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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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9건 조회 1,147회 작성일 2007-04-24 11:13본문
이 월란
전령병은 방음장치부터 시작하였다. 귀 있는 모든 생명체에 투명방벽이 세워지고 소음 하나 흘리지 않은 채 여기 저기에서 꽃이라는 지뢰포가 터졌다. 채홍빛 시한폭탄들은 정확한 시점에 소리 없이 발발했다. 지궁(地宮)은 바람을 타고 다니며 무언의 타전을 쳤고 포로가 된 지하의 무너진 억장들을 하나 하나 끌어내었다. 그들은 허공에 비색(緋色)의 한숨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하얀 탄피들이 날아다니며 화약연기같은 춘정을 뿌려대자 불지른 춘심마다 색정이 돋아났다. 점거된 동토마다 피어나는 아지랑이 사이로 동장군은 도망을 쳤고 헤픈 전리품들은 땅 위를 색종이처럼 날아다녔다.
갈래꽃들의 열병은 전염병처럼 골목들을 누볐고 점령지마다 화려한 꽃의 깃발이 펄럭이는 무지개빛 전쟁은 이제 막바지의 협상마저 필요없게 되었다. 땅은 꽃으로 초토화되었다.
주모자인 봄은 그렇게 쳐들어왔다
2007.4.23
댓글목록
김영배님의 댓글
김영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침략자[aggressor]및 군사용어에도 조예가깊으십니다
군사용어를 사용하여 아름답게 묘사한 고운글에 잠시머물다갑니다
감사합니다...
손근호님의 댓글
손근호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땅은 꽃으로 초토화...반어법이 오히려 시가 강렬하게 와 닿습니다. 잘 지어셨습니다.
전 * 온님의 댓글
전 * 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의 박학다식하심에 봄이 더욱 강력한 힘으로 승전가를 부르나 봅니다.
대지를 초토화 시키더니 이젠 세뇌공작으로
옴짝달싹도 못하게 옭아매나 봅니다. 무기력증에 빠집니다.ㅎㅎㅎ
건안 하세요!!
홍갑선님의 댓글
홍갑선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역시 무언가 특별하시고 시 짓는 수준이 늘 깜짝 놀랄 지경 입니다,
좋은 시 즐감하고 머물다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금동건님의 댓글
금동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땅은 꽃으로 초토화되었다
즐감했습니다
건필하세요
김일수님의 댓글
김일수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봄의 전령을 침략자로 의인화하여
멋지게 풀어내는 시어들....
좋습니다.....^^
장윤숙님의 댓글
장윤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월란시인님 멋진글에 매료당하고 갑니다. ^^
역쉬 아름다워요 .. 피어나는 꽃들의 승전고로 땅이 초토화 되엇네요 ㅎㅎㅎ^^
이순섭님의 댓글
이순섭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봄이 다가오고 꽃들이 피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것같습니다. 깊이 있는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詩 당선작 정태화 시인님의 `타임캡슐에 저장한 나뿐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놋쇠 숟가락 하나가 여닫이 문 깊숙이 빠져있었어
문고리 구멍에 꽂혀 타다닥 불꽃 튀어 오르는 길
척수(脊髓)를 느끼는 그림자가 일렁이는 달빛 파도에 쓸리며 흐느적거리고 있었어
사내들 깊은 밤 주막거리 화투짝 속살에 파묻혀 놀고 있는 동안
공산월명(空山月明) 밝은 달이 만삭(滿朔)의 몸 쏟아져 내리고
때때로 주인 버리고 오는 신발이 보이는 시간
그 신발 뒤 굽을 척척 빠져 나온 발자국들
저희들 끼리 우루루 나뭇잎 따라 구르다가
돌담장 호박넝쿨 아래로 숨어들어가 잠잠 했어
이른 아침 백주에 궁둥이 까고 있는 호박덩이 몇몇에
어머니가 짚으로 엮은 똬리를 받쳐주다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오줌을 누셨어
그곳에 둥글고 하얀 어머니 궁둥이가 오래도록 내려 앉아 있었어
밭두렁 무성한 잎새 바지 안에 잘 익은 오이들 매달려 있었지
이웃집 밭이랑에서 물오른 가지들이 불쑥불쑥 일어섰어
마음껏 부풀어 팽팽한 그것들과 함께 고추밭에 태양초 고추가 어찌 그리
뜨겁던지 퍼질러 있는 밭고랑에 매끈매끈 고구마들이 얼굴 내밀고 있었어
저녁놀이 아궁이에서 발칵 숯불을 뒤집어 놓을 때
어머니 볼 발그레 일어서 돌아 오셨지
참 이쁘다 우리 어머니 태양초 고추 하나 머금은 듯 입술 붉은 어머니
고무신 탈탈 털어낼 때쯤이면 명(命) 짧은 어머니 사내가 내려놓은
울음들이 달려 나왔지
왈칵 기다림이 반가운 아이들 앞장세운 변성기의 아이 하나가
감나무 키 큰 그림자 사립문 밖 보내놓고 있었지
호롱불 밝혀야 어른어른 떠오르는 밥상
주춤주춤 아랫목이 내어놓은 보리밥 속에
언제 숨어 들었나 고구마들 숨죽이고 있었지
등뼈를 쓰다듬는 어머니 능숙한 손길에
씨앗들 모두 빼앗기고 얌전해진 가지나무 오이냉채기 입맛을 당겼지
놋쇠 숟가락으로 식구(食口)들이 밥을 먹고 있었지
심사위원= 최하림,정일근,최영철
김옥자님의 댓글
김옥자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월도 이제 떠나려 하는데
고운 글과
봄향기에 매료되어 즐거운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