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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연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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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종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299회 작성일 2005-07-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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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연필 (1)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가을 문턱이었다. 정원의 잔디는 누런 기운 속에 검은 씨가 송송 돋는 때였다. 나는 이층 사무실에서 샤프 연필심의 구멍이 막혀 뚫으려고 머리 부를 빼서 창틀에 대고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그만 미끄러져 창문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 비싼 것도 아니어서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내가 쓰고 있던 것이라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 하지만 내 실수로 이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아있으니까. 창문 아래는 잔디가 깔린 널따란 화단이었다. 거기에는 중간 크기의 향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장미넝쿨도 있었다. 떨어졌다고 짐작되는 곳이 서너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인 것 같은데 아무리 뒤져도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잔디밭을 발로 휘젓고 향나무를 흔들어도 보았지만 종적이 오리무중. 어쩔 수없이 그냥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책상머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머리 없는 몸통. 내가 만약 너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면 너의 효용가치는 영 끝나버리겠지. 어쩐지 샤프펜슬이라는 존재에 대한 안쓰러움이 들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 다음날 아침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아침 이슬이 방울방울 서린 풀잎들을 헤집으며 꼼꼼히 살펴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 다시 자리에 돌아와 넓은 정원을 본다. 까치 몇 마리가 정원의 풀잎을 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저 까치가 먹은 것도 아닐 텐데.

그로부터 한 달 여  정원사가 기계로 잔디를 손질 하였다. 한 뼘 이상 풀잎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르게 평정되어 갔다. 나는 또 다시 정원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샤프 머리가 나오지나 않을 가 해서였다. 그러나 갓 깍은 풀잎 냄새만 짓게 풍겨 올 뿐 여전히 흔적을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찾기가 영 글었나 보다. 다른 폐품이 있으면 그걸 활용해 보는 수밖에.

가을 막바지에 다다랐다. 잔디도 노랗게 물들어 그야말로 금잔디 벌판이 되어 고추잠자리의 향연이 벌어진다. 무성하던 향나무 이파리도 여름날처럼 싱그럽지가 않아 바람이 불어오자 마른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 화려하던 장미도 가시 돋은 가지만 남겨 둔 채 완전히 몸을 움츠렸다. 서리가 내리고 낙엽이 휘날려도 여전히 그것의 형상은 보이질 않으니 이제는 정말 틀렸나 보다. 혹시 이대로 끝난다 할지라도 너에 대한 연민이 이 정도였으니 아무리 미물이라 하더라도 내 본심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알아나 주렴. 샤프연필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집착 하는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이왕 갖고 있던 것 연말 폐기물 일제 정리 때 까지만 갖고 있기로 하자.

크리스마스가 머지않은 어느 날 오후 창문 틈을 통하여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스며들었다. 엉겁결에 창밖을 보니 정원사가 잔디를 태운다. 황갈색의 옅은 불길이 솟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엔 스산스러울 정도의 검은 재만 남아있다. 금잔디의 영화도 결국 이렇게 하여 한줌의 재로 끝나는가 보다. 금빛이 사라진 정원 어쩌면 그렇게도 황량하게 보일 가. 마음이 허전해 사라져 버린 샤프머리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일이면 종무식 묵은 한해를 보내기 위해 오늘은 웬만한 소지품을 폐품으로 정리하자. 새해 인사를 나누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한해가 참 빠르기도 하다.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사무실로 들어오려던 때. 검게 그을린 잔디밭 머리에서 한줄기의 섬광이 비쳐왔다. 일시적이 아닌 너무나 또렷하고 밝은 빛 분명 나를 향한 것 만 같다. 저것이 무엇일가. 가까이 다가가자 백색 물체가 햇빛에 반사되어 선명하게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마음을 진정 시키며 다가갔을 때 아 아 저런 그토록 찾던 샤프머리가 아닌가. 그것을 집었을 때 비록 한겨울의 차가움은 있었으나 마음에는 뜨거운 훈풍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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