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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작 장편소설 '자애(自愛)의 덫'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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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치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1건 조회 1,596회 작성일 2007-06-15 12:34

본문

제 1 장 자애(自愛)의 덫


늦은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는 적막감에 흠뻑 젖은 채 여유를 가장한 몸짓으로 조심스럽게 침몰하고 있었다.
그 어둠 속으로 승용차 한 대가 '나동' 주차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가로등 불빛만이 승용차에서 내린 그의 뒷모습을 희미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비실 직원은 순찰중인지 책상머리에 없었다. 달력 바로 위에 걸려 있는 벽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15층 전층(全層)을 오르내리는 승강기는 문이 열린 채로 1층에 정지해 있었다.
그는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 12층 누름쇠를 눌렀다. 문이 닫히면서 천천히 위로 솟구쳤다.
잠시 후, 아파트 현관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선 그를 반기는 것은 진한 어둠 속에 설렁하게 응고되어 있는 낯익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기류(氣流) 뿐이었다.
"찰칵!"
그가 벽을 더듬어 전원 스위치를 올리자 새하얀 형광등 불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거실은 단조롭다는 표현에 어울릴 정도로 단순했다. 오래된 가죽 소파 1세트와 카펫 그리고 대형 텔레비젼 1대만이 나름대로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간편한 복장으로 거실로 나온 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하나 꺼내 들고는 다시 거실로 나와 여태껏 긴 시간을 함께해 온 소파에 몸을 의지했다.
캔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는 소파에 전신을 내맡기듯 하고는 눈을 감았다. 피로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여느 때처럼 이름모를 무인도로 유배당한 잠은 좀처럼 사면(赦免)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이런 증상을 치유될 수 없는 불면증일 거라고 치부했지만 전문의(專門醫)의 소견은 가벼운 습관일 뿐 크게 염려하거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다시 한 모금을 가볍게 삼켰다. 언제나 그랬듯이 안주 따윈 필요치 않았다.
"후후!"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공허한 웃음이 입가로 번졌다. 오늘도 어제처럼 독한 양주라도 한 잔 해야 잠을 쉽게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헝컬어진 일상(日常)의 리듬에 본의 아니게 습관화 되어버린 자신을 거부하고 부정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숙이 빠져버리는 자신이라는 걸 떨쳐버리지 못했다. 문득 문득 억지로라도 자신을 추슬려야 한다는 경계심이 발동했지만 그리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기력하면서도 몸에 배인 듯한 절도가 엿보이는 제스쳐였다.
'아냐. 아직은 아냐. 지금은 이대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얼마 남지 않은 캔맥주를 마저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억지로 잠을 청했다.

***

텔레비젼 바로 위에 걸려 있는 뻐꾸기 시계의 시침(時針)은 아침 10시에 걸려있었다.
그녀는 아침 햇살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눈부시게 걸려있는 베란다로 성큼 다가섰다. 커튼을 양옆으로 젖히고 한쪽 창문을 열었다.
초가을 미풍(微風)이 약간은 건조해 보이는 그녀의 맨얼굴에 머문다,
이른 아침은 아니지만 산을 끼고 있는 아파트라 그런지 공기는 심호흡으로 마음껏 들이키고 싶을 만큼 여전히 상쾌했다.
베란다에 기대 선 그녀는 시야를 찌르는 회색도시의 아침을 그냥 그렇게 별 의미없이 내려다본다. 변화를 거부하는 완만한 선(線)과 단조로운 각(角)의 흐름이 어제나 다를 바 없었다.
거실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누굴까 하는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서둘러 받아야겠다는 충동 따윈 전연(全緣) 찾아볼 수 없는 다소 여유가 있는 표정으로 베란다를 벗어났다.
전화 방문객은 야하다는 표현보다는 조금은 섹시하게 생긴, 여자로서는 보통은 넘는 미모(美貌)에, 때로는 분위기에 따라 적당하게 수다를 떨 줄 알고 내숭 또한 능청스럽게 내보이는 다소 활달한 성격의 여고 동창인 심혜주였다.
"벌써 할망구 다 된 거야?"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시비(?)였다.
"이 시간에 왠 전화?"
"감시 전화지 뭐."
"의뢰인이 누군지 궁금한데 그래."
그녀는 약간은 불쾌한 표정을 하면서도 저의(底意)가 있어 보이지 않는 농담 비슷한 어감이 묻어 있기에 가볍게 대꾸했다.
"글쎄… 아희 네 자신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혜주 너인지도 모르지."
"왜 나라고 생각해?"
"지금 이 전화, 확인 전화인지도 모르니까."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이 그녀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떤 확인?"
"노 코멘트."
"언급회피가 아니고? 아희 너, 혹시…?!"
"상상은 자유… 후후!"
"그 웃음 말이야. 예전의 칼라가 아닌데 그래."
"전에는 무슨 칼라였는데?"
"흑 아니면 백이었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게 아니란 말이니?"
"한마디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괜히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서 그래. 뭐랄까… 레드라고나 할까."
"레드?"
"응, 레드. 잘익은 석류 같은 그런 색 말이야."
문득 그녀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 비슷한 혼돈(混沌)에 빠지고 말았다.
"얘, 그런 분위기의 정체는 뭘까?"
시치미를 떼고자 내뱉은 말은 결코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아니,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나머지 무심결에 튀어나온 독백 아닌 독백이었다.
그렇듯 그녀는 그만 낯설고 신비스런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잠을 설치게 만든 주범(主犯)이 어쩌면 그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얘, 방금 뭐라고 중얼거린 거야?"
"아… 아냐! 그냥 해본 소리야."
혜주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냥이라니? 아닌데 그래?"
"얘, 그만 끊어야겠다."
그녀는 그 주범이 의미하는 묘한 어감에 본의 아니게 휩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서둘러 혜주와의 통화를 끝내고 싶었다.
"그러지 뭐. 근데 말이야… 어찌 내 기분이 이상하다 얘?"
혜주는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건 혜주 네 문제야."
"글쎄… 그게 아닐지도 모르지. 그럼 안녕."
전화는 끊어졌지만 그녀는 곧바로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냐! 이건 아냐!'
무엇인가를 강하게 아니. 절박(切迫)하게 부정했다. 어렴풋이나마 그 정체의 윤곽을 가늠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전화기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옷을 입은 채 샤워기를 틀었다. 세찬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금방 흥건히 젖어버린 잠옷에 비친 군살 하나 없는 뽀얀 속살의 탄력이 실로 육감적이었다, 아니 도발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잠옷 안에는 브래지어와 팬티조차 거부한 알몸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한기를 느끼게 하는 차가운 물세례를 맞고 있었다. 일말의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난 이름 모를 정체불명의 유혹을 음미라도 하듯.

***

하늘은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청명(淸明)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가을 첫 바겐세일에 들어간 L백화점은 오후로 접어들자 입구며 각 층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근처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밀리고 밀리는 군상(群像)의 무리들이 연출해 내는 북새통의 현장이었다.
마치 인종 전시장 아니, 현대판 노예시장의 복사판(複寫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화점 바로 옆 대형 주차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주차장 입구에 정체되어 있는 차량들로 인해 우회전 차선이 심한 체증을 앓고 있었다. 신호등이 제 구실을 포기한 듯 빨간 불만 계속 켜져 있었고, 백화점으로 이어져 있는 육교는 아예 좌측 통행이 무시된 지경이었다. 일정한 보폭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밀리는 상태에서 그 의미를 다할 뿐이었다.
'필요악이긴 하지만… 다르게는 유행성 전염병이지.'
그녀는 백화점 바겐세일이 실감난다는 뜻인지 아니면 개떼(?)처럼 몰려나온 군상들에 대한 동정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육교를 겨우겨우 빠져나온 그녀의 이마에는 채 여물다만 땀이 내비쳐 있었다.
그녀는 모처럼의 외출에 흥미를 잃었는지 쇼핑을 포기하고 시야에 잡히는 가까운 커피숍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커피숍은 5층이었고 백화점 입구와 주차장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전면(全面)이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마침 비어 있는 창 쪽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그녀는 미끈하게 잘빠진 다리에 어울리는 하이힐에. 힙 선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짧은 치마로 한층 폼을 낸 약간은 섹시미가 풍기는 여 종업원에게 블랙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 혼자 무슨 기분으로 차를 마시니?
- 왠 시비?
-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청승이란 건가?
- 왜 측은해 보여?
- 그렇지 않고? 날개 잃은 새 한 마리가 너만 할까 싶어.
- 빈정거리지 마! 사실 확인일 뿐이야.
- 사실 확인?
- 혼자라는 사실에 더 강해지고 싶은 확인 심리 같은 거…
"후후!"
그녀는 쓰디쓴 웃음을 입가로 흘렀다. 혼자라는 게 실감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거리는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백화점 입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몰려들어 질서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

부마(釜馬) 고속도로 서부산 톨게이트를 막 통과한 그는 곧장 추월선을 따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한 속도를 무시한 120킬로에 육박하는 과속이었다.
그가 계획에도 없었던 마산행을 작정한 것은 퇴근 직후였다. 어디까지나 돌발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로선 자신 스스로도 의아해 할 정도였다.
그것은 어쩌면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자기 암시 내지는 잠재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원했던 게 아냐!'
그만큼 절제와 자제를 부정하려는 유혹의 미소가 숨겨져 있었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의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는 오늘의 이 돌출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자가용은 이미 김해 터널을 지나 마산 톨게이트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는 애써 자위의 독백을 중얼거렸다.
결국 그는 어떤 결론을 놓고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셈이었다.
그가 차를 주차시킨 곳은 신마산 산복도로 변에 위치해 있는 J여자 고등학교 바로 앞 H 아파트 단지 B동 주차장이었다.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들리는 곳이라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손목시계는 정확하게 밤 10시 30분에 걸려 있었다.
그때까지 그는 운전석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진한 망설임 같은 게 그를 질책이라고 하듯 붙잡고 있었다.
그랬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일말(一抹)의 예고도 없이 이렇게까지 불쑥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여때껏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로서는 그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누군가가 있는지 조차도 확인하지 못한 지경이라 더더욱 다음 행동을 위한 자신이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망설인 그가 핸드폰을 꺼냈다. 우선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확인해야만 했다. 입력되어 있는 전화번호라 숫자 판을 여러 번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 따윈 무시할 수 있었다.
신호음이 떨어졌다.
"여보세요?"
조금은 앳된 청아(淸雅)한 여자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에 익숙해져 있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맑고 투명하면서도 애잔한 음영(陰影)이 묻어나는 그런 어감이었다.
"…"
그는 한마디의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기대 내지는 바람이 여지없이 묵살된데 대한 무언의 시위였다. 사실 그가 내심 원했던 것은 부재중(不在中)임을 알리는 목소리 멘트였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그가 수초의 시간을 두고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 그건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강요에 어쩌지 못하는 나약함이었다.
"… 마침 있었구나."
"아니!… 선생님!"
예상치 못한 반가움을 어찌할 수 없을 때 굴절 없이 나타나는 그런 감격적인 톤이었다.
"그래. 그동안 이 선생님이 많이 무심했지?"
근 한 달 가까이 찾지도 않았고,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그로서는 무심(無心)이란 표현으로 자신을 자책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결코 무관심은 아니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한 마디는 안으로 삼켜야 했다. 감히 함부로 발설(發說)할 수 없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기에 그랬다.
"아니에요, 선생님 이렇게 직접 전활 주셨잖아요. 지금 부산에서 전화하시는 거죠?"
"아냐…"
그는 냉정하지 못했다. 어른답지 못하게 복선(伏線)을 깔거나 가식(假飾)을 내보인다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디세요, 선생님?"
끈끈한 그 무엇이 응집되어 있는 목소리였다.
"… 가까운 곳이야."
"그럼 오실 수 있잖아요, 선생님. 아니에요. 제가 마중 나갈 수 있어요. 계신 곳이 어디세요, 선생님?"
약속에 없었던 그의 방문을 놓고 그 만남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그녀였다.
"굳이 나올 것까지는 없어."
그는 감히 외면할 수 없는 아니, 회피할 수 없는 그녀의 도전 비슷한 강한 욕구를 인정해야만 했다.
이내 그는 차에서 내렸다. 승강기를 타고 5층까지 올라온 그가 505호 차임벨을 눌린 건 잠시 후였고, 벨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선생님!"
작은 어깨 위로 긴 흑발(黑髮)을 발처럼 드리운 하얀 얼굴에 눈이 부실 정도의 새하얀 츄리닝을 입은 한 소녀(?)가 다소곳한 몸짓,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그래."
그는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소녀는 그만 와락 그의 품 안으로 얼굴이며 상체를 내맡기다시피 던지며 파고 들었다.
그는 물리치지 않았다. 두 팔로 가볍게 가만가만히 전형적인 포옹을 자세를 취했다. 결코 선정적이거나 노골적이지 않는…
지수는 그지없이 평온(平穩)한 그의 심장 박동소리를 하나 둘 헤아리며 눈을 감았다.
'그때도 이랬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거야. 그때 난 속으로 중얼거렸지. 선생님은 바보야 하고 말이야. 그래, 오늘도 선생님은 바보로 기억될 거야.'
둘의 포옹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 길지 않았다. 소녀에게는 언제나 아쉬움으로 아니, 서운함으로 남는 선생님과의 포옹이었다.

***

그녀는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의 외출이 홀로서기에 길들어져 있는 자신에게 작은 파문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는.
어느새 그녀의 눈시울은 풀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을 닮은 미세(微細)한 물기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건 자신에게 향한 연민(憐愍)의 눈물이었다.
눈물이 그녀를 충동질했다.
- 이봐! 더 이상의 희생이나 학대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이젠 자신을 위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찾을 때야. 지금이 바로 그때야!
- 참견하지 마! 이대로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방울진 눈물이 양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

둘은 식탁에 마주 마주 앉아 있었다.
"선생님, 한 잔 받으세요."
지수가 다소곳한 자세로 정중하게 그가 세수를 할 동안에 슈퍼에서 사온 맥주를 권했다.
"그래. 괜한 수골 한 셈이군,"
"아니에요. 이 지순 그냥 기쁜 걸요, 선생님."
빈말이 아니었다. 마음에서 우러난 있는 그대로의 참말이었다.
잔은 가득 채워졌다.
"지수도 한 잔 하지?"
그로서는 처음 내뱉는 말이었다. 그건 의도적이라 할 수 없는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지수가 저녁놀을 닮은 붉은 빛을 얼굴에 두르며 당황의 빛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의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의 배려라면 배려였다.
"아… 아니에요, 선생님."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지수는 그의 작은 변화가 신기한 파문처럼 가슴 한 켠으로 번지며 슬그머니 똬리를 트는 순간을 만끽했다.
"밤인데 어때?"
밤을 빌미로 한 말이었지만 강제성이나 강요의 의미는 전혀 엿볼 수 없는 그런 투였다.
"아니에요, 선생님… 아직은 선생님 앞에서 그런다는 게… 신경 쓰시지 마시고 어서 드세요, 선생님."
어느 시기까지는 가급적이면 분에 넘치는 경솔한(?) 행동은 자제하고 싶은 지수였다.
"…!"
그는 지수의 순순한 감정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더 이상은 강요일 것 같은 기분 역시 떨쳐버리지 못했다.
"…"
지수는 담담함이 묻어나는 그의 표정 하나 하나를 음미라도 하듯 시선을 바로 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저번 달보다 더 유난히도 눈에 띠는 흰 머리카락에 연민보다는 중년 남자의 중후(重厚)한 멋을 느꼈다.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신춘문예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의욕만큼 따라주질 않아요, 선생님 플롯별 주제는 설정(設定)이 되었지만 단락별 소주제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자꾸만…"
지수는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사실 의욕만큼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잘못 선택한 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지수에게 충고를 서슴지 않았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지수야, 그럴 땐 앞으로만 치달으려는 심리적 충동보다는 한번쯤 뒤를 돌아다 볼 줄 아는 정신적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얼마 남지 않은 마감 시한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제대로 페이스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말이야. 여유를 가지다보면 자신도 평소 느끼지 못한 사물을 객관적으로 투영해 볼 수 있는 폭 넓은 심미안(審美眼)을 경험하게 될 거야."
불혹(不惑)의 삶을 살고 있는 연륜에서 비롯된 가벼운 조언에 지나지 않았다.
"…!"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지수는 그의 말에 미처 깨닫지 못한 혜안(慧眼)을 보는 듯했다.
여때껏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한 가운데 오직 해내야만 한다는 자신의 의지만을 주장해 온 터라 사실 그의 언급은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충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조금이나마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 말을 이어갔다.
"지수야, 그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자기 희생이 불가피한 사람에게는 자기 확인을 위한 과정이 필요한 법이야. 재도전의 시울을 당길 때는 비록 실패로 끝난 첫 도전의 쓰라린 경험이 그만큼 재도전 때는 과녁의 중심을 관통하게 하는 저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여유를 가지는 거야. 자기 확인이 필요한 여유 같은 거 말이야."
"… 선생님!"
지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憾情)과 사고(思考)의 포만감이 이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넉넉함이었다. 비할 바 없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이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지수는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신춘문예에 대한 의지를 다잡아 준 그의 충고에 잠시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은 만족감을 반추라도 하듯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가 지수에게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자식, 자극이 된 모양이구나. 그래, 지수 넌 할 수 있어!"
"… 이 지순 꼭 해낼 거에요, 선생님!"
그에게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보답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는 또 한 잔을 들이켰다. 넉 잔을 마신 셈이었다. 약간의 취기(醉氣)를 느꼈다. 누적된 피로가 일시에 엄습(掩襲)했다.
벽시계는 벌써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시간은 별문제가 아니지만 이 상태로 심야의 고속도로를 탄다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앞섰다. 아니 어쩌면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비상구였다. 하지만 그 방법을 선택한다는 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갈등이었다. 최선의 현명을 위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수에 관한 한 근 2년 동안을 불문율 그 이상으로 자신을 구속해 온 자신과의 약속을 어쩌면 파기(破棄)해야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파기 쪽으로 자신을 내친다해도 지수의 반응 또한 미지수 내지는 의문으로 남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수의 눈치를 살피며 긴 망설임 끝에 말문을 열었다.
"… 좀 쉬었음 하는데…"
비록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지수의 반응은 의외로 민감했다.
"정말이세요, 선생님?"
지수는 잘못 듣지나 않았나 하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래… 지수가 불편하겠지만…"
그는 그렇게 말꼬리를 얼버무려야 했다. 말을 아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였다.
"아… 아니에요, 선생님. 전 괜찮아요."
지수에게는 그 한 마디가 기쁨이었다. 그 언제부턴가 학수고대했던 소망이 비로소 눈을 뜬데 대한 환희이기도 했다. 늘 아쉬움만 남긴 채 훌쩍 떠나버린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이 일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순간이었다.
사실 오늘 밤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켠에는 내색할 수 없는 우울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우울의 그늘에는 그에 대한 작은 원망이 채색되어 있었다.
"…!"
그는 지수의 예상 밖의 환한 표정에 조금 당황했다. 이렇듯 충만감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자리 준비할게요."
"…!"
그는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휑하니 자기 방으로 몸을 던지는 지수의 상기된 표정이며 행동 하나 하나에 뭔가를 서두는 조급함이 역력하다는 걸 느꼈다.
지수는 하늘을 나를 것 같았다. 날개가 있다면 비상의 나래짓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오늘 가지 않는다… 이 지수와 이 밤을 함께 한다 했다.'
지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자신만이 헤아릴 수 있는 포만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빼았기고 싶지 않은 작은 욕망이기도 했다.

***

밤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잠은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한 걸음 뒤로 달아나버린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젠 가까이에서 히죽 히죽거리며 잡아보라는 듯이 조소(嘲笑)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니 아예 체념하라는 훈계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눈을 떴다. 침대 바로 옆 갓 스탠드 주위로 희미한 불빛이 실루엣처럼 드리운 채 갈색 어둠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 헤드에 상체를 세우고 앉았다. 하얀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이보리 색상의 슬립 차림이었다. 브래지어를 거부한 양감 있는 젖가슴의 위용이 다소 선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에 수십 개의 바늘이 꽂힌 듯 쑤시고 아팠다. 잠들기 전에 과하게 마신 맥주 탓이라고 생각했다.
마시고 싶었다. 아니 마셔야 했다. 취하고 싶었다. 아니 취해야만 했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면 마음껏 울고도 싶었다.
하지만 차마 울지는 못했다. 소리 죽여 우는 흐느낌마저도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남의 것이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떨어져나와 화장대로 향했다. 좌우로 하늘거리듯 약하게 비틀거리는 잘록한 허리의 율동이 리듬을 타듯 유연했다.
그리고 좌우 대칭이 고른 둔부(臀部)와 손바닥만한 팬티마저 거부한 와이 라인의 시위가 가히 뇌쇄적이었다. 아니 도발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그녀는 원형의 거울을 마주하고 앉았다. 거울 속 여인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가에 희미하게 각인(刻印)되어 있는 잔주름이 중년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피부의 탄력은 아직은 그런대로 팽팽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에 새빨간 루즈를 칠했다. 여때껏 한 번도 칠해 본 적이 없는 색깔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여자가 그녀를 보고 웃고 있다. 왠지 천박해 보였다. 야한 얼굴이다.
- 넌 누구지?
- 나야.
- 나라니? 기억에 없는데.
- 나라니까. 너처럼 홀로서기를 밥 먹듯 하는 여자라니까.
- 뭐? 나처럼 홀로서는 여자라고? 호호! 웃기지 마!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냐.
- 그럴지도 모르지. 인고의 의미를 모르고는 감히 선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니까.
- 충고하겠는데… 그런 감상(感想) 따윈 초대하지 마! 처음에는 마치 성녀(聖女)라도 된 것처럼 고상도 떨지만…
-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는 뜻으로 하는 소리야?
- 한낱 피조물(被造物)에 지나지 않는 인간에게는 더욱이 그런 경험에 길들어진 여자에게는 그걸 거부하면서 홀로 선다는 건 위선의 가면을 쓴 위장에 지나지 않아.
- 방법이 없는 건 아니잖아.
- 지금에 와서?
- 어때서? 넌 자유 부인이잖아. 구속이나 굴레 따윈 아무 상관이 없는…
- 자유 부인? 호호! 유혹하지 마! 네가 간섭한다거나 개입할 이유 따윈 없으니까.
- 이미 넌 예전의 네가 아냐. 넌 지금 흔들리고 있어. 갈중이 나면 물을 마셔야 하는 게 생리적인 이치라는 얘기야.
-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갈증은 뭐며 생리적인 이치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이야?
- 아직 늦지 않아. 여자란 따지고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습성의 동물이야. 진실이던 아니던 타의든 자의든… 주어진 현실에 강요당해 온 희생에 대한 반대급부의 보상 심리를 한번쯤 계산해 보는 게 여자의 속성인지도 모르지.
- …?!
- 널 찬찬히 해부해 봐! 아직은 물좋은 생선처럼 살아 꿈틀거리는 여자의 몸이잖아. 그 백옥 빛 속살의 탄력은 물론이고 그 가지런한 어깨선이며, 그 진지한 가슴의 양감(量感)이며, 그 잘록한 허리의 각선미가 그대로잖아.
- …!
- 아니! 너 지금 울고 있잖아.
- 동정 따윈 관둬! 아니 간섭하지 마! 오늘은 그냥 이러고 싶어!
- 글쎄… 오늘만이 아닐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일 그런 성질이 아닌가 싶어.
거울 속의 여자는 울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을 외면해 온 뜨거운 눈물이었다. 홀로서기를 운명처럼 받아들인 그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눈물이 아직은 뜨겁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아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 언제부터인가 말라버린 아니 동이 나버린 눈물샘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품고 있었다니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듯 그녀에게 눈물은 어제까지만 해도 값싼 사치였고, 허영이었고. 복선(伏線)이었다.
모처럼 부활된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하염없는 기세로 거침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에게는 분명 잃어버린 것보다 얻은 게 많은 어제보다 깊은 밤이었다. 싸늘한 주검으로 치부했던 눈물이 새롭게 눈을 떴고 그때 그 자리에서 흘린 눈물의 기억을 되살린 밤이었다.

***

지수의 침실은 10평 남짓했지만 여자의 섬세한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왠지 낯설다는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밤이라는 선입견(先入見)이 작용한데 대한 부담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로 토요일 오후 아니면 일요일 오전에 잠깐 들렸다가 저녁 늦게 돌아가곤 했던 그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오늘의 분위기가 마치 빌려 입은 남의 옷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수는 창가에 서 있었다.
커튼이 처진 창문 왼쪽 벽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침대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작년 겨울에 낮잠을 즐긴 적이 있는 더블 베드였다.
핑크빛 시트는 방금 새것으로 갈았는지 세제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고, 한가운데에는 남자용 잠옷과 흰색 언더웨어 1벌씩과 그리고 하얀 양말 1컬레가 가지런히 숨을 죽인 채 놓여 있었다.
그의 눈빛이 지수에게 쏠렸다. 표정은 담담했고 말은 없었지만 지수에게 향한 그의 시선에는 그 무엇을 책망하는 기운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 시선을 받아들인 지수는 조금은 당황해 하는 아니, 겁먹은 표정으로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 죄송해요, 선생님. 이러고 싶었어요… 그것 뿐이에요."
지수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만다. 이런 날을 예상해서 의도적으로 준비해 놓은 건 결코 아니었다. 필요로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지수는 그가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 그 자세를 헝클지 않았다.
그가 지수의 양 어깨를 살며시 잡고는 자연스럽게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 있을 법도 한데… 생각이 나지 않아."
그는 용납할 수 없는 당돌함이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용서(?)를 구하는 지수의 태도에서 이런 마음 씀씀이를 확대 해석할 이유 또한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수가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니에요. 선생님은 늘 말씀을 아끼시잖아요. 대신에 이렇게 절 안고 계시잖아요."
그는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품안에 갇힌 한 소녀를 무색(無色)의 감정으로 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지수는 소녀다운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선생님의 가슴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나요? 이 지수를 이렇게 포근하게 안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아직은… 아직은 이 지수가 아니라서 그런가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반발 심리였다. 이런 생각의 여지는 지금껏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개념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그 반발 심리는 지수를 적극적인 충동으로까지 내몰았다. 그건 기어코 그 소리를 듣고 말겠다는 작은 욕망이었다.
지수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곤 서서히 힘을 불어넣었다. 지수로서는 처음 있는 성적 도발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대담성이었다.
지수는 얼굴에 불덩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화끈 달아올랐다. 그 와중에도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에 전달되는 미미한 압박감이 주는 떨림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지수는 비록 찰나에 지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멈칫하는 그의 미동을 감지했다.
그는 당황과 당혹의 사각지대에 빠지고 말았다. 고유의 색을 과감히 지워버리고 일탈의 용기를 선보인 지수의 갑작스런 돌변이 충격이었던 만큼 당황해야만 했고, 가슴에 와닿는 가슴의 작은 반란의 감각은 경이의 파문을 닮은 것이기에 당혹스러웠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움직임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무념(無念)으로 자신을 추스렸다.
그런데 그 무념의 한 모퉁이에 상상 밖의 다른 또 하나의 속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자아 반란이었다.
그는 부정의 잣대를 놓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 여느 때보다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지수의 감각적인 체취에 취한 탓인지도 모른다.
"…?!"
그때 지수는 온 신경을 귀에다 두고 있었다. 그 희망(?)의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수는 안타까웠다. 선생님의 이 가슴을 열어 볼 수만 있다면…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들리지 않아! 아직 없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소리 넌 바보야! 넌 엉터리야? 아닌 것처럼 거짓부렁을 하고 있어! 소리 넌 못난이야! 못난이!'
지수는 들리지 않는 소리도 미웠지만 자신이 더 미웠다. 이대로 그냥 아무 의미도 없이 오늘이란 이 현실, 이 시간을 인정해야 하는 자신이 더없이 한심했다.
결국 하얀 체념이 지수를 다시 소녀로 돌아앉게 했다. 감았던 눈을 뜨고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선생님, 편히 주무세요."
시선을 딴 곳에다 두고 그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던지는 자책의 의미인지. 들리지 않은 소리에 대한 원망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무언의 시위였다. 그 무엇인가를 인정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는 부정의 의미이기도 했다.
지수는 뒤를 돌아다보지도 않고 힘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지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실수였어.'
그건 처음부터 계획에도 없었던 마산행을 저지른 자신을 두고 한 독백이었다.

***

창가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녀는 폐점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퇴근을 잊은 채 소파에 파묻혀 있었다.
오늘따라 아파트로 곧장 간다는 게 왠지 한심스러웠다. 언제부터인가 버겁기만 한 외로움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마음 한 켠이 비어 있는 공허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담배를 피워보지만 마찬가지였다.
'후후! 나도 별 수 없는 속물인가.'
쓰디쓴 웃음만이 독백을 안고 쓰러진다. 그렇다고 이대로 죽치고 앉아 시간을 죽인다는 게 더 한심스러웠다.
- 넌 지금 변화가 필요한 거야. 아니 필요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지.
- 어떤 변화?
- 그런 내 소관이 아니잖아.
- 내 분신이면서 아웃사이드라… 그래, 잃을 게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찾아야겠지… 단 지켜보는 걸로 만족해야 해. 간섭이나 훼방은 절대 안 돼!
담배를 꺼버렸다. 우선은 여길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주검 같은 공간이 싫었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아무 생각 없이 빈 택시를 잡아탔다.
"코모도 호텔로 가주세요,"
일탈을 꿈꾸는 순간이었다. 자신 스스로도 경이감(驚異感)이 일 정도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지하 유료 주차장에 자가용이 있는데도 택시를 잡아탄 것부터가 그랬다.
'후후! 웃겨! 미친 년! 아냐, 가을인 탓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자위했다.
40대 중반의 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꽤나 삼삼하게 그래.'
그녀는 백미러에 걸려 있는 기사의 좀은 엉큼한 눈빛을 무시라도 하듯 얼굴을 옆으로 돌려 뒤로 밀려나는 차창 밖 도시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후, 그녀가 들어선 곳은 호텔 나이트 클럽이었다.
계단을 내려서는 그녀의 입술은 살포시 떨리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을 동반한 이상야릇한 설렘 탓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단신(單身)으로 이런 곳을 찾은 기억이란 게 그 의미를 상실할 정도로 희미했다.
밤 10시가 지난 넓은 홀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고, 전속 밴드 바로 앞 플로어에는 국적 불명의 음악에 취해버린 무리들의 난잡한 율동이 난무했고, 밴드 바로 옆 공간에는 배꼽까지 드러낸 비키니 차림의 쭉빵 무희들이 눈요기에 불과한 선정적인 몸놀림을 건성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빨간 나비 넥타이를 맨 미소녀 티가 물씬 풍기는 앳된 사내가 그녀에게 동행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혼자라고 하자 미소년이 그녀를 안내한 곳은 후미진 구석의 4인용 테이블이었다.
"손님, 술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귀를 후벼파는 굉음(轟音) 때문인지 나비 넥타이가 제법 목청을 돋구며 그렇게 물었다.
"일단 기본부터."
그녀도 목소리를 크게 했다. 그러자 나비 넥타이가 날렵하게 아니, 절도 있게 허리를 반쯤 접으며 손님에 대한 예를 표했다.
사이키델릭한 형형색색의 조명이 시야를 찌를 듯이 파고 들었다.
그녀는 문득 이런 분위기에 적응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담배를 꺼내 입술로 물었다. 불을 붙였다.
그때 맥주 3병과 과일 안주 1접시가 배달됐다. 나비 넥타이가 숙련된 손놀림으로 병마개를 땄다. 그리곤 다시 허리를 90도 가까이 꺾는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한 잔을 가득 채웠다. 그리곤 서둘러 게눈 감추듯 단숨에 들이킨다. 첫잔인데도 별로 거북하지 않았다. 이렇게 매끄럽게 넘어간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좁쌀만큼 작아져 있던 마음도 바위처럼 커졌다. 둘 이상이 아닌 혼자라는 두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 아서! 이건 모험이야.
- 왜지?
- 왜긴? 불안해 하고 있잖아.
- 간섭하지 마! 이건 나만의 시간이고 내 발로 내 스스로 찾아온 곳이야.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어.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얼른 사라져!
그녀는 그 누구를 상대한다는 게 귀찮았는지 다시 한 잔을 거침없이 마셨다.
때마침 격렬한 음악이 흐느적거리는 곡으로 바뀌자 플로어에는 블루스로 심각한(?) 호흡을 맞추려는 부류만이 남아 정면으로 몸과 몸을 밀착시킨 채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녀는 리듬을 타는 듯 매끈한 춤솜씨로 플로어 중앙을 독점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에게 눈길을 준다.
'예술이야!'
부러움이었다. 남자의 날렵하고 자연스런 리드에 막힘이 없는 율동으로 호흡을 같이하는 여자의 당당한 조연(助演)에 대한 찬사였다.
잠시 후, 블루스 타임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잡담이며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자들의 농축(濃縮)된 깔깔거림이 괜한 호기를 부리고 싶은 남정네들의 허세 속에 간간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남자 DJ의 힘있고 부드러운 멘트가 오늘의 빅 이벤트 무대의 주인공을 소개했다. 환상적인 율동으로 관능에 불을 지필 스트립 걸이라 했다.
밴드가 스트립 걸의 존재를 고무시키려는 듯 그럴 듯한 음악을 짧게 토해냈다.
이미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장(滿場)을 이룬 분위기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교태가 잔뜩 묻어 있는 유연한 걸음걸이로 모습을 드러낸 한송이 야화(野花)에게 쏠려 있었다.
스트립 걸은 가발인 듯한 단발머리에 얼굴은 표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을 정도의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DJ가 분위기를 돋군다,
"설나리 양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
그 선동에 여기저기서 격의(隔意)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스트립 걸이 두 손을 배꼽 위에다 가지런히 모으며 90도로 허리를 숙이자 또 한 번의 박수 무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느리디느린 음악이 깔리자 거기에 맞추어 선을 보이는 스트립 걸의 선정적인 율동이 원색의 불빛 세례를 받으며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스트립 걸의 의상은 여체의 요철(凹凸) 부분과 각선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적나라함이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나름대로의 개성(?)을 찾는다면 허벅지 한쪽을 탄 정도가 여체의 은밀한 곳이 보일 듯 말 듯한 지경에까지 액센트를 준 점이었다.
어느새 스트립 걸의 연속되는 율동의 이음이 쥐 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간간이 터져나오는 신음 비슷한 탄성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스트립 걸이 슬로우 모션으로 한바퀴 빙글 돌면서 배꼽 티를 과감히 떼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풍만하기 그지없는 뽀얀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눈을 떴다. 휘파람 소리와 박수 소리가 뒤따랐다. 사내들의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스트립 걸은 대담한 행위에 길들어진 자신을 노골적으로 심판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가서는 잘록하게 패인 허리선에 걸려있는 암갈색의 롱스커트를 풀어헤쳤다.
바로 그때, DJ의 계산된 선동과 크고 힘찬 박수가 제법 길게 터져나왔다. 그것은 상술에 지나지 않는 여체의 도발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기도 했다.
사실 사타구니에 손바닥만한 팬티 하나만 달랑 걸친 여체의 조형미는 감탄사가 무색할 정도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여체는 수치심 따윈 감히 접어둔 채 관능적인 제스쳐를 연출해내는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녀는 팔등신에 가까운 알몸을 여과없이 드러낸 채 아낌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사르는 스트립 걸의 행위 하나 하나를 관심 있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 자기 확인일 뿐이야, 자신을 사랑하는…'
그래서 연민보다는 부러움이 마음 한 쪽에 자리했다.
분위기는 한 스트립 걸의 메아리 없는 한(恨)을(?) 즐기는 가운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홀 안은 눅눅하고 축축한 정적(靜寂)으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체를 구석구석 해부해 보려는 탐욕의 침묵이기도 했다.
이윽고 스트립 걸이 마지막 율동을 끝내고 감사(?)의 뜻으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모두가 아쉬움을 위장한 박수를 친다. 그녀도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스트립 걸은 욕정의 덫처럼 끈적끈적한 갈채를 뒤로 하며 무대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동안 무방비 상태로 방치했던 젖가슴을 롱스커트로 가린 채 그렇게 사라졌다.
다시 박자가 빠른 곡이 터져 나왔다. 플로어는 삽시간에 광란을 토해내려는 발광(發狂)의 무리들로 가득 찼다. 사이키델릭한 조명이 현란하게 부서지면서 무작위로 흔들거리는 그들의 온몸을 갈기갈기 재단(裁斷)이라도 하듯 맹렬하게 덤벼든다.
그녀는 여전히 고즈넉한 자세로 술과 담배를 벗할 뿐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기를 거부했다.
- 흥, 정숙하다는 걸 여기서도 행사할 모양이군.
- 유혹하지 마!
- 그 말은… 설마 누가 유혹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자꾸 성가시게 치근덕거리면 미친 년이 될 수도 있어.
- 글쎄… 그런 용기라도 있을까 몰라.
그녀가 또 한 잔을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몸 안으로 거칠게 들이부었다. 그리곤 짧게 중얼거렸다.
"없어!"
손목시계는 밤 11시에 걸려 있다.
바로 그때였다. 나비 넥타이가 정중하게 허리를 접으며 그녀에게 다가서서는 눈짓으로 한쪽 테이블을 가리키며 밀담을 주고받는 흉내를 냈다.
"사모님, 저쪽 테이블 남자 분이 파트너…"
나비 넥타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시선이 그쪽으로 던져졌다. 정장 차림의 단정한 용모의 사내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나비 넥타이가 그녀의 반응을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전할까요, 사모님?"
잠깐 망설이다 그녀가 말했다.
"좋다고 해요."
막상 내뱉고보니 일말의 후회가 충격으로 와닿았다. 용납의 여지를 둘 수 없는 모험이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에게 있어선 초유(初有)의 자기 반란이었다.
그녀는 사내와 나비 넥타이가 귓속말로 속닥거리는 꼴을 직시하며 또 한 잔을 가뿐하게 해치웠다.
다시 쥐어짜는 듯한 느린 박자의 곡으로 바뀌었다.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냉큼 다가왔다.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실까요?"
30대 초반의 말쑥한 사내의 입에서 정중하고 매끄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와 그녀의 얼굴을 간질였다.
그녀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본의 아니게 초청한 이 위기(?)에 반발이라도 하듯.
플로어에는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치는 선남선녀(?)들이 엉겨붙은 채 뼈없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둘은 모퉁이 한 공간에 마주섰다. 그리고는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손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는 사내의 손이 여자의 손처럼 곱상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걸 느꼈고, 사내는 그녀의 손이 굳은 살이 없는 고운 손이지만 얼음물에 손을 담근 것처럼 차다는 걸 느꼈다.
무심결에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사내의 눈이 덫에 걸린 먹이를 낚아채려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번득이고 있음을 감지했고, 사내는 그녀의 크고 까만 눈동자에서 동요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담담함이 각인(刻印)되어 있음을 느꼈다.
사내가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내의 리드에 맞추어 발을 움직였다. 사내의 춤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의 살점을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추려내는 요리사의 능수 능란한 솜씨에나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했다. 반면에 그녀의 스텝이나 몸놀림은 사내의 리드가 민망스럽지 않을 만큼의 수준이었다.
어느 순간 사내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없었군요, 공현우라 합니다."
서울 말씨였다.
"…"
그녀는 감고 있었던 눈만 떴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굳이 이름은 안 밝히더라도 한마디쯤은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사내로선 그녀의 의외의 무반응에 머쓱해 했다.
사내가 재차 물었다.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
그녀는 여전히 침묵으로 대신했다.
그러자 사내가 일방적으로 말했다.
"부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제야 그녀의 닫혀있던 말문이 열렸다.
"그게 정상이겠죠,"
그 한마디에 사내의 입가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이상야릇한 미소가 번지르르 번졌다.
그녀는 한동안 어깨에 걸려 있던 사내의 오른손이 어느 순간 미끄럼을 타듯 밑으로 내려오더니 브래지어 고리를 살짝 가볍게 눌리고는 이내 허리를 잽싸게 가로채는 황당한(?) 도전에 호흡이 끊어지는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그녀는 몸을 잘게 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계산된 각본이겠지.'
결국 그녀는 자신이 사내의 품안에 갇힌 꼴이라는 현실을 깨달았고, 하복부의 그 은밀한 부위(部位)도 사내의 아랫도리 그것에 밀착된 상태하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냉정만은 잃고 싶지 않았다.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귓불에다 끈끈하면서도 뜨거운 기운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상습적인(?) 한마디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부인… 부인의 몸매는 정말 매력적이군요. 상상만으로도 제 마음이 벅차군요. 피부 역시 처녀 못지 않으니 말입니다."
분명 남자의 체취였다. 덫을 놓고 기다리는 한마리 수컷의 냄새였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아랫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결코 흔들리면 안 된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 불결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 그런대로 괜찮은데 그래.
- 너 혹시 이대로 막가는 건 아니지?
- 아직은 아냐.
- 속단하지 마! 이미 넌 그물에 걸려 바둥거리는 한 마리 생선에 지나지 않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옥죄이는 게 그물의 생리니까.
- 글쎄… 하지만 그물도 그물 나름 아닐까?
- 분위기에 약한 게 여자라는 거 모르진 않을텐데…
- 분위기도 분위기 나름이 아닐까?
- 글쎄… 워낙 요지경 세상이라 왠지 불안해.
기회를 포착한 사내의 본성은 노골적이다 못해 더욱 적나라한 그림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허리와 힙은 사내의 기교적인 손놀림에 속수무책으로 유린 당하고 있었다.
사내는 그녀의 스텝이 헝컬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사내의 아랫도리 그 부분이 자신의 비밀스런 그곳을 간헐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현장감을 부정하지 않았다.
- 이건 연극이야!
- 천만에! 엄연한 현실이야! 넌 여태껏 네 스스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거야. 가증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 내가?
- 웃겨!
이번에는 사내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부인… 부인의 체취는 신비하군요. 왠지 오늘 밤만은 부인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런데 사내의 다른 한 손이 그녀의 가슴을 전격적으로 기습하여 주무름을 행사한 바로 그 찰나였다.
그녀의 오른쪽 무릎이 각을 세우며 사내의 사타구니를 정통으로 냅다 내질렀다.
"컥!"
그만 사내의 입에서 고통에 겨워하는 굴절된 단절음이 튀어나왔다.
그때 사내는 미처 듣지 못했다. 그녀의 독설적(毒舌的)인 악담 한마디를!
"개새끼!"
그녀는 그 소중하고 귀중한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맥없이 무릎을 꿇다시피 하다 이내 썩은 고목나무 둥치가 쓰러지듯 바닥 위로 일그러진 안면을 처박고 마는 사내를 뒤로 하고 유유히 플로어를 빠져 나왔다.

***

"선생님, 한 잔 더 하시겠어요?"
"손님에게 그렇게 묻는 법이 어디 있나?"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손님이 아니라는 바보 같은 생각 탓인지도 모르죠."
"그럼 오늘은 손님과 주인 마담이 아닌 친구 사이로 하지."
그녀가 눈을 살짝 흘긴다.
"선생님두… 저야 환영이지만 서른 다섯 여자가 마흔 넷 남자와 친구 한다는 게 조금 그렇잖아요."
그가 건조한 웃음을 입가로 흘린다.
"후후!"
"제 말에 어폐(語弊)가 있다는 뜻의 웃음이군요,"
"그래. 친구면 어떻고 애인이면 어떻나. 이렇게 마주 앉아 있다는 게 의미라면 의미일테니까 말이야. 자. 한 잔 따라야지."
그가 양주 잔을 들어 그녀 얼굴 가까이 내밀었다.
그러자 정경숙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술을 따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상하죠… 선생님 발길이 뜸하면 왠지 불안해요.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괜히 애들한테 신경질만 부리고…"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
"설마 무관심의 침묵은 아니시겠죠?"
"글쎄… 무관심도 의사소통의 한 수단이라고 하던데…"
그가 양주 한 잔을 단숨에 입안 깊숙이 톡 털어 넣었다.
"자, 한 잔 받아."
그녀가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그런 감정이 기다림인지 그리움인지 나 자신도 분명하지 않아요. 그런데 분명한 건 오늘 선생님이 오신다기에 예전과 다른 설렘이란 게 날 용서하지 않더군요, 그냥 그렇게 말이에요. 그걸 보면 나도 별 수 없는 여자인 것만은 사실인가 봐요."
진실한 고백의 한 조각이었다.
"후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약간 당황스러운데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인 그로서는 한 여자의 고백이 어색할 정도로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황당하지 않았다니 다행이에요."
"…!"
눈과 눈이 한데 얽혀 서로의 표정을 읽었다. 정경숙의 그윽한 눈빛은 평범 그 이상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시선을 거두며 두꺼비 파리 채듯 날렵하게 잔을 비웠다. 그리곤 그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묻는다.
그가 그녀의 어깨 위로 팔을 두른다.
"후후! 사춘기 열병 같은 그런 감정인가?"
그러자 그녀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였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유나 조건이란 게 필요없는 그런 감정으로 당신을 대하고 싶어요. 죄송해요… 당신이란 말을 감이 입에 올려서…"
정경숙은 자신의 고백을 스스로 합리화시키려는 듯 당신이라는 호칭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냉정하게 대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어. 남녀간의 정에 관한 한 나에겐 오늘이란 명제만이 있을 뿐이니까."
그러자 그녀가 토를 달았다.
"당신을 구속하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거 아셔야 해요. 나 역시 내일이니 미래니 하는 세계와는 거리가 먼 여자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비록 영원이 아닌 한 순간으로 끝난다해도 그 순간까지만이라도 진실된 한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여자로 남고 싶을 따름이에요… 그것 뿐이에요."
비로소 마음 한가운데 담아두었던 고백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남김없이 털어놓은 정경숙은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이라도 하듯 눈을 감았다.
그는 이럴 때 마땅한 한마디가 있을 법도 한데 미처 생각이 나지 않는지 침묵으로 대신했다.
그건 어쩌면 용납의 긍정도 아니고, 거부의 부정도 아닌 중용(中庸)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오늘 그냥 가실 거에요?"
둘의 관계에 있어 그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그 상대성이 추구하는 원초적 본능과 비슷한 진한 열정의 교환을 뜻하는 그런 류의 암시이기도 했다.
그가 예의 트레이드 마크인 건조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후후! 자넨 오늘을 자축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겠지만 오늘은 이대로가 좋을 것 같구먼."
"오늘은 바이오 리듬이 안 좋은가 보죠?"
이유 따윈 묻지 않았다. 더더욱 교태는 아니더라도 판에 박힌 애교로 남자의 마음을 되돌려보려는 저의 또한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쉽게 동정을 구한다거나 구걸하는 식의 처신을 경멸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싫은 건 싫은 것으로, 아닌 건 아닌 것으로 단정해버리는 결코 수정이나 대체의 융통성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원칙주의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관심 밖이지만… 오늘은 그래야만…"
그녀가 냉큼 말을 가로챘다.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정경숙이 싫어서라 아니라면 오늘만은 놓아드릴게요."
"후후!"
그녀가 사심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오늘 밤은 아쉽지만 내일이면 다시 마음 설레는 기다림이란 게 있으니까요."
"그래. 경숙이 넌 남자인 날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
그가 팔에 힘을 넣어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정경숙은 가녀린 비음(鼻音)을 입가로 두르며 젖가슴이 짓눌리는 아릿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남자'를 알고 있는 육감적인 그녀의 체취에 취하고 싶은지 정경숙의 하얀 목에다 얼굴을 묻었다.
정경숙은 상반신을 바로 하여 그를 껴안았다. 그리곤 그의 입술을 찾아 혀를 밀어 넣었다.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향기가 묻어 있는 여자의 부드러운 혀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

하루의 마감을 예고하는 밤의 무리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핥으며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승강기의 미미한 요동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승강기 안에는 그녀 혼자 뿐이었다. 한쪽 벽면에 기댄 채 눈을 감는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 자신 혼자라는 고립감을 즐기고 싶은 충동 때문인지도 모른다.
승강기는 7층에서 멈추었다.
702호. 그녀의 현주소다. 핸들백을 열어 열쇠뭉치를 꺼냈다.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맥주 탓인지 여느 때보다 수초의 시간을 허비했다.
"찰칵!"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거실은 빛무리 하나 없는 까만 어둠만이 생기 잃은 몸짓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옷가지를 매미 허물 벗듯 훌훌 벗어던지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욕실은 4평은 족히 될 만큼 넓었다. 2명은 까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아이보리색 욕조가 시야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찬찬히 훑어본다. 눈가로 자조(自嘲)의 빛이 파문처럼 번진다.
그녀가 희미하게 중얼거린다.
"개새끼!"
나이트 클럽의 사내를 두고 한 악담이었다.
샤워기를 틀었다. 적당하게 미지근한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바디 클린저를 온몸 구석구석 마사지 하듯 문지른다.
그녀는 거울 속에 갇혀있는 알몸을 쳐다보며 희미한 독백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은…"
- 그건 인정하지.
- 그렇지? 아직은 괜찮지?
- 쓸만해… 그런데 그게 때로는 유죄일 수도 있어.
- 유죄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 경우에 따라 잘못 굴리면 그렇다는 게야.
- 그 정도로 봐주니 기분은 좋은데 그래.
어쩌면 그녀는 아직은 여자로서 건재하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결코 자신 스스로 자괴(自愧)의 굴레를 초대하지 않겠다는 자기 확인이었다. 
그녀의 알몸은 40대 초반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팽팽한 탄력미로 충만해 있었고, 가슴에서 허리 그리고 둔부로 흐르는 요철의 각선미 역시 교태스러울 정도로 육감적이었다.
그녀는 사내의 뜨거운 입김이 머문 목덜미를 거칠게 문질렀다.
"개새끼!"
잠시 후. 욕실을 나온 그녀는 샤워의 개운함 탓인지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다. 취기도 어느 정도 가신 것 같고 상습적으로 접근해 온 사내에게 당한 치욕적인 봉변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운 사납게 하루 일진이 나빠 골빈 미친 개에게 물린 것으로 매도해 버렸다.
침실로 들어온 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서 타월 매듭을 풀었다. 타월이 발 아래로 스르르 미끄럼을 탔다. 환한 샹들리에 불빛에 부서지듯 반사되는 그녀의 우윳빛 나신은 욕실에서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신비스러움이 묘한 띠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한 올 전무(全無)한 맨살 위로 잠자리 날개를 연상케 하는 반투명의 선홍색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는 거울을 마주 하고 앉았다.
거울 속에 그려진 한 여인의 첫인상은 이지적(理智的)이면서도 성적 매력이 다분히 엿보이는 미모였다.
얼굴에 듬뿍 찍어바른 영양 크림을 닦아낸 그녀는 샹들리에 불을 꺼고 스탠드를 켰다. 촉광이 낮은 빛 무리가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차림의 그녀를 요염한 한 여인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특히 움직일 때마다 빗살무늬처럼 그림자 지는 실루엣은 풍요의 위용을 과시 하고 있는 젖무덤의 완숙미와 내밀한 그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 샅의 은근함, 그 실체를 두둔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트 가운을 벗어던지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에 희미하지만 알몸으로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의 한 단편(斷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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