 주택이 들어서 있다. 4월 중순이 되면 꽃잎이 떨어지면서 지붕을 하얗게 덮어 버린다. 초가집을 개조해 만든 슬레이트 지붕이 단아하게 보인다. 꽃잎이 눈처럼 소복소복 내려앉아 동화 속의 그림이 된다. 이곳의 4월은 천국이다.



그런데 동화 속 천국의 집에서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 집 안에서 청소년들이 본드를 흡입한다는 신고를 받았을 때에 막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축제의 주인공들은 하나씩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있었다. 꽃잎이 소복소복 쌓였던 지붕 위에 눅눅한 봄비가 얄궂게 풀무질하고 있었다.

천국의 집을 들어서자마자 메케한 본드 냄새가 물씬 풍기면서 코끝을 자극했다. 마당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잡초가 무성하고 바깥으로 돌출 된 마루에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집이었다.

왼쪽 텃밭에는 배나무 몇 포기가 심어져 있었다. 배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밑둥치에 잔가지가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배는 결국 돌배가 되어 쓸모가 없어진다. 집이나 과실나무나 일년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저렇게 흉물스럽게 되어 버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집이라 그런지 마루에 올라서지 않고서도 방문을 열고 곧바로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이라기 보다 덜렁덜렁한 문짝이 이에 맞지 않게 붙어 있었다. 내가 문고리를 확 잡아 당겨서 여는 바람에 아래 쪽 고리가 떨어져 나간 채 매달려 삐거덕삐거덕 소리가 났다.

방안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었다. 막걸리 몇 통과 본드(접착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가스 냄새가 나 앞 뒤 문을 활짝 열었다. 방바닥에 반쯤 든 부탄가스통이 발견되었다.

청소년들은 인기척이 나도 멍하니 눈만 뜬 채 손을 살랑살랑 저으며 도망할 요량도 없어 보였고 아예 사물에 대한 인지가 없는 듯 했다. 경적을 크게 불어 귀를 자극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외부의 맑은 공기를 방안으로 순환시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탄가스를 검은 비닐 봉지에 가두어 입구에 코와 입을 대고 흡입하였고, 막걸리에 본드를 짜 넣어 막걸리와 함께 들이킨 것이 분명했다. 처음 접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들에게 일어날 것을 종용했으나 흐느적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등을 두드리고 몸을 흔들어 깨웠지만 깊은 환각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30분이 넘게 지났어야 가까스로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청소년들은 그때서야 자신들의 잘못을 느꼈는지 한번만 봐달라며 졸랐다. 심하게 호통치며 나무랐다. 막무가내로 매달렸지만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니 달게 처벌을 받아 라고.

다섯 명 모두를 순찰차에 태워 파출소로 보냈다.

육체와 정신이 멍든 청소년들, 탈선한 청소년들이 천국의 지붕을 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천국의 주변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사진 찍어 돌아간 자리에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가 그치고 있었다.

나는 짓궂은 봄비에 죄다 떨어진 꽃잎을 을씨년스럽게 밟으며 축제의 뒤안길에 서성거리다 담배를 물었다. 문득,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 꽃잎으로 가려졌던 벚나무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렸다. 무성하던 꽃잎이 진 자리의 앙상한 가지 위에 한 잎 두 잎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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