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윤재영

어느 미국인 여자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르쳐 주기로 했다. 나이는 서른 살 정도이고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어 혼자 산다고 했다. 다달이 선급으로 받는 것으로 하고 첫 달은 그렇게 지나갔다.

부동산을 한다기에 한국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는 한국사람들에게 선교를 하며 한국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성격도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내 나라말을 열심히 배우려고 하기에, 받는 댓가 이상으로 잘해 주었다.

문제는 두 번째 되던 달부터 돈을 내지 않는 거다. 두 달이 밀렸는데도 아무 말 없이 계속 배우러 왔다. 저녁 한 끼 값이 그녀에게 부담을 주는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사 그렇다면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깜빡 잊어버리고 안 주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돈을 안 내고 배울 작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신경이 자꾸 쓰였는데 마침 연락이 와 돈에 대해 말을 했다. 알았다고 해 놓고는, 그 다음날 전화로 이달은 바빠서 못 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으로 끝났고 그 이후 그녀를 잊고 있었다.

한 달 후, 크리스마스 다음날 아침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의 친구에게 나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우리 집에 잠깐 들르겠다는 거다. 방학이라 식구들이 집에 다 있는데 하필 온다는 시간이 점심때였다. 잠깐이라고 해서 차 한 잔 마시고 갈 줄 알았다. 한 사람만 데리고 오는 줄 알고 커피와 스낵을 준비했는데 세 사람이나 데리고 왔다. 서둘러 다시 커피를 내렸다.

다 마시고 먹었는데도 갈 생각을 안 했다. 준비된 음식이 없기에 라면이라도 끓여 주겠다고 하니 나가서 먹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면서 화제가 먹는 것으로 돌려졌다. 어느 한국친구 집에 갔는데 음식이 무척 다양했으며 불고기, 김치, 만두, 잡채 아주 맛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나도 맛있게 한 상 차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냉장고 안에는 김치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한국 음식이 그리운 사람이다.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는데도 아무도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냉동실에 만두가 있었다. 아는 아주머니가 새해에 끓여 먹으라고 만들어 주셔서 고이 모셔 두었던 거다. 녹이고 지지고 볶아 점심을 차려 주었다.

다들 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나의 친절함에 감탄한다 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그들의 종교단체에 초대했다.나의 종교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그랬다. 문득, 그들이 날 선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다음에 다시 놀러 와도 되느냐고 묻기에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친절하고 유머도 있었다. 나를 찾아 온 손님이고 내 나라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대접할 만큼 했다. 분명 좋은 일을 한 거다. 그런데 왜, 뒤통수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여운으로 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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