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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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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혜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608회 작성일 2012-02-20 11:48

본문

기억을 잃은 아내
 
                                               김혜련
 
30년 전 텃골 밭에는
아내가 심은 고추가
여름밤 불빛 아래 모여드는
날벌레처럼 무성했다.
 
한량인 나는 농사일 싫어
돈 벌어오겠다는 핑계를
대의명분 삼아 대처를 떠돌다
주머니에 돈 바닥나면
고향집 안방에 몰래 기어들어가
세상 모르고 잠을 자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보면
아내는 어느 새 텃골 고추밭에서
묵묵히 김을 매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예순여덟의 나이로
기억을 모두 떠나보내고
세 살 지능의 아이가 되어
고추나무 대신 매실나무를 보고 있다
아내의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나는 몇 년 전 매실나무를 심었다
2월의 한기 속에서
아내를 트럭에 앉혀놓고
매실나무 가지치기를 한다
조금 있으면 아내는
“가자, 가자, 얼렁 지비 가자.”
세 살 아이처럼 칭얼거릴 것이다.
 
일흔 넷의 나는 다리 관절에
이상 신호를 느낀 지 오래지만
기억을 잃은 아내
내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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