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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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팔팔의 두 얼굴
김혜련
2013년 3월 30일 토요일, 그녀는 가녀린 몸으로 내 어깨를 감싸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김 선생, 그리 아파하지 말고 수술해요. 우리 며느리도 어깨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수술했는데 요새는 살 것 같다고 합디다.”
팔마문학회 3월 정기모임을 그녀의 집에서 하던 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어깨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사연을 묻더니 친정어머니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와 감싸 안아 주었다. 사실 나는 지난 1년 반 가량을 어깨 통증으로 심신이 위축되고 삶의 질이 떨어진 상태로 살고 있다. 물론 병원 치료를 받고 있긴 하나 그다지 효과는 없다. 병원에서 수술을 권한 것이 꽤 오래 되었지만 한사코 수술을 거부하고 기나긴 통증을 감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답답하긴 하다. 나는 수술이 무섭다. 몇 년 전에 여섯 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기에 내게 수술은 공포에 가깝다. 날마다 어깨 통증 때문에 입술을 깨물면서도 수술을 거부하고 있는 내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며 어깨를 토닥여 주는 그녀의 손길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김 선생, 일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몸이요. 그걸 잊으면 안돼요.”
그랬다. 그녀의 말은 친정어머니의 그것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딴 것 다 필요 읍따. 니 몸부터 챙그라잉. 니만 보먼 짠해 죽것다.”
날마다 직장 일, 가사 일 등으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느라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는 나를 보고 친정어머니는 울먹이곤 했다. 친정어머니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설움에 복받쳐 쏟아질 듯한 눈물을 삼키느라 애를 쓰곤 했는데 그날 그녀의 포옹과 살가운 한 마디가 나를 또 그렇게 만들었다.
그녀 윤광진! 나에게 그녀는 정 많고 따뜻하다는 점에서 친정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내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시다. 오직 딸의 건강과 행복만 걱정하는 친정어머니와 자신의 아들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어머니가 그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어머니의 연세가 88세로 윤광진 여사와 동갑이다. 그래서인지 윤 여사를 볼 때마다 시어머니를 떠올리며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며 시어머니가 윤 여사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두 사람 다 나이는 같은데 어쩌면 그리도 다를까? 윤 여사는 곱고 교양이 있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제도권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평생 일만 하다 한이 맺히고 심신이 모두 늙고 병이 든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로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이해하고 따듯하게 사랑해주기보다 뭔가 항상 못마땅해 하며 윽박지르고 야단치기가 다반사이다. 티끌 한 점 없는 고운 시를 써서 수줍게 낭송하는 윤 여사와 살림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팔팔이라는 숫자의 두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 오래 전에 쓰러져서 무려 7년 동안이나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누워 지내는 시어머니와 늘 건강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시를 쓰다 당신의 정갈한 모습처럼 조용히 생을 마감한 윤 여사, 이들이 바로 팔팔의 두 얼굴이 아닌가 싶다.
우리들 곁에 오래오래 머무를 것 같았던 만년문학소녀 윤광진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어본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저 하늘 어딘가에서 지금 이 순간도 순백의 시심을 지피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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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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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세상을 떠난 지인의 지난 추억이 생생하게 전하여 옵니다
그 연세에 시를 창작하시는 여유와 마음은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울까요
"팔팔과 골골"의 상대어가 떠오르며 정말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금의 현실에서 절실하다는 것을 느껴봅니다
손근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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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드리며...
김혜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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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님, 손근호 님, 반갑습니다. 저는 그 윤광진 여사님을 볼 때마다 그 분처럼 늙고 싶었습니다. 나이는 들어도 곱고 순수하고 명징한 시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작품을 쓰시던 그 열정과 아름다움이 부러웠습니다. 그토록 정정하고 건강하셨는데 너무나도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시더군요. 향년 8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