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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醉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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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1,895회 작성일 2006-12-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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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醉客)







어둠이 잔뜩 깔린 깊은 밤이다. 일상의 갖가지 짐들을 벗어두고 별나라 여행을 재미나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정적을 깬다. 이 사각에 웬 밤손님이… 조금은 짜증스런 기분으로 대문을 열고 나가보니 낯선 남자다. 넥타이가 느슨하게 목에 걸려있고, 셔츠의 앞단추들이 헝클어진 모습으로 보아 취객이다. 새벽까지 은하(銀河)나라 선녀들의 요요(姚姚)한 자태에 취했는지, 아니면 죽마고우들의 도타운 정(情)에 취했는지 알 수 없으나 꽤나 취해 있었다. 그는 실례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황급히 돌아갔다.

아파트라는 것이 새장 같은 모양이라 취객으로서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미로처럼 쉽지 않으리라 이해하고 별품에 파고들어 잠을 청하려는데 또다시 대문이 시끄럽다. 그 손님이 또 온 것이다. 이번에도 나를 쳐다보자마자 도망치듯 달아나버렸다.

나는 다시 별품으로 돌아가 별나라 왕자가 되어 은하나라 공주와 소꿉놀이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또다시 초인종 소리가 고요한 거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새침해지는 은하나라 공주에게 금방 돌아올 것이라 달래놓고 어기적거리며 나가보니 그가 또 왔다. 그때 뻐꾸기는 새벽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을 찾지 못함을 간파하고 “저가 댁을 찾아드리겠습니다. 동호수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손을 흔들며 갈지자걸음으로 부리나케 계단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한 시간가량을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리며 헤매고 다녔을 거라고 생각하니 못 본체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인터폰으로 경비실을 호출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지금 어디에선가 헤매고 있을 그분을 찾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결과를 알려 받고자 한 것은 경비원에게 확실히 책임을 부여하고자 하는 심사이기도 했지만 그분이 안전하게 댁을 찾았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실에서 모셔다 드렸다는 연락이 왔다. 10동 4층에 사시는 분이었는데 9동에서 헤맸던 것이다. 그러고 난 후 나는 그날 밤 끝내 은하나라 공주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그분의 모습이 마치 어느 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동창생 녀석들과 어울려 술 한판 펼쳐놓고 을유년(乙酉年)을 환송하고 도연한 취기(醉氣)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서부터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집근처에 다다라 더욱 혼미해지면서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를 써보지만 낡은 형광등처럼 희미하게 점멸만 거듭했다. 두 다리는 죽은 해삼처럼 완전히 풀려서 흐느적거리는 꼴 볼견의 모양새다. 미혹(迷惑)의 정신으로 갈팡질팡 내 집을 더듬어 가다가 가로등도 없는 어두컴컴한 구석진 어느 곳에 그만 쳐 박혀버리고 말았다. 밤이 깊어 인적은 거의 없었다. 한참동안을 그렇게 쳐 박혀 있다가 정신이 잠깐 든 틈을 이용해서 사력을 다해서 일어섰다. 주위를 살펴보니 주차장인 듯 보였지만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승용차에 몸을 기댄 채 정신을 모으고 있는데 어렴풋이 인기척이 들려왔다. 젊은 남녀 한 쌍이 걸어오고 있었다. 구세주를 만나는 듯싶었다. 신자(信者)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나를 비켜 휑하니 달아나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구세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 학창시절 배고파 허기질 때 하느님에게 욕을 실컷 퍼부은 적이 있었는데 그 엄청난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욕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떠나려는 정신머리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쏟아댔다. 그래야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웬 중년 남자분이 지나가는 것을 희미하게 발견했다. 난 정신을 바짝 차려서 혀 꼬부라진 말이지만 정중한 한국말로 도움을 청했다. 아까처럼 아프리카 원주민언어로 말하다가는 외면당할 것 같아서였다. “좀 도와주세요. 술이 너무 취해서 우리 집을 찾지 못하겠어요.” 그분의 친절한 도움으로 집에까지 데려다 주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또 있다. 20대 젊은 시절, 부산의 대치고개 위 마을에 살고 있었을 때이다. 낮에는 직장생활, 밤에는 가정교사생활을 할 때이다. 친구 녀석 장가가는 날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기분 좋은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과음을 하고 말았다. 그땐 돌도 씹어 삼킬 정도로 젊음이 왕성하던 때라서 과음 따위를 걱정 해본 적은 없었다. 동래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서구에 있는 대치고개 정상에서 하차해야 했었는데 그만 한 정류소를 남겨두고 동아대학교 정문 앞에 하차를 해버린 것이 착오였다. 만취 때문이었다. 그때는 자정을 기하여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이고 내가 탄 시내버스는 막차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겨울밤 상도(霜刀)의 칼바람이 살을 에는 듯 매섭다. 시리다 못해 아리기까지 했다. 겨울이 깊을수록 더욱 깊은 뿌리를 가꾼다고 하더니만 아마도 그런가 싶다. 추워야 겨울 맛이라지만 그 맛은 죽을 맛이다. 초점 잃은 눈으로 사위(四圍)를 살펴보니 도대체 전혀 낯선 곳이다. 금방이라도 칼 든 강도가 어느 구석진 모퉁이에서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가로등 하나 없는 적막이 드리워진 암흑의 외진 도로다. 내 고향에서는 날씨가 추울수록 별들이 더욱 빛났지만 그날 그곳은 아니었다. 방향감각을 찾으려 정신을 가다듬어 보지만 도대체 분간이 되지 않는다. 길 건너편 구멍가게에서 가느다란 생명의 불빛이 어렵사리 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인 듯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자정이 임박하여 쪽문을 닫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려 무언가 지껄이지만 취객의 헛소리라 두서가 없다. 아주머니께서 손짓하며 무어라 이야기를 해 주는데 도대체 내 귀엔 아프리카 말처럼 들리기만 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다. 통행금지 시간이라 쪽문은 무정히도 닫히고 말았다.

그냥 쓰러져 누워 하늘을 이고 잠들고 싶은데, 하늘 아래 나의 신부로 점지 받은 이름 모를 규수의 가냘픈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임께서 총각귀신이 되면 저는 어이 합니까, 힘내세요,! 내가 있잖아요!“ 라는 간절하고도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나를 부추겨 세웠다. 칼바람 헤치며 인기척 하나 없는 깜깜한 대지를 사력을 다하여 더듬으며 비틀비틀 걷는다. 영락없이 술 취한 장님이 지팡이도 없이 헤매는 모양새다.

얼마를 걸었을까. 대학생인 듯 보이는 한 사람이 헐레벌떡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내 더듬이에 감지되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일진대 강도라도 좋고 뻑치기 꾼이라도 좋으니 도움을 청해야 했다. 엉겁결에 생각난 말이란 것이 “사람 살려요”였다. 큰소리로 몇 번을 외쳐댔다. 그가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내게로 다가왔다. 그 친구의 부축으로 귀가하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오밤중에 자기 집인 양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려대는 취객처럼 나도 지옥 맛을 톡톡히 본 것이다. 술이란 것이 원래 신선들이 만들어 즐기던 것이어서인지 인간이 마시게 되면 참으로 요상하고 기이한 세상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리라. 술은 인간관계를 수어지교(水魚之交)처럼 친숙하게 맺어주기도 하고, 낭만과 흥을 불러일으켜 천국을 구경시켜주기도 하지만 인간을 개(犬)로 둔갑시키거나 간을 배 밖으로 끌어내어 시문난적을 만들기도 하여 지옥을 맛보게도 한다.

난 만취(滿醉)로 지옥 맛을 톡톡히 볼만큼 보았으니 이젠 천국구경이나 실컷 즐기려한다. 사시장철 밤하늘에 만월이 뜨고 보랏빛 별빛과 은하(銀河)가 쏟아져 내려 취객들의 귀가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천국으로 향하는 천로(天路)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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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수룡님의 댓글

최수룡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해영 작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술먹는 사람이라면 경험 하였을 지옥의 맛을 말입니다. 갑자기 저도 추운 겨울에 술이 사람을 먹어서 볼썽사나운 행동을 하였던 일들이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는 저도 천국 구경이나 실컷 즐길수 있도록 반성하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루어지시길 기원합니다.

朴明春님의 댓글

朴明春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취객에 칼바람은 또 한 번 죽여준다
오밤중 정신세계 몽롱한 만취 선생
하늘을 이고 잠들고파 만월 보라 별천지.

정해영 작가님
새해 정해년에는 문운 빛나시고
벼락부자 행운의 해 되십시오^^

이순섭님의 댓글

이순섭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해영 작가님 참 술이 오묘한 것 같습니다. 적당히 마시면 보약이 되는데 한 두 잔 더 마신게 화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집을 잘못 찾은 취객에게 선처 베프신 아량 존경스럽습니다. 정해년 새해 하시는 사업 번창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박태원님의 댓글

박태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저도 술을 즐기는 편인데,
풍경이 좋고 시심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여 마시곤 합니다.
낯설고 냉냉한 분위기에서는 자제하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또 여럿이 모여 대작하면 주량을 넘겨 과음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또한 삼가 조심해야 겠습니다.
새해에는 술로 인해 체면을 상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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