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러운 고백 > - 수필(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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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학원에 중국어 강사 일을 하러 다닐 때였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건너편 출구가 학원으로 다다르는 통로이다. 그 계단 중간쯤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아계셨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두 분이 계셨다. 하이얀 피부에 깡마르신 작은 체격의 한 할머니는 언제나 깨끗한 옷차림에 여름엔 여름대로 통풍이 잘되는 모자를, 겨울엔 겨울대로 멋스런 털모자를 쓰고 앞에는 완두콩이며 달래등 채마밭 한 평을 내어놓고 팔고 계셨다.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남루한 옷차림에 조금은 커다란 몸집에다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바구니 하나에 남들이 던지는 쨍그랑 소리에 의지하며 계셨다. 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성실한 할머니의 고운 모습엔 미소를 지었지만, 한 쪽에서 구걸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는 뵐 때마다 가엾다는 생각보다는 좀 비웃는 듯한 느낌으로 대했다. 두 분의 삶은 정말 너무도 비교가 되어왔다. 추하게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보면, 어떻게 노후를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다다른다. 당연히 깨끗한 할머니의 모습쪽으로 내가 옳다고 여긴 결론을 내려놓으며 그 자리를 스쳐지났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으로 향하던 계단을 오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외소한 몸집의 할머니가 그 추라한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먹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 날 난 몸집이 큰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황달을 넘어 흑달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퉁퉁 부은 그 얼굴을 말이다. 앞의 할머니처럼 야채라도 팔고 싶어도, 병든 체력이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오해였던가? 논어 里仁(이인)편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오직 어진 자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어진 사람이 아님에 무슨 오만으로 그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잠시라도 그 할머님의 삶에 인상을 찡그렸던가? 두 분 모두 서로 나이 들어가며 내 한 몸도 힘에 겨워진 삶일지언정 남의 아픔을 돌보고 있는 작은 체구 할머님의 모습은 진정 인간으로 化(화)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 날 두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넉넉해서 그 아픈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 먹여주신 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다만 아픈 할머니보다 건강이 조금 더 넉넉했을 뿐이었다. 그 날 후로 난 학원에 가는 화, 목요일 두 날은 그 할머니들의 안부가 특히나 궁금해졌다. 어느 날 그 아픈 할머니가 안 보이는 날이면 정말 우울이 밀려왔다. 혹시나 할머니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다음 학원 강의 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다시 보게 되는 날이면 감사한 마음이 분수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그 할머니에게 가족이 있는지 자식들이 있는데도 돌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선 의문을 접기로 했다. 왜냐하면 또 말 못할 아픔들은 서로가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 날 이후 나에게는 두 가지 변화한 것이 있다. 생각에 대한 변화가 그 한 가지요, 생활에 대한 변화가 나머지 한 가지다. 생각의 변화란 어떠한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면 난 최악부터 최선까지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많이 키우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활의 변화란 내 주변에 좋은 일이 생기면 잔돈푼이지만 거리의 힘든 분들에게 드릴 돈을 먼저 챙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들 생일날, 아이들이 상을 받은 날, 강사료를 받은 날 등은 어김없이 주머니에서 작지만 지폐를 미리 챙겨들고 학원문을 나서는 습관을 들였던 것이다. 할머니가 계단 저 아래로 보이는 곳쯤에 서고보면 가슴은 서둘러 콩닥거렸다. 주머니에서 손에 돈을 쥐고는 할머니 앞에 다다르면 얼른 돈을 꺼내놓고 달아나듯 내빼버리는 내 뒷모습에 할머니는 언제나 "고맙습니다다"라는 말씀을 고개도 숙인체 힘겹게 내어 놓으셨다. 그 목소리에 '아니예요. 할머니, 제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요.'라며 마음속에는 오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차라리 말로 뱉어버린 오해였다면 할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겠지만, 내 맘에 홀로 쑥대처럼 쑥쑥 키워버린 오해에서 할머니에게 보이지 않는 누를 끼친 그 마음을 어디 가서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 겨우 잔돈 푼 몇 푼으로 오해에 대한 사죄를 해볼까 치기어린 나의 행동에 마음의 채찍을 심히 가해본다.
그 후로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 생각하며 말을 한다. 그래야 나 스스로에게 오해라는 굴레를 씌우는 어리석음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압구정 학원에 강의를 나가지 않는다. 해서 가끔씩 그 할머니들 닮은 모습의 할머니들을 뵙거나 압구정 이야기가 나오거나 아픈 할머니들을 뵐 때면 그 할머니에 대한 죄를 빌지 못한 시간들이 가시가 되어 나를 콕콕 찔러댄다. 그 앞의 작은 체구의 할머니에게는 나 가진 기운이 없어도 나보다 못한 이를 도울 줄 아시는 그 마음을 정말 본받고 싶다. 인간은 이기적인 망각의 동물이기에 나 또한 할머님들을 잊고 지내고 말겠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아름다운 오해가 아닌 부끄러운 오해가 남은 나의 생애를 반성케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염치없는 마음으로 편안히 앉은 이 자리에서 두 할머님의 만수무강을 빌어본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으로 향하던 계단을 오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외소한 몸집의 할머니가 그 추라한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먹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 날 난 몸집이 큰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황달을 넘어 흑달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퉁퉁 부은 그 얼굴을 말이다. 앞의 할머니처럼 야채라도 팔고 싶어도, 병든 체력이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오해였던가? 논어 里仁(이인)편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오직 어진 자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어진 사람이 아님에 무슨 오만으로 그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잠시라도 그 할머님의 삶에 인상을 찡그렸던가? 두 분 모두 서로 나이 들어가며 내 한 몸도 힘에 겨워진 삶일지언정 남의 아픔을 돌보고 있는 작은 체구 할머님의 모습은 진정 인간으로 化(화)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 날 두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넉넉해서 그 아픈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떠 먹여주신 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다만 아픈 할머니보다 건강이 조금 더 넉넉했을 뿐이었다. 그 날 후로 난 학원에 가는 화, 목요일 두 날은 그 할머니들의 안부가 특히나 궁금해졌다. 어느 날 그 아픈 할머니가 안 보이는 날이면 정말 우울이 밀려왔다. 혹시나 할머니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다음 학원 강의 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다시 보게 되는 날이면 감사한 마음이 분수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그 할머니에게 가족이 있는지 자식들이 있는데도 돌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선 의문을 접기로 했다. 왜냐하면 또 말 못할 아픔들은 서로가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 날 이후 나에게는 두 가지 변화한 것이 있다. 생각에 대한 변화가 그 한 가지요, 생활에 대한 변화가 나머지 한 가지다. 생각의 변화란 어떠한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면 난 최악부터 최선까지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많이 키우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활의 변화란 내 주변에 좋은 일이 생기면 잔돈푼이지만 거리의 힘든 분들에게 드릴 돈을 먼저 챙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들 생일날, 아이들이 상을 받은 날, 강사료를 받은 날 등은 어김없이 주머니에서 작지만 지폐를 미리 챙겨들고 학원문을 나서는 습관을 들였던 것이다. 할머니가 계단 저 아래로 보이는 곳쯤에 서고보면 가슴은 서둘러 콩닥거렸다. 주머니에서 손에 돈을 쥐고는 할머니 앞에 다다르면 얼른 돈을 꺼내놓고 달아나듯 내빼버리는 내 뒷모습에 할머니는 언제나 "고맙습니다다"라는 말씀을 고개도 숙인체 힘겹게 내어 놓으셨다. 그 목소리에 '아니예요. 할머니, 제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요.'라며 마음속에는 오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차라리 말로 뱉어버린 오해였다면 할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겠지만, 내 맘에 홀로 쑥대처럼 쑥쑥 키워버린 오해에서 할머니에게 보이지 않는 누를 끼친 그 마음을 어디 가서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 겨우 잔돈 푼 몇 푼으로 오해에 대한 사죄를 해볼까 치기어린 나의 행동에 마음의 채찍을 심히 가해본다.
그 후로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 생각하며 말을 한다. 그래야 나 스스로에게 오해라는 굴레를 씌우는 어리석음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압구정 학원에 강의를 나가지 않는다. 해서 가끔씩 그 할머니들 닮은 모습의 할머니들을 뵙거나 압구정 이야기가 나오거나 아픈 할머니들을 뵐 때면 그 할머니에 대한 죄를 빌지 못한 시간들이 가시가 되어 나를 콕콕 찔러댄다. 그 앞의 작은 체구의 할머니에게는 나 가진 기운이 없어도 나보다 못한 이를 도울 줄 아시는 그 마음을 정말 본받고 싶다. 인간은 이기적인 망각의 동물이기에 나 또한 할머님들을 잊고 지내고 말겠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아름다운 오해가 아닌 부끄러운 오해가 남은 나의 생애를 반성케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염치없는 마음으로 편안히 앉은 이 자리에서 두 할머님의 만수무강을 빌어본다.
추천8
댓글목록
전 * 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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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자신을 세워 가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래서'良心" 이라 하나 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분량 만큼의 양심을 찾는다면 세상은 살만 할텐데요.ㅎㅎ
머물다 갑니다. 건필 하소서.
정종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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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 없음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그래도 아무리 잊으려 해도 가슴 속에 사랑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어휴~ 글이 넘 작아요 좀만 키워 주세요..
안경 넘어 있는 눈이 쪼매 아파요...죄송(제가 눈이 좀 거시기해서요)...
이은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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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 온 시인님, 남겨주신 걸음에 어찌 고맙지 않겠는지요?
제 자신에게는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자기분량 만큼의 양심이라는 말씀,
꼭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정종현 작가님, 죄송해요. 글자 키우는 법을 몰라서 눈을 피곤하게 해드렸군요?
그런데요, 테그에서 글자 폰트 크기를 키우면 되나요?
에궁!, 아는 게 도무지 없는 저랍니다.
알려주시면 좀 키워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