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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지문(指紋)없는 애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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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3건 조회 1,068회 작성일 2005-12-10 14:55

본문



지문(指紋)없는 애국자들







나는 애국자들을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다. 과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총칼 들고 목숨을 다 바친 애국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발버둥 치며 싸우다가 사라져간 이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이엠에프(IMF)구제금융을 받기 전이다. 대전에서 중소제조업을 경영하는 사장님 한 분이 내 사무실을 들렸다. 서울에 오면 종종 들리시는 분이다. 나 또래의 지천명의 나이로 기술자출신이었다. 그날따라 그분의 모습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작업복차림에 양 어깨는 축 늘어뜨리고 있었고, 표정에는 생기를 없었으며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무척 피곤한 기색이다. 커피 잔을 드는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커피 한 모금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 정사장 님! 제 손을 한번 봐 주이소." 손바닥을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손바닥은 군살로 가득했고, 손톱 밑에는 기름때가 몸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약간 끼어있을 뿐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자, " 지문(指紋)이 하나도 없지 않아요? " 하면서 손바닥을 더욱 가까이 내밀었다.
정말로 지문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분은 말을 이어 나갔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는 사이에 지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업무량수주를 위해서 고객회사에 찾아다니면서 일거리 주십사 빌고, 봉급을 넉넉하게 주지 못해서 허구한 날 회사를 떠나려는 종업원들에는 손발이 닳도록 사정하고, 납품 마치고 지연되는 수금 빨리 좀 해 달라고 목매달고, 수금한 약속어음을 은행이나 사채업자에게 할인 해 달라고 빌고 또 빌고, 은행에 운전자금 대출 좀 해 달라고 빌어대고, 본의 아니게 가족들 고생시키니 집에 가서 빌기를 거듭하다 보니 지문이 모두 닳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또다시 커피 한 모금으로 입술을 축인 후 긴 한숨을 내 뱉은 후 그분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지랄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소. 모두 때려치우고 나 혼자 가족들과 오순도순 편안하게 살면 될 터인데 말이지요.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든다오. 오늘은 수금 때문에 서울에 와서 하루 종일 매달려보았지만 허탕이라오. 내일이 급료 날인데 회사에 얼굴 들고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소. 종업원이 10명인데 그들 가족까지 합치면 40명이 넘는다오. 그들의 눈초리를 쳐다볼 수가 없다오.
그렇다고 은행에 부탁할 여력도 남아 있지를 않다오. 은행에 연체되고 있는 대출상환금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오. 은행에서 언제 인정사정 봐 주는 것 보았소. 은행의 생리가 그렇지 않소. 수금만 되었으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말이지요.“

긴 한숨을 품어내곤 그분의 눈가에 이슬이 고이고 잠시 이야기가 멎었다가 다시 이어진다.
"난 이대로 눈을 감고 쓰러질 수가 없소. 몸뚱어리는 내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오. 마음도 내 것이 아닌지가 오래 전이라오. 그러니 불에 타버린들, 갈기갈기 찢어 져 흩어져 뿌려진들 아까울 게 있겠소. 참으로 세상이 싫다오.“

푸념은 계속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수금처의 사장 댁을 찾아가서 발가벗고 누드공연이라도 펼쳐서 보여 줄 참이오. 그리고 모자 벗어 구걸이라도 할 참이오.
나의 쇼가 재미있으면 수금대신 감상료라도 주지 않겠소. 그것이 내가 오늘 치러야할 마지막 공연이라오."

저녁식사를 함께 마치고 어둠이 저 멀리서 깔리기 시작하자 그분은 자리를 떴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사장으로 태어나고, 죄짓지 않는 사람이 오늘날 샐러리맨”이라는 그분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후볐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붙잡고 한 나라와 공장식구들을 위해서 경제전쟁을 치루고 있는 이들이 그분뿐이겠는가. 기술이란 무기 하나와 열정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소규모 기업이 우리나라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분들의 피 같은 땀방울들이 방울방울 모여서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 않던가. 그분들이 파산하여 사라지면 대량실업과 경제파탄으로 모두가 고통일 터인데 아무도 본체만체 모른 체하는 세상이다. 독립유공자처럼 대우받거나 훈장이 없어도 좋다. 격려의 한마디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분들의 수고와 애국을 알고 있기만 해 주어도 그분들은 행복하다.

지문 없는 애국자들, 오늘도 뒤안길에서 사경(死境)을 헤맨다.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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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영근님의 댓글

오영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지문없는 애국자들!..진한 감동의 글 뵙습니다...요즈음 농민의 아픈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그외..가슴아픈 일들이 많읍니다.  날씨도 추운데.....

덕분에 좋은 글 뵙습니다...감사 합니다.

이선형님의 댓글

이선형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들이 진정한 이 나라 국민이며 주역이기도 합니다.
그 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깊은 글을 주신 정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기수님의 댓글

한기수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녕하세요, 정선생님 시상식때 인사올렸던 대전의 한 기수입니다!
많이 반갑습니다, 정선생님 글을 보며 가슴이 찡하네요
저 역시 십 여년을 중소기업,운영하면서 참,많은것을 배웠지요
특히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 힘 많이 들지요
추위에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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