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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늬만 딸기 >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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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7건 조회 2,219회 작성일 2006-05-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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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딸기. 빨갛고 싱그러운 딸기. 빨갛고 싱그럽고 꽃이 하얀 딸기. 빨갛고 싱그럽고 꽃이 하얗고 씨가 밖에 있는 딸기. 빨갛고 싱그럽고 꽃이 하얗고 씨가 밖에 있는 달콤한 딸기. 빨갛고 싱그럽고 꽃이 하얗고 씨가 밖에 있는 달콤하고 맛있는 딸기. 아무튼 결론은 딸기는 맛있다는 것이다. 2월 중순이라지만 아직은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이 겨울이라 박박 우기고 있는 중이라 마음을 놓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런 날 동네 가까운 과일가게도 아니고, 대형마트도 아니고, 남영역 부근에서 리어카에서 딸기만을 내어놓고 팔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뵈었다. 연세가 젊으시니 힘차게 “딸기 사세요.” 라고 외치실 수가 있나, 날이 안 추우니 “딸기가 맛나요.”라며 소리를 치실 수가 있나. 짧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다 할아버지의 리어카로 다시 돌아섰다. 유난히 딸기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며칠 전 밤에 딸기가 먹고 싶다던 말이 전광석화처럼 스쳐 지났기 때문이었다.

딸기 한 팩을 싸달라고 말씀드리는데, 문득 한 팩을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너무 싱그럽고 고운 얼굴로 나를 보고 방실거리는 딸기들의 눈빛을 마음 약한 나로서는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하루 종일 추운 곳에서 떠셔서 그런지 그렇게 힘없이 계셔서야 다리만 아프시지 도대체 몇 팩이나 더 파실 수 있을까 해서였다. 추운 날씨 덕에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에서 외면 당한 하루 매상을 생각하시고 점심이나 드셨나 생각이 들었다. 또 어쩌면 집에 돌봐주어야 할 어린 손주들이 있거나, 아픈 할머니가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딸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가벼웠다. 사실 정장을 입고 단정한 쇼핑백도 아니고, 검정 비닐을 들고 달래달래 걷는 모습이 남들 눈에 부자연스럽고, 예뻐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딸아이의 향긋한 미소를 떠올리면 내 스타일 구겨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딸기 두 팩에 딸아이의 마음을 다 가진 듯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혼자 생글거리며 돌아왔을 것이다.

돌아오는 중에 딸아이 얼굴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너에게 주려고 무언가를 샀는데 맞춰 보라며 호기심 잔뜩 어린 의문만 던져놓고 전화를 끊었다. 딸아이는 며칠 전 한 이야기라 자신도 잊어버리고는 딸기일 거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엄마보다 엄마 손에 들린 물건이 더 궁금했던 아이. 봉지에서 딸기를 확인한 아이의 얼굴이 내 상상하고 딱 들어맞았다. 외투만 벗고는 서둘러 농도 약한 소금물에 딸기를 정성스레 목욕재계시켜 딸아이에게 주었다. 정말 맛있다는 그 말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딸기를 하나 입에 물던 아이의 표정이 영 아니 올시다였다. 씻으면서 한 개 먹어 볼 수도 있었지만 딸아이에게 먼저 먹이고픈 마음이 앞서서 먹어보질 않았다. 왜 그런가를 생각하며 딸기를 한입에 덥석 물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내 사십 평생에 그렇게 맛없는 딸기는 처음 먹어보았다. 맛없는 사과도 배도 수박도 메론도 먹어본 적이 있지만 딸기는 정말 아니었다. 세상의 그 어떤 맛없는 사과보다도 배보다도 더 맛없다고 느낀 그 건 아마도 그동안 딸기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었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내가 두 팩을 살 때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가고 나를 철저히 배신 한 딸기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었다. 과일은 되도록 자연 그대로 먹어야 비타민도 파괴되지 않고 하는 이런 이론들을 앞세우지 않아도 좋다. 웰빙 야채와는 또 다르게 과일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싱그러운 자연과 신체가 달콤함으로 하나 되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다른 팩의 딸기도 씻어서 먹어보았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됨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일의 불량품 기준은 어디까지 일까? 외양이 상한 것? 맛이 없는 것도 포함이 되나? 이 정도로 맛이 없으면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하나? 설사 맛없다고 하여 바꾸러 가면 단골가게라면 또 몰라도 그 할아버지가 순순히 바꿔주실까? 만약 악착같이 배상을 받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찾아가고, 할아버지가 딸기를 떼어온 가게를 찾아가고 또 그 전의 가게로 또 그 전의...... 결국 농부를 찾아간들 그 딸기가 맛없는 걸 누가 책임을 질까? 두 팩 모두 그런 것으로 보아 그 리어카에 실린 딸기 모두의 맛이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맛없는 딸기가 애써 농사지어놓은 농부아저씨의 책임인가? 물건을 판 분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사다 먹은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누구의 책임인줄 모르겠다. 만약 그래서 사건이 커져서 딸기의 유죄를 인정시키려 법원까지 가지고 간다고 치자. 그 동안 딸기가 변하지 않고 얌전이 있어줄까? 냉동실에 얼려 보관해야 하나? 상하기 전에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 딸기가 정말 맛없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아야 할까? 그러는 동안 먹어 없어진 딸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혼자서 웃고 말았다. 결국 딸기는 우유로도 부족해 설탕까지 듬뿍 넣어 딸기우유로의 변신을 한 뒤에라야 먹을 수 있게 되었다.그러고 보니, 딸기가 맛없어서 꼭 나쁜 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맛은 없었지만 투덜댐 대신 딸아이하고 딸기 변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고, 그 보다 딸기우유를 마시면서 딸아이의 얼굴이 더 환해지는 덤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무늬만 딸기. 그건 정말이지 무늬만 딸기였다. 나도 어쩌면 무늬만 사람은 아니었는지, 무늬만 여자는 아니었으며, 무늬만 엄마는 아니었으며, 무늬만 아내는 아니었으며, 무늬만 딸은 아니었으며, 무늬만 며느리는 아니었으며, 무늬만 친구는 아니었으며, 또 무늬만 이웃은 아니었는지...... 겉은 사람이라도 속은 오만과 질투와 도덕 불감증에 걸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요, 얼굴 화장만 치우쳐 하고 마음의 화장은 게을리 한 여자요, 공부만 강요하며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사랑이 부족했던 엄마요, 지친 세상살이에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치 못하고 바가지만 긁어대던 아내요, 시댁을 핑계로 마음과는 달리 친정 부모님만 보면 가져갈 것 없나 늘 기대기만 하는 딸이요, 몸도 마음도 노쇠해져 하루가 다르게 나약해져가는 시부모님들께 이해심보다는 섭섭함만 키우던 며느리요, 혹시 고민이 생겨 나와의 대화를 원했는데 나 바쁜 핑계로 친구의 마음을 외면해 더 외롭게 만든 친구요, 이웃과 맛난 거 하나 제대로 나눠 먹을 줄 모르고 닫힌 현관문만큼이나 마음의 문까지 닫고 산 이웃은 아니었는지......

< 감사패 >
오늘 하루 기꺼이 나의 스승이 되어준 무늬만 딸기님께 감사패를 증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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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백원기님의 댓글

백원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맛없는 딸기에 실망하신 님, 우리의 삶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무늬만 있고 실속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대하는 사람도 나를 무늬만 있는 존재로 보고있지 않은가 한번쯤 되돌아 봐야겠습니다.

전 * 온님의 댓글

전 * 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작가님의 지혜로움이 돋보입니다.
세상의  모든것이 삶에서 필요한 지혜이며 지식임을 깨닫는 용기.
진정한  용기이며  바른 모습 아닐까요.
하찮은  미물에서도  깨닫는 지혜가  유독  필요한  시대 입니다.

김석범님의 댓글

no_profile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값있는 딸기의 교훈....!!
이를 통해 벌써 아이의 정감을 얻었고 가족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게 했으니 ..또한
내면을 뒤돌아 보게하였으니 감사패 받을만 하군요...ㅎㅎㅎ  감사합니다..

금동건님의 댓글

금동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언제나 감칠맛나는 님의 수필을 대할때면 저의 마음도 풍년입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곧이어 비님이 나리실 것만 같은 서울 하늘입니다.
다녀가신 고운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 모든 분들의 마음이 평화롭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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