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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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현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365회 작성일 2018-07-11 08:16본문
입영전야
조 현 동
1986년 11월 9일
오늘은 아무래도 지방병무청으로 가서
언제쯤에야 영장이 나올런지 물어나봐야 겠다
아직은 서슬 퍼른 신군부 세력들이
드세게 판을 치고 있는 제5공화국 체제인데
감히 겁도 없이 다짜고짜 병무청으로 가본다고
하지만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서
군대 갈 생각으로 휴학계를 냈는데
아직까지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마냥 죽치고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
병무청에 가보니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일모레 가는 영장이 하나 있는데 니 갈래 하면서
너무나도 시원시원하고 사나이답게
툭 던지는 담당관의 말투가 웬지 믿음이 갔다
그 믿음에 대해 화답이라도 하듯이
힘차게 용기를 내어서 대답했다
예! 내일모레 가겠습니다!
1986년 11월 11일
논산훈련소 입소 시간을 맞출려면
오늘 모든 준비를 끝내고서
적어도 내일 안으로 대전까지는 가 있어야 한다
부랴부랴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겨우 만날 수 있는 친구 몇몇들과만
번갯불에 꽁 볶아 먹듯이 송별회를 하였다
밤에 늦게 귀가하셔서 벼락 같이 내려치는
아들의 입영 소식에 미쳐 놀랄 사이도 없이
이것저것 챙기기에 정신 없어 하셨던 부모님과 형제들
그래도 어김없이 날은 밝아왔고
드디어 1986년 11월 10일의 아침
아버님 어머님께 큰절로써 하직 인사를 올리고 나와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마치 봇물이라도 터져버린 듯이
꺼이꺼이 격하게
주체할 수조차 없는 대성통곡 소리가 흘러나왔다
난생 처음으로 2년 3개월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사랑하는 부모형제들 곁을 떠나서
그 힘들고도 힘든 군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제서야 제대로 실감이 나기 시작했던가 보다
대전역 근처에서
매우 차분하고 엄숙하게
길고 긴 입영전야의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내일이면 1986년 11월 11일
나는 분명 논산훈련소에서
씩씩하게 저녁 짬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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