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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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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1,974회 작성일 2007-06-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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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 마을도 잠이든지 오래인지 산새들도 조용하다. 단지 짝을 못 찾은 개구리 몇 마리만이 외로움을 토해내고 있는 중이다. 나 또한 감기 기운이 있는지 자꾸 오한과 발열을 반복하기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영 잠을 청하지 못하고 일어나 뜬금없이 찻물을 끓인다. 도시와는 달리 시골은 저녁 아홉시쯤  되면 간간이 마을을 지키는 개 짖는 소리만 마을의 존재를 확인해줄 뿐 켜 놓은 컴퓨터 기계음이 더 소음일 때가 있다. 오늘이  꼭 그런 날이다. 하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은 시할머니의 기일이었다.  제사를 모시고 녹초가 되어야 할 육신이것만 어찌된 일인지 너무 피곤하면 더 깊은 잠을 못 청하는 버릇 때문에 어쩌면 오늘도 꼬박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직장을 가진 주부들이 겪으며 감내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처럼 크고 작은 집안 행사이다. 특히 나처럼 맏며느리의 애환은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굳이 표현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어느 누가 애썼다고 알아주는 이 없고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것뿐이라는 걸 나 자신도 잘 알고 있기에.그래서 늘 기일전날 퇴근 후에 제사음식 준비를 위한 장보기를 한다. 그리고 전 부칠 재료를 잘 손질하고 이어 나물이며 생선종류도 정성껏 다듬어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퇴근하여 곧바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데쳐 무치고 탕국을 끓이고 닭을 삶고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하노라면 얼추 제사시간이 맞춰지고 평소에 없는 효자들이 등장하면서 제사는 시작 된다. 열두시가 넘어서 제를 지내야 원칙이지만 요즘은 제도 약식이다. 조상을 모시고 귀가하는 친척들을 배려하여 조금 서둘러 끝낸다. 조상님들은 오시거나말거나 후손들의 편안한 시간에 맞추어 후딱 일을 치루니 아마 조상들도 몇 해를 거듭하다보면 다 적응 되어 일찍 잘 찾아 오실 거라고 친척들이 한마디씩 농을 던진다. 다 자신들을 위한 합리화이다. 반개 불에 콩 구워 먹듯 그리 지내고 상을 치우고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면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새벽이다 .

투박한 머그잔에 부어놓은 찻물은 아직 녹차 잎을 다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머금고만 있다. 연 초록색으로 우러나는 녹차 몇 잎이 자신의 사명을 다했는지 가라앉거나 절반은 그대로 잔 위에 둥둥 떠 있다. 피곤에 묶여 잘 수조차 없는 내 모습과 흡사하여 잠시 쓴웃음 지어본다. 어쨌든 피로를 다스리는 데는 녹차만 한 것이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부드럽게 목젖에 와 닿는 느낌이 참 따스해서 칼칼했던 목이 금 새 개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옥정호 부근에서 찻집을 운영 하고 있는 지인의 농장에서 녹차 잎을 채취해 와서 시루에 쩌 말려놨었는데 요즘 우려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차를 우려내다보니 기다릴 줄 아는 미학이나 식혀가며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는 여유처럼 인생살이 일부가 찻잔 속에 있었다. 물론 다도라는 범절도 있다지만 혼자 마시면서 그렇게까지 격식을 차리며 마시면 그 맛이 더 나을까 싶어 나를 닮은 투박한 머그잔에 가득 우려내놓고 마음 가는 대로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중이다.  이맘때쯤이면 해마다 어머니가 뽕나무와 감잎 새순을 쪄 말려 보내주셔서 냉장고만 열면 늘 느꼈던 어머니의 사랑을 잊은 지 꽤 오래되었다. 삶의 굴레 속에서 난 왜 뒤만 돌아보면 어머니의 흔적이 보이는지 모르겠다. 다시 어머니 말씀을 목울음 삼키는데 어머니 모습이 찻잔 속에 어린다. 더 이상 잠자기는 틀렸나보다. 하루가 열려지는 시간, 찻물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새벽이 아울고 내 삶이 아울고 있는 중이다.

뒷산의 밤새가 기척을 한다. 개도 짖어댄다, 조상님이 이제 사 오셨다가 실망하고 그냥 돌아서며 토해내는 섭섭함의 소리는 설마 아니겠지? 예전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늘 외가의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고 밥까지 먹던 시간이 이 시간쯤 되었으리라. 사뭇 경건한 마음으로 창문을 연다.  천만다행이다. 벌써 부지런한 동네 어르신들이 새벽 운동 길에 들어섰나보다
차를 끓이고 마시다 그리움 까지 우려 울컥 마시고 조상님께 죄스러운 마음에 한 모금 더 마시면서 간편해서 다 좋은 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오늘은  차 한 잔의 기운으로 출근해야 만 하나보다. 설정해 놓은 휴대폰 모닝콜이 나를 진저리치게 하는 아침이다.
추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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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목원진님의 댓글

목원진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읽고 보니 '제삿날'의 이야기였었군요.
정말 큰 며느리님! 매번 수고가 많으십니다.
옛날에 비하면 많이 간소화 되고 합리화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제사 음식의 부담, 만드는 노력, 많은 눈과 입들의 주는 스트레스,등
생각하면, 좀 더 공평 하게 지혜를 짜아내어 치러야 하겠다는것을 언제나 느낍니다.
좋은 글 잘 감상 하엿습니다. 첫 시집 "한라산 돌멩이"에 올렸던 제삿날도 같이 올립니다.

제삿날 



        목원진 



마나님 성내시어 귀가 시간 늦나 보다. 

맛난 성찬 차릴 시간 없다.   

저들의 먹을 음식 뒤로하고 

어린 딸들과 같이 서 제사상 차렸다. 


 
촛대 세우고 잔 가져오고 

수저 세워서 다음에 한 줄로 섰다.   

작은딸  8살이 하는 말,

<어째서 절을 하세요? 아무도 없는데,> 



9살의 언니는, 동생을 질책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라고,   

아빠는 예기하기 시작하였다. 

딸들아 잘 들어라 식구가 죽으면 슬프지.



작은딸이 커다란 눈망울로 

아빠를 쳐다보면서, "응" 한다.   
 
다른 동물들도 그때는 슬퍼하지만,

잠시 지나면 잊고 마는가 싶다.   


 
사람들은 나라와 지역과 종교에 따라

하는 형식이 조금 식 다르나,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여 일 년 만에

그날을 추모하는 것이란다.   


 
간단한 절을 하면서 조상의 영령에

지금의 가족의 건강과 안영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보살펴 주십시오" 

라고 기도드리는 것이란다.   



딸들아! 이것이 다른 동물과 사람과의 

다른 점이란다. 알겠느냐?

딸들은 이구동성으로,

응, 네, 하고 있다.   



그럼 너희도 아빠 엄마의 제사를 하겠니?

다시 응, 네, 하고 화음같이 대답하고 있었다. 
 
마지막 술잔을 올리고 읍하면서 기도를 드린다.

내년까지 잘 보살펴 주십시오....   


 
아빠 큰딸 작은딸

같이 엎드려 

마지막 절을

길게 하였다.

 

김영숙님의 댓글

김영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원진 시인님 이은영 작가님 그리고 금동건 시인님
늘 고맙습니다. 깊은 관심주셔서
더 정진하라는 의미로 받겠습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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