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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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6건 조회 2,533회 작성일 2009-07-17 12:40본문
아름다운 위로
정 영 숙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일산 호수공원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행복한 추억을 쌓고자하는 사람들로 술렁인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마저 보태져 축제의 분위기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찾은 곳이건만, 이곳 역시 어수선하긴 매한가지다.
며칠 전부터 호수공원의 잔잔한 물결이 보고 싶어졌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제 몸을 맡긴 체, 유유히 흘러가는 강이야말로 나의 어수선한 마음을 바로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은 바램은 한 순간에 깨진다. 남편이 호수와는 꽤 먼 곳에 주차를 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찾아 온 곳이지만, 워낙 공간이 넓은 곳이라 올 때마다 방향감각을 잃는다.
밤이면 화려한 음악 분수 쇼가 열리는 분수대엔 어린 아이들의 물장난이 한창이다. 그 주변 나무그늘 아래엔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우리 가족이 앉을 만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점점 짜증스런 표정으로 변해간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들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복잡한 인파속을 빠져나와 한적한 산책로을 따라 걷는다. 무더위 속에서도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다.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연꽃이 한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연못이 보인다. 남편과 아이들 역시 그 곳을 바라보며 종종걸음으로 향한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말하기 전에 그저 눈으로 그윽히 바라보고 싶어지는 곳. 아담한 연못가득 피어난 연꽃들이며, 이름 모르는 진보라 꽃들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곳은 분수대 근처와는 달리 한 두 팀의 가족이 연못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을 뿐 마치 그림속의 한 장면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늑하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그림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슬며시 들어앉는다.
바람의 속살댐에 못이긴 채 뒤채이며, 잔물결을 이루는 호수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과에 만남에 아쉬움도 잠시 이내 들뜬 마음이 된다.
연꽃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기는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연꽃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귀함 자체다. 은은한 빛깔이며 고고한 그 자태가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감동시킨다. 꽃도 꽃이려니와 연잎 또한 아름답다. 무릇 모든 잎들이 아래로 살짝 쳐져있건만 연잎은 제법 널따란 초록빛 잎사귀가 하늘을 향해 우묵하게 펼쳐져 있다. 그 우묵한 잎사귀 품 안에 푸르디푸른 하늘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은 오직 나만의 것일련지.
연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가볍게 사운대다가 바람이 멈추면 어느덧 고귀한 자태로 멈춰 선다. 그 넘침 없는 아우름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비록 그 뿌리내린 곳은 더러운 진흙탕일지언정, 그 자신의 꽃잎이나 잎에는 단 한 점의 더러움을 묻히지 않는다는 연꽃의 특성이야말로 우리네 인간이 닮아야 할 고매한 정신이 아닐까.
오래전 어느 날 연뿌리를 손질하다 지은 시가 떠오른다.
연뿌리를 보며
사람들은 부러워하지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네 고귀한 아름다움을
사람들은 말하지
진흙탕 속에 살지만 그에
물들지 않는 너를
부처님 닮은 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모르지
가슴속 뻥뻥 뚫린 네 상처를
빈 가슴으로 살아낸 네 아픔을
연못 가까이 다가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고귀한 아름다움에 취해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섰다. 사진기를 가진 사람들은 몇 컷의 사진을 찍어, 그 그림과 같은 풍경을 담아간다.
그렇게 넋을 잃고 한참을 고요한 연못에 눈을 두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돗자리에 떨어진 그 정체불명의 끈적이는 물질은 누군가의 배설물일진데, 가족 모두가 나무 위를 바라본다. 그 시선 끝에는 뽀얀 배를 보인 체 꼬리를 살짝 살짝 움직이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그 주인공이 바로 이 얌체스런 지빠귀 새였던 게다. 우리가 제 아름다운 노랫소리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연못위에 곱게 피어난 연꽃만 바라보니 샘이 났던 모양이다.
휴지로 배설물을 닦아내고, 몇 분이 지났을까! 이번엔 내 다리위에 뭔가 물컹한 것이 느껴진다. 역시나 지빠귀의 배설물이다. 고 녀석, 심통 한번 제대로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나무 그늘을 벗어나 옆자리로 옮긴다. 지빠귀의 소행은 얄미우나 집주인더러 집을 비우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어쩌다 찾아든 객이 자리를 뜨는 수밖에.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이 재미난 상황에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얼떨결에 똥 세례를 받은 나이지만 불쾌하단 생각은커녕 도리어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연신 온화한 모습으로 마주한 연꽃들이 내게 말한다.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든 찾아오라고. 자연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삶에 지친 인간들을 맞아준다고.
정 영 숙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일산 호수공원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행복한 추억을 쌓고자하는 사람들로 술렁인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마저 보태져 축제의 분위기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찾은 곳이건만, 이곳 역시 어수선하긴 매한가지다.
며칠 전부터 호수공원의 잔잔한 물결이 보고 싶어졌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제 몸을 맡긴 체, 유유히 흘러가는 강이야말로 나의 어수선한 마음을 바로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은 바램은 한 순간에 깨진다. 남편이 호수와는 꽤 먼 곳에 주차를 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찾아 온 곳이지만, 워낙 공간이 넓은 곳이라 올 때마다 방향감각을 잃는다.
밤이면 화려한 음악 분수 쇼가 열리는 분수대엔 어린 아이들의 물장난이 한창이다. 그 주변 나무그늘 아래엔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우리 가족이 앉을 만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점점 짜증스런 표정으로 변해간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들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복잡한 인파속을 빠져나와 한적한 산책로을 따라 걷는다. 무더위 속에서도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다.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연꽃이 한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연못이 보인다. 남편과 아이들 역시 그 곳을 바라보며 종종걸음으로 향한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말하기 전에 그저 눈으로 그윽히 바라보고 싶어지는 곳. 아담한 연못가득 피어난 연꽃들이며, 이름 모르는 진보라 꽃들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곳은 분수대 근처와는 달리 한 두 팀의 가족이 연못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을 뿐 마치 그림속의 한 장면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늑하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그림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슬며시 들어앉는다.
바람의 속살댐에 못이긴 채 뒤채이며, 잔물결을 이루는 호수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과에 만남에 아쉬움도 잠시 이내 들뜬 마음이 된다.
연꽃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기는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연꽃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귀함 자체다. 은은한 빛깔이며 고고한 그 자태가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감동시킨다. 꽃도 꽃이려니와 연잎 또한 아름답다. 무릇 모든 잎들이 아래로 살짝 쳐져있건만 연잎은 제법 널따란 초록빛 잎사귀가 하늘을 향해 우묵하게 펼쳐져 있다. 그 우묵한 잎사귀 품 안에 푸르디푸른 하늘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은 오직 나만의 것일련지.
연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가볍게 사운대다가 바람이 멈추면 어느덧 고귀한 자태로 멈춰 선다. 그 넘침 없는 아우름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비록 그 뿌리내린 곳은 더러운 진흙탕일지언정, 그 자신의 꽃잎이나 잎에는 단 한 점의 더러움을 묻히지 않는다는 연꽃의 특성이야말로 우리네 인간이 닮아야 할 고매한 정신이 아닐까.
오래전 어느 날 연뿌리를 손질하다 지은 시가 떠오른다.
연뿌리를 보며
사람들은 부러워하지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네 고귀한 아름다움을
사람들은 말하지
진흙탕 속에 살지만 그에
물들지 않는 너를
부처님 닮은 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모르지
가슴속 뻥뻥 뚫린 네 상처를
빈 가슴으로 살아낸 네 아픔을
연못 가까이 다가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고귀한 아름다움에 취해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섰다. 사진기를 가진 사람들은 몇 컷의 사진을 찍어, 그 그림과 같은 풍경을 담아간다.
그렇게 넋을 잃고 한참을 고요한 연못에 눈을 두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돗자리에 떨어진 그 정체불명의 끈적이는 물질은 누군가의 배설물일진데, 가족 모두가 나무 위를 바라본다. 그 시선 끝에는 뽀얀 배를 보인 체 꼬리를 살짝 살짝 움직이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그 주인공이 바로 이 얌체스런 지빠귀 새였던 게다. 우리가 제 아름다운 노랫소리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연못위에 곱게 피어난 연꽃만 바라보니 샘이 났던 모양이다.
휴지로 배설물을 닦아내고, 몇 분이 지났을까! 이번엔 내 다리위에 뭔가 물컹한 것이 느껴진다. 역시나 지빠귀의 배설물이다. 고 녀석, 심통 한번 제대로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나무 그늘을 벗어나 옆자리로 옮긴다. 지빠귀의 소행은 얄미우나 집주인더러 집을 비우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어쩌다 찾아든 객이 자리를 뜨는 수밖에.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이 재미난 상황에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얼떨결에 똥 세례를 받은 나이지만 불쾌하단 생각은커녕 도리어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연신 온화한 모습으로 마주한 연꽃들이 내게 말한다.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든 찾아오라고. 자연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삶에 지친 인간들을 맞아준다고.
추천6
댓글목록
김순애님의 댓글
김순애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연꽃을 보는 날에는
행운이 온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모처럼 아름다운 연꽃을 보면서 정말 아름다운
위안을 느꼈군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을 피하여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인가 봐요..
최인숙님의 댓글
최인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연근의 뚫린 마음에서도 남들이 모르는 내 고통을 느끼는 시상이 아름답습니다.
박태원님의 댓글
박태원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오랜만입니다. 이런인사 할수있어서 좋습니다, 연꽃에 숨겨진 가슴뚫인 아픔을 남생 처음느껴 봅니다
허혜자님의 댓글
허혜자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영숙 작가님의
* 아름다운 위로 *
이 아침 많이 느끼고 위로받고 갑니다.
권명은님의 댓글
권명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요즘 딱 자연의 아름다운 위로를 받고픈 마음입니다. 님의 글로나마 잠시 위로를 받고 갑니다
채금남님의 댓글
채금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 꽃 같은 아름다운 마음 한자락 잘 보고 갑니다
좋은글에서 아름다운 위로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