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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꽃이 피어 있는 언덕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최해춘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4건 조회 1,373회 작성일 2003-07-03 10:15

본문

          망초꽃이 피어 있는 언덕



                                              최  해  춘


도시의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어느 낯 선 시골길을 지날 때 무너진
흙담 벽에 기댄 감나무 잎새에 햇살이 반짝 튀어 오르고 뽀얀 감꽃은 살며
시 숨어서 피어있었습니다.
고향집 우물가에서 피던 감꽃이 아련한 어린 시절을 헤집고 낯 선 마을에
서 걸어 나오고 있었지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던 눈앞에 구름 그림자 느릿느릿 나를 오
라 손짓하며 고향집 가는 길로 나를 끌었습니다.
점심 시간도 이미 지나버린 오후, 고향집 마당은 텅 비어있었고 느긋한  도
둑고양이 빈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인기척에 놀라 우물가 대숲으로 숨어들고,
외양간에서  암소가 목마른 울음을 길게 흘리며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
었습니다.
동구 앞, 어릴 적 송사리를 잡으며 놀던 개울 언덕에 어머니는 챙 넓은 모
자를 쓰고 고추밭 이랑에 고개 내민 잡초를 뽑고 있었습니다.
따가운 햇살이 어머니의 작은 등위로 소복이 쌓이고, 바람도 쉬고 있는 초
여름의 오후는 마냥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 엄마 뭐하노? "
중년도 훌쩍 지난 아들은 어머니 앞에만 서면 철부지 아이가 되어버립니다.
"응, 니 왔나,  집에 가자. 밥은 묵었나? "
어머니의 얼굴에 반가움이 스쳐 지나가는데 구부정한 허리와 아픈 다리는
어머니를 반쯤만 일으켜 세우고 다시 밭고랑에 주저앉히고 맙니다.
"엄마는 아직 밥도 안 묵고 밭 매나? "
가슴이 시려 와 먼 하늘을 보니 솜구름 한 점 휘적휘적 고개를 넘어가고,
앞산 허리춤에서 일렁거리는 굴참나무들 현기증을 불러옵니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뛰놀며 비둘기 알을 훔치던 앞산에는 잡목만이 무성하
고, 재 너머 마을을 이어주던 길들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데 뻐국새 울음소
리만 아직 그 자리에 남아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래 인자 묵으러 가자 " 
아들을 위해 더운밥을 지으시고 냉장고를 뒤져 국거리를 장만하시려는 어
머니의 마음이 벌써 바빠지고 있는 것을 나는 압니다.
"내 밥 묵고 왔다. 볼일이 있어서 요 근처 지나다가 그냥 와 봤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손 하나 거들지 않는 내가 잠시 고향집을 들릴 때마다
민망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둘러대는 거짓말을 오늘 또 둘러대고 말았습니다.
  어린 자식들의 배를 채워주던 크다란 주물 밥솥은 숨바꼭질하던 뒤란에
혼자 숨어 있고. 늙은 부모님의 보온 밥통에는 늘 찰기 없는 두 분의 양식만
소담하게 담겨 하루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잔잔하게 가슴을 적셔오지만 고단한 어머니의 하루 일상
은 한 끼 밥짓는 일도 힘겨운 일입니다.
아직 어머니를 위해 한번도 밥상을 차려보지 못한 마음이 짠하게 아파 오
지만 어머니 곁에 퍼질고 앉아 호미를 밭이랑에 놓으신 어머니 손을 슬며시
잡아봅니다.
" 아부지는......? "
"시내 병원에 안 갔나 , 인자 오실 때 다 됐다 "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의 하루는 새벽에 논밭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이 되지
만, 이제는 삭정이처럼 가늘고 푸석해진 관절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노구도
감당하기 힘들어 매일 경주에 있는 병원을 찾아 치료를 다닙니다.
그런 아버지를 기다려 늦은 점심은 함께 하시려고 어머니는 밭을 매면서
한나절의 생을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 몸은 좀 괜찮나? "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한 걸음걸이와 걸을 때마다 목에서 풀피리소리가 나는
어머니의 몸은 자식들에게 살점을 일일이 다 밝아내 주고 이제는 바람구멍
이 숭숭 뚫린 고목이 되었는데 맹한 물음을 또 던져봅니다.
" 힘이 하나도 없네, 와 이래 자꾸 힘이 없노......"
독백처럼 뱉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습니다.
"내가 너그 아부지보다 먼저 죽으믄 안되는데......"
"죽기는 와 죽노, 일 좀 대강하고 마음을....."
목이 메여와 슬며시 말꼬리를 놓고, 날이 닳은 호미로 널브러진 잡초를 툭
툭 쳐봅니다.
"시내 약장사가 차 가지고 태우러와서 요새 몇 일 구경 갔다 왔다. 그런
데...."
뜬금없이 약장사 이야기를 꺼내놓고 어머니도 말꼬리를 감추어버립니다.
어머니 가슴에 또 옹이 하나가 박혔나 봅니다.
아무에게도 털어 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어머니는 몇 날 몇
일을 이 자식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시골을 돌아다니는 약장사가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내는 일은 처마 밑
곶감 빼먹는 일 보다 쉬운 일입니다.
평생 농사일로 온몸이 성치 못한 노인들의 불편한 몸을 그들은 너무 잘 알
고 있기에 무슨 약이든지 만병통치약처럼 떠들어대면은 순박한 노인들의 주
머니는 쉽게 열려버립니다.
"약은 안 샀다."
"잘 했네, 약 말고 뭐 딴 거 샀나? "
어머니의 얼굴이 순진한 어린아이만 같습니다.
"상복 샀다, 그것도 좀 비싸게 주고 "
"상복이 뭐고? "
"내 죽으면 너 거 입을 옷... 상주 옷을 샀는데... 내가 정신이 없제 "
올해는 봄부터 유난히 비가 많이 오더니 말갛던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들고, 감나무 잎을 툭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뽀얀 감꽃이 발끝에 떨어졌
습니다.
나는 감꽃을 주워 후~ 불고 입안에 넣어 오몰오몰 씹어봅니다.
감꽃이 저 혼자 피었다 지는 외롭고 적막한 날들이 어머니에게 가시는 그
날을 준비하게 만든 것일까요.
뿌옇게 흐려지는 눈을 비비고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니 스쳐간 삶의 흔적
이 드리워진 주름마저 푸석푸석한 묵정밭을 닮아 있습니다.
"잘 샀네 엄마, 언제 사도 사야되는데 미리 샀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어머니의 마음이 편안할 리 없겠지만 어린아이를 토
닥이듯 어머니의 마음을 토닥여야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집에 가자. 엄마. "
어머니를 부축하며 팔짱을 끼고 걷는 밭두렁에 하얀 망초꽃이 무리 지어
흔들리고 더딘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빠지는 어머니의 숨결은 망초꽃 위로
흩어집니다.
동구 밖 신작로에 아버지를 태우고 온 버스가 산모롱이를 돌아 꼬리를 감
추고 나는 그 길을 따라 다시 도시로 나오며 전화를 겁니다.
"엄마. 밥 잘 챙겨 잡숫고..... 씽크대에 올려놓은 봉투.....용돈 하시고..... "
고향집을 다녀오는 길에는 언제나 뿌연 안개가 무겁게 깔려 있습니다.
 

댓글목록

이수진님의 댓글

이수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최해춘 시인님......감사합니다.
가슴이 꾸욱 막히고 눈물이 나려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평안한 날들 되세요. 

이창윤님의 댓글

이창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최해춘 시인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오랫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시사문단을 통해 시인님의 좋은 글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김종웅님의 댓글

김종웅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 불효를 어찌할꼬???
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아파옵니다.못다한 도리를 어찌할꼬??/

여정님의 댓글

여정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최시인님
하루하루 모닥불사위어 가듯 힘이빠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가슴아파 홀로 눈물지을때가 많습니다.
건안하시고  좋은 글로 자주 뵙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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