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룸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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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항식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1건 조회 1,159회 작성일 2003-06-09 15:02본문
<<<<<< 서울의 룸펜 작가 >>>>>>
오래도 끌었던 6.25 전쟁에 참전
강원도 전방 고지에서 4년여를 푹 썩은
제대군인 나는
염색한 까만 군복을 입고
청량리 역에서 서울 역까지
날마다 걸어서 왔다 갔다 ~~
파고다 공원엔 언제나 단골
거긴 심심한 노인네들과
부랑자들이 모여서 시간을 죽인다
제대후 하릴없는 외돌토리
서울의 이방인 이북내기 나는
노인네들의 野談에 귀가 쫑긋
쪽지에 적기 까지한다
길 가다가도 멍청하니 서서
무엇에 정신이 팔리는지
밤이 오면
자정이 넘도록 원고를 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드디어 룸펜 작가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선다
<희망사>로, <실화사>로, <아리랑사>로
잡지사마다 닥치는 대로 찾아간다
마구 원고를 맡기고 또 맡긴다
여기 저기 어디 맡겼는지도 잊어 버린다
원고의 행방도 차차로 묘연해진다
청탁한 것도 아니니 독촉하기도 그렇고
집엔 전화도 없었다
전화 있는 집이 거의 없었던 시절
다시 찾아갈 비위도 없었고
새달치 잡지가 나올 무렵
서점에 들려서 확인만 하면 그만이니까
잡지에 실렸으면 그야말로 운수대통
그 길로 원고료 받으러 가는 거지
그해 봄부터 늦 가을까지 6개월
뛰어 다닌 보람은 있었다
거둔 수확은 쏠쏠하였다
<희망> 잡지에 이야기 하나 ~
<실화> 잡지에는 "毒婦"라는 제목의 실화소설 ~
<새가정> 잡지에도 수필 하나 ~
그해 여름에는 또
<새가정> 잡지사의 1일 기자가 되어
난지도 <少年市>로 현장 취재 -
그때 그 섬은 쓰레기장이 아니었다.
섬 전체가 고아들이 모여 사는 <三同少年市>
화폐?까지 발행하던 그야말로 특별시
少年市의 시장은 황광은 목사
룸펜 작가는 거기서 며칠을 묵으면서
시시콜콜 심층 취재
이런 때 記者 폼을 한번 잡아 본다고
고아들 식사와 직원들 식사가 다르다는
대대적인 특집 트집기사 -
<새가정> 8월호에는 르포르타즈 1편
<자유신문>에도 3일간 내리 때리고
少年市의 시장을 본때 있게 골탕 먹였지
그러나 별로 실속은 없는 일이었어
나는 여전히 염색한 군복을 입고
서울 거리를 방황하였다
또 그해 8월 14일에는
CBS 방송국에서 30분 짜리 라디오 드라마
1회 각본료가 5천환이었던가
드라마 제목은 <생활의 前哨>
서울 뒷골목 행상인의 구성진 소리 소리
"무우 배추 사려~~, 시금치 미나리 사려~~"
삶의 싸움터에서 들려 오는 피 맺힌 소리 소리
이런 소리들도 모으면 드라마가 되더라고
대한상공회의소 기관지 <산업경제> 8월호에도
"아름다운 생활"이란 제목으로 수필 한편- 거기에는
"국가 경제는 강철과 석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면서
"블랙-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강철 반지를 조국에
약혼 반지로 바치고 싶노라"는 말로 끝을 맺았다.
이 수필이 게재된 걸 보자마자
그 길로 달려가서 원고료를 냉큼
그러고도 룸펜 작가는 여전히 궁핍하였다
전과 다름이 없이 염색한 군복을 입고
온 서울 거리를 방황
원로 소설가 <전영택> 목사가 일거리 하나를 주셨다
<안창호> 애국지사의 조카딸 <안성결>의 노트로
멋진 원고를 만들어 보라는 것
여러 날 밤을 새우고 드디어 탈고(脫稿)
그러나 무료봉사로 끝이 났다
안여사님이 돈이 없으시다는 것
나는 먹느냐 굶느냐 하는 판인데.....
나는 별 수 없이 원고의 1부를
흥사단 기관지 <새벽>에 싣고
5천환인가를 받아서 입에 풀칠
글 제목이 <大寶山의 안도산>이었던가
어느덧 한해는 기울어 크리스마스 아침
동대문경찰서 뒤 일본사람이 살던 2층집
불끼 없는 "다다미" 방
나는 미군용 오리털 침랑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멀뚱 멀뚱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때
누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
날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뜻밖에도 아랫층에 나처럼 세 들어 사는
동대문경찰서 형사 부인이
쟁반 하나를 받쳐 들고 올라왔다
옆에는 어린애 하나가 따라 왔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불에 구운 빵 한 조각과 따뜻한 청주 한 컵
나는 그 따뜻함을 그대로 받았다
그런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신기해
그때 엄마 따라 온 아이 손에는
장난감도 아닌 표지 떨어진 잡지 한 권
내무부 치안국 기관지 <민주경찰>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떨어진 표지 다음 목차에 똑똑하게 보이는
잃어 버린 내 소설 제목 <행운의 천사>
그리고 반가운 내 이름 석자
<아리랑>잡지사에 놓고 온 뒤 행방이 묘연했던
내 원고가 여기 실렸구나 !
나는 춤 출 듯이 기쁘고 또 고마웠다
벌써 여러달이 지나서 낡아 버린 잡지
잡지에 실린 것도 모르고 쪼들리면서
영영 잃어 버릴 뻔 했던 <행운의 천사>
나는 허둥지둥 을지로 입구의 치안국으로 직행-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세상은 참 넓고도 좁은가보다
그 때 그 <민주경찰>의 주필 김상화 시인이
요즘 인기 있는 김자옥 탈렌트의 아버지일 줄이야
나중에 TV 보고 안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
이래 저래 난리 속에 1955년도 저물어 갔다
얼마전 국가보훈처로 부터는
내가 참전유공자라고 참전용사증이 나오고
월 5만원이 보상금으로 두달째 나오는데
내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어 준다나
~~~~~~~~~~~~~~~~~~~~~~~~~~~~~~~~~~~~~~~~~~
오래도 끌었던 6.25 전쟁에 참전
강원도 전방 고지에서 4년여를 푹 썩은
제대군인 나는
염색한 까만 군복을 입고
청량리 역에서 서울 역까지
날마다 걸어서 왔다 갔다 ~~
파고다 공원엔 언제나 단골
거긴 심심한 노인네들과
부랑자들이 모여서 시간을 죽인다
제대후 하릴없는 외돌토리
서울의 이방인 이북내기 나는
노인네들의 野談에 귀가 쫑긋
쪽지에 적기 까지한다
길 가다가도 멍청하니 서서
무엇에 정신이 팔리는지
밤이 오면
자정이 넘도록 원고를 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드디어 룸펜 작가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선다
<희망사>로, <실화사>로, <아리랑사>로
잡지사마다 닥치는 대로 찾아간다
마구 원고를 맡기고 또 맡긴다
여기 저기 어디 맡겼는지도 잊어 버린다
원고의 행방도 차차로 묘연해진다
청탁한 것도 아니니 독촉하기도 그렇고
집엔 전화도 없었다
전화 있는 집이 거의 없었던 시절
다시 찾아갈 비위도 없었고
새달치 잡지가 나올 무렵
서점에 들려서 확인만 하면 그만이니까
잡지에 실렸으면 그야말로 운수대통
그 길로 원고료 받으러 가는 거지
그해 봄부터 늦 가을까지 6개월
뛰어 다닌 보람은 있었다
거둔 수확은 쏠쏠하였다
<희망> 잡지에 이야기 하나 ~
<실화> 잡지에는 "毒婦"라는 제목의 실화소설 ~
<새가정> 잡지에도 수필 하나 ~
그해 여름에는 또
<새가정> 잡지사의 1일 기자가 되어
난지도 <少年市>로 현장 취재 -
그때 그 섬은 쓰레기장이 아니었다.
섬 전체가 고아들이 모여 사는 <三同少年市>
화폐?까지 발행하던 그야말로 특별시
少年市의 시장은 황광은 목사
룸펜 작가는 거기서 며칠을 묵으면서
시시콜콜 심층 취재
이런 때 記者 폼을 한번 잡아 본다고
고아들 식사와 직원들 식사가 다르다는
대대적인 특집 트집기사 -
<새가정> 8월호에는 르포르타즈 1편
<자유신문>에도 3일간 내리 때리고
少年市의 시장을 본때 있게 골탕 먹였지
그러나 별로 실속은 없는 일이었어
나는 여전히 염색한 군복을 입고
서울 거리를 방황하였다
또 그해 8월 14일에는
CBS 방송국에서 30분 짜리 라디오 드라마
1회 각본료가 5천환이었던가
드라마 제목은 <생활의 前哨>
서울 뒷골목 행상인의 구성진 소리 소리
"무우 배추 사려~~, 시금치 미나리 사려~~"
삶의 싸움터에서 들려 오는 피 맺힌 소리 소리
이런 소리들도 모으면 드라마가 되더라고
대한상공회의소 기관지 <산업경제> 8월호에도
"아름다운 생활"이란 제목으로 수필 한편- 거기에는
"국가 경제는 강철과 석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면서
"블랙-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강철 반지를 조국에
약혼 반지로 바치고 싶노라"는 말로 끝을 맺았다.
이 수필이 게재된 걸 보자마자
그 길로 달려가서 원고료를 냉큼
그러고도 룸펜 작가는 여전히 궁핍하였다
전과 다름이 없이 염색한 군복을 입고
온 서울 거리를 방황
원로 소설가 <전영택> 목사가 일거리 하나를 주셨다
<안창호> 애국지사의 조카딸 <안성결>의 노트로
멋진 원고를 만들어 보라는 것
여러 날 밤을 새우고 드디어 탈고(脫稿)
그러나 무료봉사로 끝이 났다
안여사님이 돈이 없으시다는 것
나는 먹느냐 굶느냐 하는 판인데.....
나는 별 수 없이 원고의 1부를
흥사단 기관지 <새벽>에 싣고
5천환인가를 받아서 입에 풀칠
글 제목이 <大寶山의 안도산>이었던가
어느덧 한해는 기울어 크리스마스 아침
동대문경찰서 뒤 일본사람이 살던 2층집
불끼 없는 "다다미" 방
나는 미군용 오리털 침랑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멀뚱 멀뚱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때
누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
날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뜻밖에도 아랫층에 나처럼 세 들어 사는
동대문경찰서 형사 부인이
쟁반 하나를 받쳐 들고 올라왔다
옆에는 어린애 하나가 따라 왔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불에 구운 빵 한 조각과 따뜻한 청주 한 컵
나는 그 따뜻함을 그대로 받았다
그런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신기해
그때 엄마 따라 온 아이 손에는
장난감도 아닌 표지 떨어진 잡지 한 권
내무부 치안국 기관지 <민주경찰>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떨어진 표지 다음 목차에 똑똑하게 보이는
잃어 버린 내 소설 제목 <행운의 천사>
그리고 반가운 내 이름 석자
<아리랑>잡지사에 놓고 온 뒤 행방이 묘연했던
내 원고가 여기 실렸구나 !
나는 춤 출 듯이 기쁘고 또 고마웠다
벌써 여러달이 지나서 낡아 버린 잡지
잡지에 실린 것도 모르고 쪼들리면서
영영 잃어 버릴 뻔 했던 <행운의 천사>
나는 허둥지둥 을지로 입구의 치안국으로 직행-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세상은 참 넓고도 좁은가보다
그 때 그 <민주경찰>의 주필 김상화 시인이
요즘 인기 있는 김자옥 탈렌트의 아버지일 줄이야
나중에 TV 보고 안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
이래 저래 난리 속에 1955년도 저물어 갔다
얼마전 국가보훈처로 부터는
내가 참전유공자라고 참전용사증이 나오고
월 5만원이 보상금으로 두달째 나오는데
내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어 준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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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경숙님의 댓글
![no_profile](http://sisamundan.co.kr/gnuboard/img/no_profile.gif)
그 옛날에도 파고다 공원은 어른들의 쉼터였나봐요..
제가 겪지 못했던 시대를 파노라마처럼 전개해 주시니..
이 또한 저의 복인가요? ㅎㅎ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