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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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순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11회 작성일 2021-06-14 14:38본문
파리와 지렁이
이 순 섭
낮술에 낮 달이 떠오른다
점심과 맞바꾼 담배 두 갑
그것은 거짓이다
햇빛 받아 땅에 오른 지렁이
파리 떼가 달라붙는다
물 쏟는 호수 관 높낮이 따라 손 가운데 놓고 씻는다
물 주려 한가득 뜻 따라
내 글 위에 파리가 앉았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렁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메마른 세상
나무에 물 주니 나무가 웃는다
지렁이에게 보다 나무에게 필요한 물
지렁이에게 물 뿌려 주는 사람은 알고는 없을 것이다
메마른 붉은 벽돌 마당 위에서
묻어가는 나뭇잎 작년 낙엽이다
참새 펄쩍펄쩍 뛰노는 마당
배롱나무에 물 뿌리니 무지개 섰다
선명한 색깔 잃은 무지개
파리가 지렁이에게 모여든다
마음에 비 고인 물 긴 빗자루로 쓸어 내린다
오래된 나무 뿌리로 인해 평면 잃은 마음
마음은 항상 평평하지 못하다
떨어진 나뭇잎에도 말라 비틀 어진 지렁이
비는 내려도 싱싱하지 못하다
그래 비는 안 내려도 좋아
지렁이는 죽었고 메마른 나뭇잎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싣지만 참새
먹이를 쪼아 먹고 있다 있을 거야
그래 비는 안 내려도 좋아
나무가 있고, 지렁이가 기어 다니고, 파리는 날아다니고
참새는 날아다니다 깡충깡충 뛰어다녀도
어쩌든 하늘은 있구나
어느 듯 수녀원의 어두운 방 불이 커지고 여인은 사라졌다
오랜만에 낙엽이 잠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긴 빗자루로 쓸어낸다
계단 밑은 길이 없는 길
말라붙은 지렁이 주위에 맴도는 파리 떼
낙엽은 쓸어도 떨어질 줄 모르는 지렁이 시체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날아가는 사람들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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