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오시는 방법(-클릭-) 회원가입은 이곳으로 클릭++^^ 시작페이지로 이름 제목 내용

환영 합니다.  회원가입 하시면 글쓰기 권한이 주어집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매번 로그인 할 필요 없습니다.

기억색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6건 조회 1,528회 작성일 2008-09-19 15:24

본문

기억색*     


                                                                                              이 월란 




앞마당 오른쪽에 서 있는 단풍나무, 8월 말부터 성급히 달아올라 온통 핏빛이다
드문드문 뒤쪽에 초록잎들이 보여 돌아가 보니 동향으로 뻗은 반신만 발갛다
반신이 불수인가 성급한 한쪽만 먼저 햇살에 익어버렸나


중3 가을소풍 날이었던가, 아버진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셨고
엄마와 큰언닌 해가 지도록 마비된 아버지의 반신을 주물렀었다
뭔 조치를 치했는지 용케도 완쾌되신 아버진 해마다 눈밭에 두 발자국 선명히 찍으시며
돋보기 너머로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시곤 그 후 8년간을 건강히 지내시다 가셨다

 
그 날, 나의 반신은 소풍을 따라갔었고 반신은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혹여라도 안방으로부터 곡소리라도 새어나올까 물방울을 헤아리며 몸이 굳어 있었다
아버지의 반신은 우릴 위해 계속 돈을 벌어 오실 것이며
나머지 반신은 우릴 가난이란 폭군 앞에 꿇어 앉힐 것이었으므로
반신은 성질 못된 막내딸에게 한번씩 고함을 지르시겠지만
나머지 반신은 침을 흘리시며 실룩거리실 것이었으므로


그 후에도 멀쩡히 걸어나가시는 아버지의 반신을 보며, 반듯이 걸어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보며 절망의 기억색은 경계도, 예고도 없이 마비를 일으키곤 했다
굉음을 삼키고 언제라도 송두리째 몸져 눕는 한뼘 세상이
우리를 속국처럼 거느린 아버지의 거대한 제국이었으므로


아버지의 반신은 농담처럼 재생되고 부활되었는데
나의 성적은 정확히 반에 반씩 몸져 누웠다
사과를 먹을 때조차 희망과 절망을 반반씩 베어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높아지고 있어도 반신은 추락하고 있어 다시 중심을 잡아야 했고
키가 자라고 있어도 반신은 땅 속으로 벌벌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튼튼한 한옥의 성벽은 밤마다 정확히 반쪽만 균열이 일었다


나의 반신은 유년의 희원을 과감히 삭제 당하고 대신 허무로 채워졌으며
허광의 피말강이로 정확히 반신만 붉은 생리를 시작했다
지금, 저 앞마당의 반쪽자리 단풍나무는 서둘러 폐경을 맞은 갱년기의 여자처럼
혈청이 부족하여 홍엽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떨어져 내릴지 모르겠다


반은 울고 반은 웃는 삐에로의 얼굴이 어쩌면 그리도 낯이 익던지
희극 속에 점점이 박힌 비극의 판토마임이 어찌 그리 고요한지
절망을 이식받은 사춘기의 가을은 그렇듯 반신만 화들짝 달아올라
충혈된 반신이 향방없이 접붙여진 나무가 되어 소슬소슬 가을이 되어 운다


                                                                                          2008-09-18



* 기억색(記憶色) : ꃃ〖심리〗과거의 기억이 색깔의 체험에 영향을 주는 현상. 회색 종이를 나뭇잎
                          모양으로 오려 놓고 약한 불빛 아래에서 보면 녹색으로 보이는 일 따위이다.




추천4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전 * 온님의 댓글

전 * 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먼-  회상의  빈터에서
잊었던 것들을 간추려 봅니다.
퇴색한 기억 속에는 이제 아무것도 발견 할 수가 없네요.
빛바랜 흑백사진 처럼...
이제  다시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할뿐,....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월란 시인님,
건안하시고,  여전히 예쁘시겠지요?

이월란님의 댓글

이월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온 시인님..
그동안 어딜 다녀 오셨나요, 혹 편찮으셨나요..
새가을이 오고 천지가 다시 물들어도
먼 회상의 기억색은 결코 물들지도, 바래지도 않는
한뼘의 성역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반가우신 시인님..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며 고운 글 많이 쓰시길 빌어드립니다.

장대연님의 댓글

장대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심리학 용어이지만, 이 시인님의 깊은 사고와 체험으로 우려낸 싯귀를 감상하면서
기억색이라는 것의 개념도 잡힐 뿐아니라
내 자신의 기억색이 선연히 잡히는 듯 합니다.
귀한 시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월란님의 댓글

이월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대연 시인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지요?
바쁘신 중에도 챙겨주신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 2주간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인님도 뵐 수 있게 되어 기쁘답니다. 건안하시고 건필하십시오.

김상중 시인님.. 안녕하세요 시인님.. 가끔 올려 주시는 글 감사히 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제의 추억들이 반 이상이 아닌가 합니다.
늘 건강하시며 행복한 가을 되시길 빌어드립니다.

빈여백동인 목록

Total 460건 3 페이지
빈여백동인 목록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추천
380
죄짐바리 댓글+ 7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2 2008-06-02 6
379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5 2008-08-16 3
378
실내화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5 2007-07-16 0
377
어떤 진단서 댓글+ 8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1 2007-07-02 1
376
의족(義足) 댓글+ 8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4 2007-02-04 6
375
몸 푸는 사막 댓글+ 3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3 2008-08-26 3
37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3 2008-05-07 6
373
까막잡기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3 2008-09-17 4
372
그냥 두세요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0 2007-07-08 0
371
당신에게도 댓글+ 7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8 2007-06-26 0
370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0 2007-05-29 0
369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7 2008-08-22 6
368
뒷뜰의 장미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6 2007-06-06 0
367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6 2007-02-08 0
366
댓글+ 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5 2008-09-15 3
365
투명한 거짓말 댓글+ 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5 2008-10-12 4
364
눈의 혀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8 2007-06-03 0
363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8 2007-07-09 0
362
미로아(迷路兒) 댓글+ 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4 2007-08-04 0
361
선물 댓글+ 10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3 2007-07-12 0
360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1 2008-05-06 3
359
꽃그늘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0 2007-08-18 0
358
동굴 댓글+ 9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9 2007-08-03 0
357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9 2007-08-27 0
356
심문 댓글+ 1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7 2008-10-19 1
355
만성 (慢性) 댓글+ 7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3 2007-06-27 0
35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3 2008-07-05 2
353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2 2007-09-15 0
352
저녁별 댓글+ 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1 2008-03-26 4
351
사랑아 1, 2 댓글+ 8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7 2007-07-13 3
350
물 위에 뜬 잠 댓글+ 9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4 2008-04-10 9
349
바람의 길 2 댓글+ 10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8 2007-08-08 1
348
원죄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4 2008-03-20 12
347
수화 (手話) 댓글+ 8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0 2007-06-08 0
열람중
기억색 댓글+ 6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9 2008-09-19 4
34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2 2008-08-10 0
344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9 2008-08-09 0
343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8 2007-06-05 0
342
들꽃 댓글+ 10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6 2007-07-11 2
341
호감 댓글+ 5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 2007-05-24 0
게시물 검색
 
[02/26] 월간 시사문단…
[08/28] 토요일 베스트…
[07/03] 7월 1일 토…
[04/28] 5윌 신작시 …
[11/09] 2022년 1…
[08/08] 9월 신작 신…
[08/08] 9월 신작 신…
[06/29] -공개- 한국…
[06/10] 2022년 ◇…
[06/10] 2022년 ◇…
 
[12/28] 김영우 시인님…
[12/25] 시사문단 20…
[09/06] 이재록 시인 …
[08/08] 이번 생은 망…
[07/21] -이번 생은 …
 
월간 시사문단   정기간행물등록번호 마포,라00597   (03924)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4길 17 사보이시티디엠씨 821호   전화 02-720-9875/2987   오시는 방법(-클릭-)
도서출판 그림과책 / 책공장 / 고양시녹음스튜디오   (10500) 고양시 덕양구 백양로 65 동도센트리움 1105호   오시는 방법(-클릭-)   munhak@sisamundan.co.kr
계좌번호 087-034702-02-012  기업은행(손호/작가명 손근호) 정기구독안내(클릭) Copyright(c) 2000~2024 시사문단(그림과책).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