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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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석기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1,162회 작성일 2003-03-06 09:44본문
그대가 서 있는 이 도시는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이다 그대가 서 있는 이 도시는 적도처럼 뜨거운 화산이다 그대가 서 있는 이 도시는 얼어붙은 빙하의 북극이다 태양은 닿을 정도로 가깝다 조금만 스쳐 지나가도 폭발하듯 먼지가 사방으로 날고 하늘은은 너무 낮아 기어가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그대는 낮에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쫓기듯 발길 돌린다 그러나 쉿, 귀 기울이고 가만히 들어봐, 회색으로 흠뻑 젖은 오후에 무슨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촘촘히 박아놓은 감옥 쇠창살 같은 거리의 건물을 무너뜨리고 뭍으로 올라온 고래가 허공 위로 분수높게 쏘아 올리며 비를 뿌린다 씻겨 파도 되어 떠밀려 가는 이 도시는 너무나 가볍다 그대는 풀잎처럼 흔들린다 그대는 꽃처럼 져버린다 그대는 자정이 되면 잡을 수 없도록 달은 너무 멀리 떠 있다 숨바꼭질하듯 문을 꼭 닫아걸고 집안에 숨어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에게 고래는 소나기를 뿌린다 그대가 누워있는 이 도시는 고래가 그러하듯이 알몸으로 잠수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이 도시는 바다처럼 깊고 아득하다 이 도시는 섬처럼 홀로 떠 있다 이 도시는 고래처럼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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