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오시는 방법(-클릭-) 회원가입은 이곳으로 클릭++^^ 시작페이지로 이름 제목 내용

환영 합니다.  등단작가이시면 빈여백 동인이 가능 합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매번 로고인 할 필요 없습니다.

벙어리 소녀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825회 작성일 2006-11-08 10:12

본문


(수필)벙어리 소녀 이야기
신외숙

십여 년 전, 제기동의 한 의류 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매장(賣場)에 나타나는 여자가 있었다.

아이라인을 짓뭉개 바르고 화운데이션을 덕지덕지 처발라 TV극에 나오는 유령을 방불케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두 돌이 지났을 아기를 등에 업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길거리 여자이거나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여자임이 틀림없었다. 날만 궂으면 나타나서는 옷을 고르는데 퀴퀴한 고린내가 코를 찔렀다.

옷을 골라도 늘 야한 디자인의 화려한 색상을 고르는데 무조건 값을 절반 이하로 자른다.

행색이 행색인지라 손해 보지 않으면 그냥 파는데 어느날 궁금증이 생긴 상인들이 물었다.

남편은 있느냐, 기거하고 있는 집은 있느냐, 아이들은 친자식이냐, 어떻게 벌어서 생활하느냐 등등이었다.

사람을 판단하는데 익숙한 상인들의 직감은 그대로 들어 맞았다.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데 주로 여관을 전전하며 하룻밤 화대를 받아 아이들과 생활한다고 했다.

아이들도 출처(?)가 불분명했다. 비록 씨다른 자식들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기에 꼭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목욕 좀 하고 다니지 그랬더니 떠돌아다니느라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몸치장은 얼마나 열심인지 직업의식만큼은 철저해 모두 허리를 잡고 웃었다.

그때 매장 뒤편으로는 주택가와 맞붙은 여관들이 많았다. 썬팅을 해 안의 구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여관에서 조바 노릇을 하는 벙어리 소녀가 있었다.

통통한 몸집에 순한 눈망울이 17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여관 시간이 한가한 틈을 타 매장에 나오면 마음에 드는 옷을 만지작거리며 자꾸만 망설였다.

마음에 들지만 돈이 없으니 살 수 없는 제 처지를 아는지 한참 망설이다 그냥 되돌아가곤 했다.

내가 근무하는 코너에 와서는 제일 싼 속옷 몇 가지를 사갈 뿐이었다. 그 아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여관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내는데 술만 취하면 하도 때리는 바람에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더구나 벙어리다 보니 어디에다 대고 하소연 할 데도 없고 허구헌 날 여관 바닥에 엎드려 일하는데 그것도 여자라고 남자들이 추근대는 모양이었다.

어느날인가부터 그 이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봉고차로 여자를 납치해 사창가로 팔아 넘긴다는 범죄조직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모두들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딸을 술집에 팔아넘겼다는 등 폭력배가 사창가로 끌고 갔다는 등 별별 소문이 다 들려왔다.

일 년이 다 되어가던 무렵이었다. 매장에 벙어리 소녀가 나타났다. 여름이었는데 허름한 원피스 위로 배가 불룩했다.

임신 8개월은 되었지 싶었다. 얼굴이 얼마나 상했는지 말이 아니었다. 상인들이 다가가 배를 가리키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몸에서 지린내가 풀풀 나는데 제 몸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옛날처럼 매장을 뛰어다니며 옷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을 알고 보니 너무 기가 막혔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여관을 비우기 일쑤였는데 어느날 그곳을 지나던 사창가 포주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봉고차로 납치해 지방 어딘가로 끌고 갔는데 벙어리라고 남자들이 싫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빨래와 잡일을 시켰는데 그나마 남자들이 달려들어 겁탈을 했던 모양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벙어리 신세였으니 그 심경이 오죽했으랴.
배가 점점 불러오자 그들도 어쩔 수 없었던지 차비를 쥐어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런 딸을 두고 아버지는 예전처럼 똑같이 학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들 가슴 아파했다. 딸의 불행을 방치하고 외면한 결과를 그 아버지는 어떻게 받아들였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학대했던 것일까.

불행은 불행을 낳고, 장애는 더 큰 고통과 슬픔을 유발시키는 것인가.
벙어리 소녀의 그 말 못하는 고통과 아기를 두고 벌어지게 될 끔찍한 아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상상하기도 싫었다. 모두가 소녀의 아버지만 원망할 뿐이었다.

세상에는 남의 고통쯤은 아예 눈감고 사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더구나 그 불행이나 고통이 남의 가정사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벙어리 딸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여관에서 허드렛일이나 시키면서 툭하면 폭행하기 일쑤였던 작자에게 따지거나 항의할 수도 없었던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였다.

남의 고통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안타까워하며 해결사 노릇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외면하고 살기엔 세상이 너무 병들고 타락했다.

천륜마저 외면하고 벌어지는 끔찍한 죄악상들도 따지고 보면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귀를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급격한 이혼률의 증가로 가정이 무너지고 부모있는 고아가 늘어나면서 학대받는 아동도 늘어가고 있다.

자녀를 소유물 취급하면서 살았던 것도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이 자신을 위한 보호물인 양, 세태는 점점 각박해져 간다.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아는 사람을 만나도 선뜻 인사하기가 두려워지는 세상이다. 사람을 이익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기 때문이다.

다단계라는 신종직업이 극성을 떨치면서 전화 받기가 두렵다는 사람마저 있다. 그들은 회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하고 물건을 강매하려 든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상대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않고 자기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별별 거짓말을 다 동원해 사업 설명회에 끌여들이려 한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파멸을 고하는 마지막 수순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내 입장만을 생각해 남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시초가 아닐까.

그것만큼 무서운 고립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벙어리 소녀 이야기를 들려주며 남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고 한번쯤 권면하고 싶다.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학발표 목록

Total 19건 1 페이지
문학발표 목록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9
복수 댓글+ 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84 2007-03-19
18
청계천 풍경화 댓글+ 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3 2007-02-26
17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58 2007-02-16
16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8 2006-12-15
15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77 2006-11-20
14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5 2006-11-16
열람중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6 2006-11-08
12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0 2006-11-01
1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56 2006-10-26
10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9 2006-10-20
9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4 2006-09-29
8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0 2006-09-29
7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8 2006-09-16
6
혼돈 댓글+ 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80 2006-09-02
5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7 2006-08-21
게시물 검색
 
[02/26] 월간 시사문단…
[08/28] 토요일 베스트…
[07/03] 7월 1일 토…
[04/28] 5윌 신작시 …
[11/09] 2022년 1…
[08/08] 9월 신작 신…
[08/08] 9월 신작 신…
[06/29] -공개- 한국…
[06/10] 2022년 ◇…
[06/10] 2022년 ◇…
 
[12/28] 김영우 시인님…
[12/25] 시사문단 20…
[09/06] 이재록 시인 …
[08/08] 이번 생은 망…
[07/21] -이번 생은 …
 
월간 시사문단   정기간행물등록번호 마포,라00597   (03924)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4길 17 사보이시티디엠씨 821호   전화 02-720-9875/2987   오시는 방법(-클릭-)
도서출판 그림과책 / 책공장 / 고양시녹음스튜디오   (10500) 고양시 덕양구 백양로 65 동도센트리움 1105호   오시는 방법(-클릭-)   munhak@sisamundan.co.kr
계좌번호 087-034702-02-012  기업은행(손호/작가명 손근호) 정기구독안내(클릭) Copyright(c) 2000~2024 시사문단(그림과책).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