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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과 직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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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1,848회 작성일 2006-09-0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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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과 직소폭포





우리 동네에 금란산악회가 있다. 2001년 7월 한여름 날,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내변산으로 무박산행을 아내와 함께 따라나섰다. 산악회에 소속되고 두 번째 산행이다. 서울에서 저녁 10시에 출발한 버스가 28명의 우리 일행을 싣고 산행초입지인 내소사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그날따라 몹시 흐려 달님은 먹구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지러진 표정으로 는개를 뿌리고 있었다. 헤드랜턴이나 회중전등으로 길을 밝혀 보지만 옆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위(四圍)는 암흑이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여덟 짝 문살에 연꽃과 국화로 정교하게 새겨진 꽃 창살이 예쁘다 들었지만, 단청이 빼어나다 들었지만, 잘 생긴 전나무가 사관생도처럼 씩씩하게 무리지어 숲을 이룬다 들었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앞선 이의 희미한 형체뿐이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세찬 계곡물 소리와 대열의 발자국 소리뿐이다. 어두울수록 별빛은 빛난다 하지만, 부엉이는 어두운 밤에만 운다고 하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가끔 젊은 리더들이 내지르는 산행구호는 흐린 날 새벽의 암흑 속에서 길은 인간을 앞으로 몰아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어령 선생의 글귀처럼 일행들을 자꾸만 앞으로 몰아세운다. 내소사에서 관음봉까지 오르는 길은 좁은 가파른 깔딱 고개여서 미끄럽기 짝이 없고, 도상(途上)은 흙탕물투서이어서 질퍽거린다. 마치 나의 성정머리를 시험하는 듯 고약하기만 하다.

암흑 속을 대열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헉헉대며 한 시간 남짓 오르고 나서야 관음봉에 이르렀다, 회색도시에서 꽉 막혔던 숨통이 그때서야 터지기 시작하고 먼동도 희붐히 트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에 산봉우리가 첩첩으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흐릿한 반공(半空)에는 먹구름이 검은 가운을 걸친 정복자의 무서운 표정처럼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겁에 질려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어둠 속 숲속으로 뒷걸음질 치며 달아나려는데 멀찌감치 산 아래 산정호수가 물안개 드리우고 요염한 자태로 우리를 향해 오라 손짓한다. 마치 호수나라 천사가 속살이 비치는 운무(雲霧)로 짠 엷은 드레스를 입고 해님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해님의 손길이 가 닿으면 그녀는 발가숭이가 되겠지. 그 모습이 보고 싶지만 해님은 기척조차 없다.

능선을 따라 직소폭포로 가는 길은 바위타기와 워킹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교묘한 맛이 숨어 있었다. 직소폭포에 이르기 전 산의 야릇한 기운이 감도는 헬기장에서 앞선 일행들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이 지친모습으로 부축을 받으며 나타났다. 후미리더의 표정에 고생 꽤나 했던 것이 역력한데도 애써 감추려는 기색이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아름답다.

그때였다. 시꺼먼 소나기가 후두두둑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하다. 내변산 탐승을 즐기려는 나에게 소나기가 퍼붓는 까닭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엄중한 경고이고, 나의 죄로 인한 단체기합일지도 모른다. 몸으로 지은 죄, 입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우의(雨衣)로 나를 숨기고 죄스런 마음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산행대장의 집합이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산행대장은 일행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고 나서 일기불순으로 산행코스의 변경을 알렸다. 내소사-관음봉-직소폭포-봉래구곡-선인봉을 거쳐 남여치매표소로 하산키로 계획했던 것을 직소폭포를 거쳐 빠른 코스로 하산한다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낙오도 있어서도 아니 된다는 점과 철저한 안전위주의 산행이어야 한다는 주지사항에 모두들 공감하면서 직소폭포를 행했다.

직소폭포로 가는 도중 빗속의 아기자기한 바위 타기는 리스크가 아슬아슬하게 어우러져 그런대로 재미났다. 바윗길을 벗어나자 협곡이 우리 일행의 행로를 가로막고 나타났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무릎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젊은 리더들이 여성들과 나이든 분을 일일이 업어서 건네줌으로서 그곳을 지날 수 있었다. 요소요소마다 지키고 서서 일행들의 안전산행을 도우는 젊은 리더들의 모습이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 없었다. 귀경하면 지갑 열어 박주 한통 값이라도 기꺼이 풀어서 그들의 헌신적 수고에 감사하고, 노래방이라도 데리고 가서 피로를 풀어주어야만 될 것 같다.

능선 위 잘 생긴 한 그루의 노송(老松) 곁에 오도카니 서서 건너편을 굽어보니 기절(奇節)의 풍광이 펼쳐져 있다. 20미터의 물줄기와 단애(斷崖) 그리고 소(沼)가 펼쳐내는 그림이 그러하다. 가족 모두가 깊이 잠들고 정적(靜寂)이 감도는 고요한 야밤에 젊은 여인네가 요강에 앉아 소피보는 풍경이 내 안전(眼前)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격성(激聲)의 폭포수 소리는 요강에 구멍을 뚫을 것처럼 세차고 강해서 젊음과 색정이 용솟음치는 듯하다. 비류직하(飛流直下)하는 폭포수가 와 닿은 곳은 요강 속처럼 소(沼)를 이루고 있다. 일견(一見)으로 하얗게 부서져 내리거나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마치 옥녀의 참을 수 없는 격정(激情)처럼 보인다. 폭포와 마주하고 있는 노송은 직소폭포와 나이차가 많은 부부처럼 보인다. 노송은 황혼기 선비의 기품처럼 말이 없는 남편 같다면 직소폭포와 옥녀담은 젊음과 사랑을 몹시 갈구하는 아내처럼 보인다. 늙은 남편이 차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맞은편에 오도카니 서서 젊은 아내의 그런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까워 보인다.

그러면서도 둘은 성격적으로 이미 닮아있어 보인다. 부부는 닮는다지 않는가. 노송의 사시사철 푸른 마음과 쏟아져 내리는 한결같은 폭포의 마음이 그렇다. 그것은 상록(常綠)의 정(情)이요, 사랑이요, 도리다.

직소폭포와 옥녀담(玉女潭)은 이름마냥 아리따운 여인의 은밀한 장면을 생생히 담은 보기 드문 일품(逸品)이다. 한마디로 격절탄상(擊節嘆賞)이다. 작품이 세인들에게 감탄으로 와 닿는 까닭은 그것이 전지전능한 신의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술가의 창작품이라는 것은 창조주의 작품을 흉내 낸 것이거나 모조품일 뿐이라는 어느 노학자의 이야기를 빌리면 그것은 분명 진품이다. 오랜만에 탐승 중에 대하는 걸작이다.

하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노송과 직소폭포 부부의 마음을 떠올리며 아내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소리 없이 꾸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서 발가벗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내가 나를 발가벗겨 거실에 꿇어앉혀 놓고 나의 죄에 대한 심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나 싶었다. 시선을 거실바닥에 꽂은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어물거리면서 하나씩 옷을 벗고 있는데“빨리 벗으라니깐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아내를 힐끗 쳐다보니 아내는 세탁기를 열어둔 채 빨랫감을 챙기고 있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홀딱 벗어 던져주곤 욕실에 뛰어들어 숨어버리고 말았다.

거실에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가 어느 카운터테너의 미묘한 음색으로 깔리고. 욕실 문틈 사이로 은은하게 흘러든다. 샤워꼭지에선 산연(潸然)의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 고개를 떨어뜨리고 숨죽인 채 웅크리고 앉아 내가 살아오면서 저지른 죄들에 대한 선고를 기다린다.

『 나를 울게 내버려 두오/ 슬픈 운명에 나 한 숨 짓네/ 자유 위해 난 한 숨 짓네// 제발 끊어 주오/ 고통의 사슬을/ 나의 형벌을 다만 자비로.』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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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범님의 댓글

no_profile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행을 통한 정겨운 글입니다....  예전 새벽등정때가 생각납니다.... 안개를 휘날리며,  환한 달빛으로 등산로는 문제 없었으나  암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지금도 추억으로 아련거립니다.. ..   

김춘희님의 댓글

김춘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송과 직소폭포
마음부터 설레이게 합니다.
멋드러지게 품어내는 노송과
시원스레 쏟아내는 폭포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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