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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경기 여름문학캠프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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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3건 조회 2,023회 작성일 2006-06-20 12:51

본문


[죄송의 말씀]

먼저 올렸던 후기를 일단계 습작후 수정하려다 클릭실수로 모두 날려버리고
말아서 부득이 이렇게 다시 올립니다. 정성스레 답글 올려주신 손근호 발행인
님, 김석범 시인님, 김현길 시인님 그리고 오영근 시인님께도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2006 서울경기 여름문학캠프 』를 마치고



월간 시사문단 서울경기지부 빈여백 동인들의 여름문학캠프가 6월 17일과 18일 이틀간에 걸쳐서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에서 펼쳐졌다. 빈여백의 서울경기지부 동인들의 문학캠프이지만 사실 강원지부 동인들과 함께한 한마당의 의미가득한 문학잔치였다.

17일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동쪽으로 달리는 차창 밖 유월의 호천(昊天)은 더할 수 없이 쾌청하고, 녹음방초도 싱그럽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모양을 한 시골의 초록마을들이 차창 밖에 지호지간으로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기들 거듭한다. 차내 일행들의 표정도 제천(霽天)처럼 맑고 요요(姚姚)하다. 세속을 떠나 출가(出家)하는 예비스님의 마음 같아 보인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던 것처럼 우리도 동(東)으로 달렸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다. 프로이드는 서쪽으로 가겠다는 잠재의식의 왜곡된 형태라 했고, 아담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끌려갔을 것이라 추리했다. 뉴튼은 동쪽방향으로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 했고, 갈릴레이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게 아니라 지구가 서에 동으로 자전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 까닭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들이 많은 것은 달마대사가 그 까닭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가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서방정토라 하여 서쪽으로 십억만토의 거리에 있다 한다. 달마가 극락이 있는 서방정토로 가지 아니하고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방의 수많은 인간들을 세속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모든 종교에서 그러하듯이 그것이 여래(如來)께서 대사에게 바라는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 빈여백의 서경동인들이 여름문학캠프를 동쪽으로 택한 것은 달마대사의 동행(東行)과 다르지 않다. 도원경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무릉도원을 상기한다. 무릉도원은 도원경 자신이 평소에 가고 싶고 또 그곳에서 살고 싶은 상상의 세상이다. 그곳은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와 같은 세상이다. 우리가 택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 무릉마을과 도원마을이 실재하니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그런 세상 속에서 팔고(八苦)와 오탁(五濁)을 씻어내고 산처럼 물처럼 청순한 큰마음과 기를 얻어서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그곳처럼 아름답게 가꾸어 가리라는 거룩한 의도와 각오를 다지기 위한 목적이 이번 문학캠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달마대사의 그것과는 방법론에서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의도나 목적은 양자모두가 같은 것이다.

극락세계·무릉도원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아름다운 정신의 세계이고, 그것은 우리 월간시사문단 작가들이 꿈꾸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우리 빈여백 작가들의 사랑과 열정들로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내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한다. 캠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런 생각으로 가슴속 동계를 느끼며 점점 초록에 침염(浸染)되고 있었다.
일행을 실은 내차는 자꾸만 초록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평창강이란 표지판이 언뜻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길안내를 맡은 서양인 비서녀인 미스 내비게이션이 초록에 빠져 넋을 잃고 있었다. 볼을 꼬집고 어깨를 흔들어 깨워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가 무릉도원의 환상에 빠져 한눈팔고 있는 사이에 초록이 그녀를 데리고 가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계획치도 않았던 백로 노니는 평창강의 풍취와 그림보다 아름다운 녹음을 즐길 수 있었다.

오던 길을 한참동안 되돌아 캠프장인 무릉가족콘도에 도착하니 호산(虎山)엔 호랑이 한 마리가 엎드려 꼬리를 흔들어 우리를 반기고, 서강(西江)의 물고기 친구들은 비발디의 여름을 노래하며 우리 일행을 환영한다. 저 멀리 앞산 봉우리들 초록단장이 옥협(玉頰)처럼 아름답다. 채원(菜園)의 풋 남새들이 정답다. 캠프장 앞마당 푸른 잔디엔 따가운 햇살들이 '축배의 노래' 연주에 바쁘고, 먼저 온 문우들이 그 속에서 축배를 들며 정들을 익히고 있었다.

오반을 마치고 원주의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문학공원을 찾았다. 선생님께서 그곳에서 25년간의 집필기간을 거쳐 총 5부 21권의 원고지 3만매가 넘는 분량의 역작 『토지』를 탄생시키신 곳이라는 점에서 걸음마인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게 했다. 선생님의 옛 집터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으로 와 닿았고, 그럴 때 마다 선생님께서는 펜촉 끝으로 나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콕콕 찌르셨다.

내가 산을 즐겨 찾고 오르내리면서 산 아래 텃밭들이 나타나곤 한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는 때가 많다. 이런 저런 풋 남새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어떤 신기에 빠져들곤 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옛집 마당에 조그마한 텃밭이 하나 있었다. “새벽 두시에 일어나 원고지 앞에 앉아 소설이 잘 나가지 않을 때면 무심하게 원고지를 바다 보다가 가만히 펜촉을 원고지에 대어 본다. 그러면 문장이 이어진다. 그래도 막힐 때면 부엌으로 들어가 그릇을 닦거나, 텃밭에서 따온 고추를 다듬거나 하셨다”던 바로 그 텃밭이다. 어쩌면 저 텃밭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역작을 그리시도록 무한한 생동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토지 속의 생동감이 그 텃밭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텃밭의 흙냄새를 맡으면서 암울했던 우리의 역사와 조국을 생각했고, 파릇파릇 솟아나는 푸성귀를 보면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것들을 알리고 싶었고 나라사랑을 몸에 배이게 하고 싶었을 것이라 싶었다.

선생님의 숨결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천(酒泉)이 있었다. 주천은 말 그대로 술이 솟아오르는 샘이다. 무릉이 있고, 도원이 있는 곳이니 그런 주천이 있을 법도 싶다. 신선처럼 살고 있는 무릉도원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니 땅에서 술이 솟을 것이란 생각이었으나 강원지부장이신 서 봉교 시인의 설명은 전혀 달랐다. 양반이 마시면 청주 맛이 나고, 상놈이 마시면 막걸리 맛이 난다 했다. 난 차를 세워 한잔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양반답지 못한 언행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없기에 그것이 탄로 날까 싶어서였다.

어둠이 녹음사이로 불어오는 청람(靑嵐)의 자장가로 호천에 노닐던 햇님동자를 잠재우기 시작할 무렵 우리 모두는 무릉의 앞마당에 모였다. 해거름 산허리에 녹음이 잠들고, 청량한 낭송이 서강에 흐르고 달빛 아래 문정(文情)이 익어간다. 강변 미루나무 온몸으로 트위스트 추며 신이 났다. 도끼자루야 혼자서 썩어가든지 말든지 내가 알 바 아니다.

얼마나 밤(夜)이 익었을까. 문우들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 홀로 남았다. 이 아름다운 무릉산천을 두고 어디로 모두 사라져버렸는지 아무도 없다. 문우들을 찾아 이방 저방 문 앞에 다가서보니 피로한 나그네의 콧노래 소리만 은은하고 가득하다. 차마 꿈속여행을 방해할까 보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무릉다리가 나를 보고 오라 손짓했다. 도연한 기분으로 다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서강을 굽어보니 나룻배 한척이 나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돛대도 삿대도 없이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다. 옥토끼가 초록서한을 나에게 내민다. 법흥사에서 자장율사가 날더러 지금 당장 나룻배를 타고 구경 오라고 보내온 짧은 서한이었다. 옥토끼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서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요선정에 이르러 달빛을 타고 사자산 산허리를 돌아 법흥사로 갔다. 절 입구에 다다르니 사천왕이 뿔난 방망이를 보고 나를 노려본다.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드니 사천왕 그때서야 미소를 짓고, 자장율사께서 신통을 부렸는지 내 앞에 반가운 표정으로 서 계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찰 안에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다. 사천왕의 미소의 의미는 아직도 나에겐 의문이다.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자장께선 사자산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시사문단 작가들께도 이야기 해 주라고 당부를 하셨다.

사재산(四在山)이라 불리기도 한다며 연화봉 석굴의 꿀, 먹을 수 있는 흙인 전단, 옻나무 그리고 산삼, 그 네 가지가 많아서 그렇게 사람들은 말들 하는데 산세가 불교의 상징동물인 사자형상의 허리와 같고 모든 지혈이 모인 길지이고, 뒤편 산봉우리가 연꽃같이 생긴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에 사자산이라 불린다고 하셨다. 적멸보궁이라 덧붙여 주셨다.

난 자장율사의 설명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용어들이 많아서 이해가 싶지 않았다.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그런 용어들도 모르나 질책할 것 같아서 질문을 포기하려다가 용기를 냈다.

“자장님, 진신사리는 무엇이며, 적멸보궁은 또 무엇이온지요?”

“아하! 정 작가는 불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구먼.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

수행자의 참된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작은 구슬모양의 유골을 사리(舍利)라 한다네. 부처님의 신골을 진신사리(眞身舍利)라 하고, 대소승의 일체 경전을 법신사리(法身舍利)라 한다네. 그리고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僧舍利)라 한다네. 석가세존께서는 열반 뒤 8곡4두(八斛四斗)나 되는 사리가 나왔다네.

그리고 말일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적멸보궁이라 하고, 그래서 불단만 있고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네. 그리고 승사리를 모신 것을 부도(浮圖) 또는 묘탑이라 하고 주로 석조탑 형식으로 만들고 사리탑이라고도 부른다네.

좀 더 들어보게나. 내가 중국 당나라에 오랫동안 있다가 귀국할 때 어렵사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얻어 왔다네. 우리나라에 모시고 싶어서였지. 내가 불사리를 봉안한 곳은 평창의 오대산 중대사,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 양산의 통도사 그리고 이곳 사자산 법흥사라네. 지금은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에도 모셔두고 있는데 그것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하기 위해서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라네.

오대산의 그것은 말일세. 그때가 선덕여왕 때였어. 내가 오대산을 둘러보니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가 연꽃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겠니. 그래서 그 연꽃모양의 한가운데 모셨지. 언젠가 시간나면 한번 꼭 들러 보게나. 내가 설명을 잘 해 주었는지 모르겠구먼.“

자장율사를 따르며 적멸보궁으로 이르는 소나무 숲길은 신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서방정토의 장관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 서니, 나라는 인간이 보잘 것 없는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외양도 그렇고 기개도 그러하고 품어내는 향도 그러했다.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오지(五枝)가 오그라들었다. 적멸보궁에 이어서 징효대사 부도, 자장율사께서 수행하셨다는 토굴, 사리탑, 흥녕선원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속세로부터 출가하여 오도(悟道)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과정은 어쩌면 나 같은 세인이 마지막으로 도달하고픈 꿈이 아닐까. 학문의 길이나 문학의 길도 스님 같은 그런 수행의 과정을 거쳐야 오도와 같은 그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 아닐까. 바로 그런 바탕생각으로 여름문학캠프가 열리어지고 내가 참석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왔다. 합장으로 자장율사께 감사하다는 말씀 남기고 명함 한 장을 청해 받고서 난 그곳을 떠나야 했다. 옥토끼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왔기 때문이다.

옥토끼의 나룻배로 나를 데려다 준 곳은 무릉다리 아래였다. 다리위에 올라앉아 침취(沈醉)한 채 호산을 마주하며 흐릿한 정신을 가다듬는데 누군가가 나의 손을 끌었다. 마루에 이부자리를 준비해 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고맙습니다”를 거듭하고 난 세속의 모든 끈을 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잠 길에 어렴풋이 선녀들의 음성이 들리기에 부리나케 일어나서 바깥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내가 잔 곳은 선녀들만의 침소인 대청마루였다. 여인천국에서 내가 잠을 잤던 것이다. 아침공기가 상큼하다. 주변을 산책하다가 채원 앞에서 발길이 멈추어졌다. 갖가지 싱그러운 남새들이 파릇파릇 나를 홀려댔다. 내 어린 천진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곳엔 나의 어린 추억과 낭만이 가득했다. 그냥 뛰어들려는데 느닷없이 도 창회 선생님의 수필집『별밤』중‘선심(善心)’이란 제목의 수필 속 이야기가 내 발목을 잡았다. 선생님께서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가평의 명지산 계곡에서 야영생활을 조금 하셨는데 이른 아침 먼동이 희멀거니 터 올 때 햇밤톨 몇 개 주워 볼까하고 비닐봉지를 들고 나서셨다. 갑자기 변의가 생겨서 근처 풀밭을 택해 실례를 하고난 뒤 엉덩이를 뒤로 뽑고 어기적거리며 나오다 고추밭을 발견하고 전날 저녁 잡아 놓은 메기가 생각나서 메기탕에 넣을 풋고추 몇 개를 딸 속셈으로 밭고랑에 들어가 고추 몇 개를 따다가 갑작스레 나타난 고추밭 주인 아녀자에게 들켜서 남들이 겪어 서는 아니 될 수모와 무안을 경험하신 배꼽 터지는 이야기이다.

고추밭 주인아녀자의 이야기처럼 “남의 고추”에 왜 손을 대셔가지고는… 선생님의 성이 도씨이니 도선생이라 그러셨다손 치더라도 나는 성이 정가이니 그럴 순 없었다.

텃밭 주인인 권영선 시인께서는 분주했다. 허락을 받고 텃밭 구석구석을 돌며 내 어린 그것들을 이것저것 가득 따서 담았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한참동안을 채원에서 나의 도심을 채우고 나오니 문우들이 아침여행을 떠나고 몇 안보였다. 난 문우들이 너무 괘씸하고 약이 올라 채원의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큰소리로 엉엉 울고 말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권 시인님께 아이처럼 밥 달라고 졸랐다. 작일저녁에 통돼지 바비큐로 배를 가득 채웠었는데도 그토록 배가 고픈 것은 아마도 내가 밤에 법흥사를 돌아다녔던 탓이라 여겨졌다. 문우 몇 분과 함께 조반을 배부르게 마치고 함포고복(含哺鼓腹)의 감으로 배를 두드리고 앉았는데 청령포를 다녀온 손 근호 발행인님께서 돌아와서 자랑을 해 대며 약을 올려댔다. 잔디밭 정원의 식탁에 둘러앉아 조식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아침 반찬에 고추무침이 있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고추가 매운 줄 알고 젓가락들이 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잡수어 보시라 권했더니 여류작가님들께서 드셔보고는 맛이 너무 좋다고 모두들 한 말씀씩 하셨다. “고추 맛이 너무 좋지요?”라고 했더니 “고추가 참 맛있어요”한다. 발행인님께서 웃음을 참지 못하여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쳐다보고는 자리를 피하며 나 혼자 미소를 지었다.

미륵암에서 요선정에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는 숲속 산길이다. 무릉에서 40여년을 살고 있는 무릉지기 서봉교 시인은 안내에 바쁘기만 하다. 곳곳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문우들의 눈망울과 표정은 선생님 따라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 같이 천진난만이다. 미륵암 암자에서 내 어린 추억과 낭만을 또 만났다. 빨갛게 익은 앵두, 새까만 오디가 거기에 있었다. 내 어릴 때 고향의 맛이다. 까무러칠 정도로 그리워했던 맛이다. 미륵암 스님이 마당에 나오셔서 앵두를 따 먹는 우리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셨다. 꾸짖지 아니하고 미소 지울 수 있는 것은 불심의 그 어떤 경지에 이름이리라. 나도 그런 불심이었으면.

캠프장 잔디밭에 햇살들이 뒹굴며 신나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샘이 났는지 한바탕의 족구시합이 펼쳐졌다. 강바람 솔솔 불어오는 그늘에 앉아서 구경하는 맛이 그만이다. 발은 발대로, 공은 공대로 노는 모습이 우습다. 마음 따로 몸 따로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다. 마치 여기저기에 모가 난 내 마음 같다. 족구를 구경하면서 공처럼 둥글게 살고 싶다.

어느 날 큰 스님이 제자 스님의 수행의 정도를 시험해 보기 위해 대웅전 앞마당에 불러놓고는 작대기로 마당에 동그란 원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해 과제를 던졌다.

“ 너희들은 동그라미 안에 서서도 아니 되고 바깥에 서도 아니 된다. 누가 한번 서 보겠느냐?”했더니 평소에 총명하고 영리한 제자 스님 한 분이 나섰다. 그리고는 금(線)위에 기립자세로 섰다. 큰 스님이 고개를 흔든다. 아니라는 뜻이다. 모두가 망설이고 선뜻 어느 누가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평소에 말이 없이 조용하던 제자스님이 나왔다. 그 제자 스님은 고무신을 신은 발로 금을 모두 지워버리고는 아무 곳에나 섰다. 그랬더니. 큰 스님께서 고개를 끄떡이셨다. 큰스님이 기다리는 정답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행자는 오도의 경지에 이르는 동안에 어느 누구와도 금을 긋고 살아서는 아니 된다는 깨우침의 이야기이다.

족구시합의 모습을 관전하면서, 큰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수 있었음은 나에겐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공처럼 둥글게 살아보련다.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지낸 이틀간은 나에겐 참으로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준 문학캠프였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여름문학캠프가 나에게 던져준 참의미와 베풀어 주셨던 문우지정들로 문학에의 열정을 더욱 쏟아내고 싶다. 그리하여 한 마리의 파랑새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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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윤응섭님의 댓글

윤응섭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느새 이렇게 장수필을 쓰셨는지..그 열성과 성의에..또 부지런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찌됐던 우리 시사문단의 서울경기 문인들이 강원지부 문인들과 어울려 함께한 서강에서의 여름문학캠프가 서로의 문정을 확인한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술이 샘솟는 곳이라는 의미의 주천(酒泉)이라는 지명이 아니더라도 그야말로 무릉도원(그곳이 무릉리라 했지요),신선의 세계에서 여러 문우님들과 함께 푹 파묻혀 있다 왔습니다..
  술은 신선들이 마시던 것을 인간들이 훔쳐서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서 마시는 것이라 하셨던가요?..
  저는 신선주를 마시고 신선의 세계에 빠져보려고 했건만..
도가 지나쳤는지 둘째날까지 명정(酩酊)의 세계에서 헤매다 왔지요..ㅎㅎ..그 후유증에 아직까지 힘들고..
  정해영 작가님의 불법에 대한 조예에 다시 한번 고개 숙이면서 명정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기억일랑 이글을 보면서 대리경험을 한것으로 만족하렵니다..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저에게 주신 '그 남자의 소꿉놀이'는 가끔씩 펼쳐보며 소중한 삶의 지표로 삼겠습니다..

함은숙님의 댓글

함은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 여름밤 다시 한번 문정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초록의 싱그러운 향연에 빠져
일박이일이 어찌 갔는지 모르고 헤어질때는  아쉬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날날을 벌써 기다려 봅니다

박민순님의 댓글

박민순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정해영작가님 벌써 이렇게 긴장르에 글을 함께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정말 뜻잇는 문학 모임이었습니다
시사문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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