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2) / 敬興




겨우내 평탄했던 이랑에 난데없이
한번 휩쓸고 가리라 생각했었다
밭고랑마다 자욱한 생사의 뿌연 연기
시끌벅적한 지상에는 온통 불바다로
고주알미주알 다투고 난 뒤엔
검은 절망의 심연만이 바람에 날리고
농부의 손엔 부지깽이가 나를 쫒는다
버적버적 탈 때마다 오싹해진 이 한 몸
깊이깊이 숨으려 해도 밀려드는 공포
버텨볼까! 저 불기둥이 지날 때까지,
거듭되는 삼재에도 피할 길은 있었고
건재하게 재산만 날렸던 그해에도
예리한 농부의 날카로운 채찍소리
태워라 모두 다 죽을 때까지.
지져라 멀리 달아날 때까지.
난 모든 걸 포기하고 스멀거리는
연기를 뚫고 산속으로 냉큼 달렸지
그곳엔 눈 부릅뜬 사슬의 철망들이
날카롭게 쬐려보고 또 꼬나보고
올망졸망 평화롭게 신뢰할 곳
과연 지구상에 어디가 될는지
그 자리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면
새 생명 좋아라! 춤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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