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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淸風)에게, 명월(明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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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석기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1,444회 작성일 2003-02-21 15:25

본문

대오리 문살 창호지 위로
청풍과 명월이
먹과 붓을 들고
휙 스치고 지나가더니
해방과 자유로
미루나무 서 있는 마당 휘청거린다
황톳길 밟은 하늘 출렁거린다
잃어버린 것들 뒤에
돌이킬 수 없이 찾아오는 것들
세상의 모든 적막강산 초가집에
화해의 시선을 쏟아붓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억새지붕 진흙 굴뚝
거미줄 쳐진 처마와 보꾹
둘둘 말린 채로 서 있는 대발
구석에 쳐박힌 낡은 호미
자루 썩고 부러진 낫을 어루만지다가
금이 벌어진 호투마리 지켜보다가
찌그러진 지게에 올라타보다가
움크린 먼지 앉은 산태미
가장자리 테가 떨어져버린 광주리
어두운 골방과 뒷방과 마루까지
청풍에게 한 칸
명월에게도 한 칸
다 내주고 나면
맑은 바람에 세상이 휘청거린다
밝은 달빛에 세상이 출렁거린다
매화나무 꽃 핀 가슴 저린다
마른 강가 꽃병처럼 깨진다
청풍 명월 치마 뒤집어 쓰고
우물속으로 뛰어든다
수런거리며 연꽃처럼 떠오른다
먹과 붓을 들고
풍경 한 점 휙 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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