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태양에게 > - 수필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이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6건 조회 2,914회 작성일 2008-08-14 22:30본문
자네가 주는 상처에 풀죽어 납작이 엎드리는 건 누군 줄 아는가? 태생이 독하지 못해 남 해칠 줄 모르고, 사기 칠 줄 몰라 남 등쳐먹지 않고, 뻔뻔스럽지 못해 남 밟고 올라 출세할 줄 모르고, 힘이 없어 탈세할 줄 모르고, 그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내라면 내고, 서라면 서며 법을 지키고 사는 게 자신의 숙명인양 살아가는 이들이란 말일세.
그러나 어떤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 오면 벌겋게 열 내고 화를 달구며 그리도 표독스럽고 지독했던 한 여름의 자네가 그리워, 양지바른 곳을 찾아 웅크리고 앉아 고개 들어 바라보는 것도 다 자네가 한 여름 골탕을 먹인 그네들이 아니던가 말일세.
단칸방에서 덜덜거리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고서도, 수돗가 등목으로 뜨거운 가슴속을 달랠 줄 알고, 우주만물의 모든 생명체의 생명은 귀하다는 것을 깨달아 모기같은 미물에게도 가진 것을 나눠줄 줄 아는 삶이 죄라고야 할 수 있겠나. 그렇게 높디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도 자네가 감쪽같이 모르는 게 있다네. 늘 웅크리며 살아가는 그네들이지만 잘 때는 큰 ‘大’자로 펼치고 참꿈을 꿀 줄 아는 그네들이란 말일세.
노래자(老萊子)처럼 나이 일흔에 색동저고리 입고 춤은 못 출망정 부모님께는 늘 웃는 낯빛으로 대해드리고, 삶은 감자 한 소쿠리 끼고 가진 건 없이도 꿈을 키워가는 법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오순도순 잘 살아가고 있을 테니, 이제 고만 기세 떨구고 돌아가게나. 자네의 생에 비하면 팔백 세를 살았다는 노팽(老彭)의 생도 우스워 내가 하는 말이 어린아이 옹알이쯤으로 들릴 테지만, 자네도 갈 길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과학자들의 말에 한 번쯤 귀기울여보면 지금 자네가 그리 한 성깔을 부릴 때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일세. 그러니 이제 우리 살아있다면 올보다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내년 8월의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함이 옳지 않겠나.
- 더위 먹고 피로에 지친 8월의 어느 날에~~ -
댓글목록
장대연님의 댓글
장대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푹푹 삶아대는 8월의 태양에게 주눅들어 있던 독자들이
이은영 작가님의 태양을 향한 두성처럼 울리는 호령에 조금씩이라도 기력을 추스릴 수 있을것 같네요.
가진자들에겐 조롱 받으면서 애먼 서민들만 괴롭히고 있는 8월 태양 - 이 작가님의 점잖은 충고에 뭐 좀 깨우쳤을겝니다.
김효태님의 댓글
김효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이은영 작가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게 되는군요.
소시민들이 정말 곤욕스런 찜통더위로 생업에
많은 고충과 번민하는 태양을 노여워 하겠지요
작가님의 깊은 관심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고운 심성에 가슴이 찡하게 울립니다.
귀한 글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좋은 연휴를 유익하게 보내시고
가정의 평화와 건강을 빕니다.
정재철님의 댓글
정재철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게요..산다는게 꼭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는 듯한 요즘입니다.
더위에 쫒기고 시간에 쫒기고 나 자신의 욕망에 쫒기고 ...
하지만 주신글을 읽고 영원함이란 없음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산다는게 그저 그렇게 한 번만 너그러워 지면 될것이었음을..
왜 그때는 몰랐던지.... 지금도 잘 모르겠는지 모르겠네요...
허혜자님의 댓글
허혜자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근검 절약하며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좋은글 많이 감명 받고 갑니다
건안 하십시요.
박정해님의 댓글
박정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8월의 태양이 이은영 작가님께 항변도 못하고 가는군요 ㅎㅎ
반갑습니다 다시 뵙게되면 차라도 한잔 대접해드리고 싶은분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대연 시인님, 새로 생긴 애인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
김효태 시인님, 늘 어여삐 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정재철 시인님, 그렇지요? 말씀처럼 딱 한 번씩만 너그러워지면 될 것을요.^^*
허혜자 시인님, 건강이 상하면 자식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테니
건강을 더 먼저 생각하세요. 근검절약은 좀 덜 젊은 사람들의 몫으로 놓아두시구요. ^^*
박정혜 시인님이시자 화가님, 말씀만으로도 차 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걸요? ^^*
장난스레 쓴 글에도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물어 가는 여름에 건강 유의하시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듯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