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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어감에 대하여 >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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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2,264회 작성일 2007-01-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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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그 곳은 떡집이 즐비한 낙원상가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서 감사원 길로 들어서면 소문 없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예부터 가문이 흥한 부잣집들이 많아 잔치가 많았기에 떡집이 즐비한 낙원상가를 아래로 두고 있는 서울의 유명한 한옥마을인 것이다. 그 곳을 지나던 길에 고희를 넘기신 듯한 할머니를 뵈었다. 멋쟁이 모자를 쓰고 망토까지 두르신 모습은 누가 보아도 한 눈에 부잣집 마나님임이 짐작되는 할머니다. 그런데 그 멋쟁이 할머니의 손에는 뜻밖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다름이 아닌 지팡이였다. 그 할머니가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어미 게가 옆 걸음으로 걸으시듯 중풍으로 인한 불편한 다리를 힘겹게 내딛는 발걸음으로 지팡이까지 짚고 계셨지만 멋진 옷차림을 하고 길을 나섰다는 점이다.

그 연세에 그 옷차림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고, 중풍 걸린 걸음만으로도 할머니 스스로 거리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기에 충분했지만, 그 할머니는 세상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뽀얀 얼굴에 어여쁘게 칠해진 입술, 지척에서 만난 그 할머니를 바라보는 동안 참 멋진 할머니, 정말 존경받을 만한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멋지게 산다는 것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어 갔다. 그 할머니의 옷차림이 부러워서 그랬을까? 그건 아니다.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곱게 가꾸고 사시는 할머니의 움츠려들지 않는 당당함 때문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으니, 필립스라는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가면서 익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난 이 말을 참으로 좋아한다. 흐르는 구름과 스쳐가는 바람과 차마 내 곁에 묶어두지 못한 그 옛날의 풋사랑까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슴 속에 익혀갈 줄 아는 삶. 이 얼마나 가슴에 담아두고 오래오래 묵혀두고 곱씹어도 좋은 말인가 싶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아서, 오르면 오를수록 숨은 차지만 시야는 점점 넓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복잡다단한 인간사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나면 부귀도 명예도 성냄도 다 부질 없음을 익히 알게 될 것이니, 굳이 애써 고민하지 않아도 절로 마음가짐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는 것이 등산과 같다는 이 말 또한 얼마나 갚진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인가 싶다.

익어가는 삶이란 정말 어떤 것일까? 거울을 마주하다 문뜩 낯선 나를 마주함이 익숙해질 즈음이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때론 나에 대한 실망감으로 또 때론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을 느끼는 날이면 별 이유도 없이 화기(火氣)를 돋우고 있는 그 증상이 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刃一時之忿免百日之憂(인일시지분면백일지우). 순간의 화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이 사라진다는 말로, 나는 명심보감에 있는 이 말을 늘 상 가슴에 두고 산다. 一笑一少一怒一老(일소일소일노일노)라고 하지 않던가.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노하면 한 번 늙는다는 말이다. 분노하지 말아야겠다. 아직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성큼성큼 겁 없이 다가서는 남은 생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와도 미소만큼은 꼭 챙기면서 살아가야겠다. 오늘부터라도 낙엽 구르는 모습만 보아도 하늘로 동동 띄우던 그 시절의 웃음소리를 되찾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섭섭하고 화나는 마음일랑은 두리둥실 물 따라 구름 따라 전설 따라 흘려보내야 내 남은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익어가는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무슨 일이든지 서두르다보면 실수를 유발하기 쉬운 법이다. 얼마 안 남은 인생이란 생각에 빠지고 나면 너나없이 서두르게 된다. 서두르다 자칫 남은 인생을 그르치게 될지도 모른다. 익어가는 삶. 살아 숨 쉰다고 하여 아무나 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서둘러 욕심 부릴 일이 꼭 하나 있다면 주위 분들과 알게 모르게 세상에서 받은 관심과 사랑을 되돌려주는 일일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몸소 봉사도 좋겠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경제적인 후원도 좋을 것이다. 나 가진 것보다 적은 세상의 누군가를 향해서 쑥스럽지만 마음을 열고 손길을 내미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만연하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태어날 때는 혼자 울고 지켜보는 이들이 행복해서 웃지만,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혼자 웃고 지켜보는 이들이 슬퍼서 운다고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돌아갈 때 예정된 수순으로 웃으면서 갈 수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내려서 좋고, 비가 멈추면 또 멈춰서 좋다고 생각하며 살자.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살다 갈 때도 여전히 빈손으로 돌아갈 걸 익히 알고 있으면서 집착할 그 무엇이 있을까? 태양은 진다. 서서히 말없이 진다. 그러다 순간 어둠을 앞세우고 사라진 태양은 밤을 이겨내고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안고 떠오른다. 잠시 빌려 살다 간 인생에 너와 나 우리 모두 각각의 작은 삶들이 모여서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고 스스로 여길 수 있는 삶이라면, 그래서 떠날 때 맘 놓고 웃을 수 있는 삶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찡그려도 하루는 가고, 웃어도 하루는 간다. 잠시 몸 누인 끝에 낮잠을 늘어지게 자도 하루는 가고, 지켜보는 이 없어 검푸른 제 울음에 충실한 겨울바다와 마주해도 하루는 간다. 양지바른 곳을 따라 맨발로 걸어도 하루는 가고, 겨울 빗소리에 누군가가 그리워 커피 잔을 감싸 쥐어도 하루는 가게 마련이다. 이렇게 새털같이 많은 날 중에 내 남은 삶의 익어감에 대하여 고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리라.

몸이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대로 그 순간에 당당하고 여유롭게 살아야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몸이 더 불편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요 이치가 아닌가 말이다. 오늘 가진 나만의 조건을 최선으로 생각하느냐 최악으로 생각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말. 하나 뿐인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말. 정말 세상에 떠돌고 떠돌아 삼척동자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아무나 실천하기는 힘든 말이다. 하여,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맞이하기 위해 익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용기를 잃어갈 때면 북촌 언덕위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해내리라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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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朴明春님의 댓글

朴明春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刃一時之忿免百日之憂(인일시지분면백일지우). 순간의 화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이 사라진다는 말로, 나는 명심보감에 있는 이 말을 늘 상 가슴에 두고 산다. 一笑一少一怒一老(일소일소일노일노)라고 하지 않던가. ~ 감상잘했습니다. 요즘은 곱게 웃어야 입가의 주름도 예뻐 복이 들어 온다고 하던가요?북촌 언덕위 할머니의 모습 아름답습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명춘 시인님,
시인님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에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이란 단어조차 거창한 시간에 문득 깨어난 잠이 어디론가 내빼버리고 만 새벽을 지나
7시를 넘고 있는 시간입니다.
동터오는 아침 행복하게 맞이하시기 바라며 물러갑니다.
유자차 한 잔 놓아두고 갑니다. ^^*

최경용님의 댓글

최경용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항상 동심에서 같이 어울려주는 소탈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이 쉽게 잔잔히 닦아서는 정감
순진한 아이되어 천진하게 할아버지 손을 잡아 따뜻한 손바닥을 내 얼굴에 부벼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경용 시인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저 지금 춤 춰도 되는 건가요? ㅎ~
늘 변화없는 성원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밤~~, ple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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