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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의 실체/조지훈...사상계(1966.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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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태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 댓글 4건 조회 1,653회 작성일 2007-01-31 11:10

본문

한국사상(韓國思想)의 실체(實體)가 있느냐


 한국사상이란 말은 우리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한국사상이란 실체가 과연 있느냐하는 근본문제에 대한 회의(懷疑)에서이다. 우리 지식인들의 일반적 견해는 한국사상이 따로 없다는 결론으로 기운 감이 있다. 이른 바 한국사상이란 따지고 보면 중국사상(中國思想)이요, 아니면 인도사상(印度思想)이요, 서구사상(西歐思想)이니 오로지 한국만이 가진 한국 고유사상(固有思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매우 소박한 또는 위험한 유견(謬見)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상이 따로 없다는 견해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오해에서 연유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문화(文化) 내지 사상이란 말의 본질(本質)에 대한 오해요, 다른 하나는 고유라는 말과 민족적(民族的) 개성(個性)이라는 어의(語義)에 대한 오해인 것이다.
 
  첫째, 문화라든가 사상은 이동하고 복합(複合)되는 것이 본질이고 그 이동하고 복합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민족문화(民族文化)의 개성적(個性的) 성격을 ‘고유(固有)’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문화 또는 사상이란 것은 인류 일반의 생활과 사고방식(思考方式)의 민족 개성적 양식화(樣式化)란 뜻에서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인류문화(人類文化)는 원시시대의 생활문화(生活文化)나 심리사고(心理四考)에서는 거의 같았고 발달될수록 개성화(個性化)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있는 한국문화라든가 사상은 실상 모두 인류가 비슷하게 밟은 말하자면 한국만이 가진 문화나 사상이라고 할 수 없는 도리어 인류일반문화에 귀착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인종(人種)과 풍토(風土)와 역사적 환경(環境)의 제 요소에 의한 이동 복합의 영향을 전제하지 않은 순수(純粹)한국사상을 찾는다는 것은 한국적사상이라 이름 지을 성질의 것이 아닌 원시문화, 또는 인류일반의 공통문화를 찾는 결과가 된다.
 
  둘째, ‘고유’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본디부터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것과 같으면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다른 곳에서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을 고유라고 한다. 고유사상(固有思想)은 본디부터 있는 사상이 아니라 오늘 이렇게 개성적으로, 주체적(主體的)으로 있게 된 사상이란 뜻이 된다.
 
  다시 말해 인류 일반사상의 한국적(韓國的) 존재양식(存在樣式) 또는 한국민족이 같은 풍토적 환경에서, 같은 역사적(歷史的) 환경에서 공동의 집단생활(集團生活)을 영위해 오는 동안 공동으로 발견된 사물에 대한 공동의 사고방식을 우리는 한국고유사상(韓國固有思想)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고유사상이란 고유는 고유명사(固有名詞)라는 말의 고유와 같은 뜻이다. 마치 서울이란 도시, YMCA회관이라는 건물, 이 조지훈이란 사람은 그 외관(外觀)에 있어 다른 도시, 다른 건물, 다른 사람과 비슷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이를 고유한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비슷해서 다른 것과 아주 다르진 않고 여러 가지 흐름이 어울려서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서울과 YMCA와 조지훈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까닭은 곧 서울과 종로 YMCA회관과 조지훈은 그 존재양식 곧 외관, 유래(由來), 역사, 내용, 의의(意義)의 여러 면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다른 개성과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사상(韓國思想)의 실재성(實在性)의 논리(論理)도 이와 꼭 같은 것이다. 만일 다른 민족사상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면 한국사상이란 이름을 붙일 값어치가 없다 한다면 그러한 논리는 한국사상이란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그치지 않고 독일사상, 영국사상, 프랑스사상이란 것도 따로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유는 독일, 영국, 프랑스의 사상도 인류의 사상이요, 그리스 로마 이래의 서구사상의 흐름을 각기 제 나름대로 개성화(個性化)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독일사상을 관념론(觀念論)으로, 영국사상을 경험론(經驗論)으로, 프랑스사상을 이성론(理性論)으로 대표적 성격을 삼아 부르는 것은 그들 사상의 고유한 성격이 그러한 특질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상의 고유성이 있다는 논리도 이와 다름없다. 따라서 한국사상의 실체는 과연 있느냐하는 회의는 마땅히 한국사상의 기본성격 구명(究明)을 위해 전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한국사상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한국사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하는 문제 가운데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歷史的) 생성(生成)과 오늘의 개성(個性)
 
  나는 앞에서 한국사상은 있다는 결론을 도출(導出)했다. 그 한국사상은 우리가 오늘 볼 수 있는 한국사상이요, 역사적 생성과 발달 변모(變貌)의 과정이 그렇게 되는, 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한국사상의 모색’이라는 명제(命題)임을 말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현재 있는 한국사상의 구성요소(構成要素)를 파초(芭蕉)껍질 벗기듯이 벗겨서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원인(原因)을 찾는 것이 아니고, 눈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듯이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그 형성(形成)의 계기(契機)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개개인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존재원인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분의 부모, 부모의 부모, 곧 친조부모, 외조부모로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어 올라가는 속에 여러분의 존재는 묘막(渺漠)한 무(無)에로 망실(忘失)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여러분을 생성(生成)시킨 육체(肉體)와 정신(精神), 생활(生活)과 성격(性格)을 오늘 우리가 알 수 있는 자료를 통해 순차적으로 내려오면서 구명할 때 여러분의 오늘의 존재는 한결 명료(明瞭)히 파악될 것이다. 한국의 사상이라든가, 문화의 탐색방법이 또한 이와 같다.
 
  한 예를 의식주문화(衣食住文化)로서 들어본다. 우리는 옛날에 좌임(左任) 곧 옷고름을 왼쪽에 매는 옷을 입었으나 오늘과 같은 한복양식(韓服樣式)으로 변했고, 옛날엔 고기잡이나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으나 지금은 김치와 된장을 먹고, 움집 귀틀집에 살다가 오늘 보는 초가집,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우리의 의식주생활(衣食住生活)은 중국, 일본, 인도,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한국 독자적(獨自的) 양식을 취했다면 이것은 하나의 한국적 문화(文化)이다.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어떻게 변했든지 역사적으로 생성되어서 오늘의 개성을 지닌 하나의 문화와 사상을 이루었다면 그것이 곧 한국문화요, 한국사상도 이와 같은 것이다.
 
 
  한국사상 기저(基底)와 외래(外來)사상
 
  나는 앞에서 문화와 사상은 복합하고 이동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문화라든가 사상의 복합에는 그 알맹이 되는 문화와 사상이 있다. 이 알맹이 되는 문화와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소화(消化) 해석하며, 융합(融合)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그 민족문화의 양상과 성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합의 알맹이 되는 사상 문화는 그것을 복합하는 민족의 주체되는 종족(種族)의 성향(性向)에 풍토와 역사의 제약이 작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문화나 사상의 이동에는 하나의 문화권(文化圈)이 예상되고 이 문화권은 문화중심지와 문화말초지(文化末梢地)로 나뉘어 그 중심지에서 말초지로 흘러들게 된다. 오늘의 문화권은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지만 고대의 동양(東洋)은 중국과 인도라는 두 문화중심지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이었다. 또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3대 이전의 문화권은 그 중심이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주축으로 한 중국에서 이른바 동이(東夷)의 문화권이 그 중심이었다.
 
  우리 한국의 문화와 사상은 이때부터 발상(發祥)하게 되었다. 중국고대사상 요순우탕(堯舜禹湯)에서 기자(箕子) 백이(伯夷) 숙제(叔齊)에 이르는 적어도 공자(孔子)가 이상으로 삼는 인물과 사상의 시대까지는 이 문화권에 들게 된다. 이 문화권은 동양 최고문화권(最古文化圈)의 하나였으나 쇠퇴되어 나중에 한문화(漢文化)에 압도되고 포함되어 표면에서는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 문화의 기저에 잠재(潛在)한 기본형식(基本形式)으로서 그 뒤에도 줄곧 외래문화의 수용(受容)과 동화변용(同化變容)에 근본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을 지금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외래사상을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는 다른 민족이 그것을 받아들인 것과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이고, 어느 면에 치중하고, 어떻게 변질시켰으며, 토착화(土着化)했느냐 하는 문제 곧 불교사상은 중국, 일본과는 어떻게 다르게 변성시켰으며, 유교사상은 일본과는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였느냐 하는 식으로 찾아보는 것이 한국사상을 모색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원효(元曉), 의상(義湘)의 불교학(佛敎學)이, 세종대왕이나 조광조의 정치사상이, 퇴계나 율곡의 주자학(朱子學)이 다산 정약용이나 수운 최제우의 사회사상이, 모두가 유(儒)불(佛)도(道) 또는 기독교(基督敎)라는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은 그 본바닥에 발전된 것과는 다르게 발전되었으며, 따라서 그 다르게 받아들여진 까닭이 바로 한국의 사상적 전통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사상은 무슨 사상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고방식(思考方式)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그것을 찾아봐야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유문화 또는 재래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는 대개 유교, 불교, 도교를 말하지만 사실 사상적영향의 순서는 도(道) 불(佛) 유(儒)의 순서가 될 것이다. 물론 한자문화(漢子文化)와 함께 유교가 들어오긴 했겠지만 그것은 도교나 불교처럼 종교사상이 아니었고, 서민층을 포함한 국민전체에 미친 영향으로 보아서도 도교, 불교, 유교의 순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도불유(道佛儒)의 사상보다 먼저 우리 자체에 있었던 사상은 샤머니즘이 발달된 백교(白敎, 市敎), 선교(仙敎) 또는 국선(國仙)으로 불리는 사상적 기저였다. 이 샤머니즘은 모든 민족의 원시종교에 공통한 유형이긴 하지만 종교학상 특히 시베리아 제민족의 종교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자연숭배(自然崇拜), 동물숭배(動物崇拜), 정령숭배(精靈崇拜), 주술숭배(呪術崇拜), 조선숭배(祖先崇拜), 천인상즉(天人相卽), 천명사상(天命思想), 장생사상(長生思想) 등으로 우리의 고문헌과 종교사상에 흔히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발달된 문화의 하층(下層)에 뿌리 깊게 잔존해 있는 관념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시인의 심리를 연구함에 아동심리학 또는 동물심리학을 응용하듯이 우리는 이 문명의 심층에 잠재해 있는 이 샤머니즘으로서 우리의 사고방식의 오리지널리티를, 그리고 외래사상 수용과 변성(變成)의 방식을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상은 도 불 유는 물론 기독교까지도 샤머나이즈해서 받아들인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무지한 사람들이 신봉하는 무당교인 샤머니즘을 한국사상의 기저라고 하는 나를 비웃거나 그러한 샤머니즘이 바탕이 된 한국사상을 창피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도 불 유나 기독교까지도 그 발생지 본바닥의 원시종교(原始宗敎)에서 발달된 것이다. 특히 그 원시종교적 모습과 잔재는 오늘까지도 남아 있어 여러분이 발달된 종교로 숭앙(崇仰)하는 기독교 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샤머니즘을 모르고 도교(道敎)를 안다거나 파라문교(波羅門敎) 또는 육파철학(六派哲學)을 두고 근본불교를 말하거나, 유대교(猶太敎)를 제쳐놓고 원시기독교(原始基督敎)의 성립을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교사상까지도 중국적 샤머니즘인 그 고대사상의 발전인 것이다.
 
  우리의 샤머니즘은 도교 불교 유교의 공통된 인자(因子)를 가졌고 그 공통된 인자로서, 자기동화(自己同化)의 계기와 요소를 삼은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사상을 분석하면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도교의 수용문제이다. 우리 사상에서 도 불 유의 3교중 제일 희박한 것이 도교인데 역사상 발달된 종교로서 도교를 우리나라에 수입한 것은 고구려 보장왕 때 3교중 도교가 없다고 해서 중국에 사신을 보내 도사(道士)를 청해 온 것이 처음이다. 그 뒤 도교는 뚜렷한 발전이 없었고, 우리의 선교인 국선이 도교 또는 불교와 혼융(渾融)되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서울 지명에 남은 삼청동(三淸洞), 소격동(昭格洞), 불교사찰에 부속된 칠성각은 도교계통신앙의 잔형(殘形)이다. 조선시대에도 도교는 은둔하는 몇 사람 학자의 이술담(異術譚) 또는 昭格署에서 노자(老子)를 제사지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는 소격서가 천문관청이고 점성술을 관장했기 때문에 도교의 성진숭배(星辰崇拜)가 거기에 결부된 것이다. 도교는 우리 샤머니즘의 자연숭배로서의 일월성진숭배와 장생불사사상(長生不死思想)으로서의 산신숭배(山神崇拜)와 습합(習合)되었다.
 
  중국에서의 도교도 당대(唐代)에 유교와 불교가 서로 교섭하여 종래자기들의 원시종교를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학리적(學理的)근거로 만들었다 뿐이지 그 점을 빼면 샤머니즘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도교의 교조인 노자의 도덕경에도 종교로서의 도교 교리는 한 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교를 우리가 받아들인데 있어 유교나 불교에 비해 어찌 이렇게 희미하냐 하는 원인을 생각해 볼 때 나는 그것을 도교와 우리 선교의 원본적(原本的)인 신상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고, 그 유사성은 극단으로 말해 근원이 같은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일찍이 최남선(崔南善 ), 권상노(權相老), 이능화(李能和), 권덕규(權悳奎)씨도 말한바 있다. 화랑도를 국선(國仙)이라고 했다는 것도 이것은 중국 도교적인 선(仙)이 아니라 국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선은 산(山)자와 인(人)자 즉 산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요, 장생불사사상도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나오는 왕검산인(王儉山人)을 비롯하여 신지선인(神誌仙人), 급의선인(伋衣仙人) 그 뒤의 영랑(永朗) 등 4선의 선(仙)이 같은 것이고 단군의 수(壽)가 1908세란 것은 역사학적으로는 단군이란 이름으로 임금 노릇한 왕조(王朝)의 역년(歷年)이라 해석할 수 있겠지만 종교학적(宗敎學的)으로는 장생불사의 사상이요, 나중에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곧 신선사상(神仙思想)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중국에서도 도교가 태산(泰山)을 성지로 삼은 것이나 도교의 인물 또는 신산에 동이계통(東夷系統)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실의 내증(內證)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예로 보더라도 도교는 우리의 사상 바탕 속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다시 도교가 우리에게 들어와도 하등 새로울 것이 없어서 따로 떠들지 않고 그저 본래 있던 것을 중국의 것과 구별하여 국선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음은 불교(佛敎)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하는 문제이다. 고구려 같은 나라는 대륙과 가까워서 새로운 문화의 물결이 쉴 새 없이 밀려와 그것을 소화시킬 여유가 없이 받아들이기에만 바빴던 느낌이다. 신라는 한쪽에 치우쳐 있어서 3국 중 가장 후진국이었으나 그래도 자기의 문화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신라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는 고유 신앙과의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이차돈(異此頓)의 순교(殉敎)이후에야 비로소 홍통(弘通)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 뒤 신라에는 여러 가지 종파가 들어왔지만 신라의 불교는 화엄종(華嚴宗)으로 개화(開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효를 어느 종파에 넣느냐 하는 것도 상당히 문제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원효와 의상을 해동(海東)화엄종의 초조(初祖)로 병칭(竝稱)하는 것으로 보거나 두 사람이 입당유학을 뜻하고 떠날 때의 당나라가 화엄종의 성시(盛時)였다는 점에서(화엄종은 중국에서 전개된 종파이다) 우리는 화엄사상을 신라불교의 개화로 보고자 한다.
 
  의상은 지엄(智儼)의 종통(宗統)을 받아 환국하였고, 지엄의 뒤를 이은 현수법장(賢首法藏)이 그 저서를 인편에 의상에게 보내어 질정(叱正)을 바랜 서한은 그가 얼마나 의상을 존경했느냐 하는 정성이 문자에 배어 있다. 원효는 의상과 같이 입당 도중 노숙하다가 들판에 고인 물을 마시고 아침에 깨어보니 그것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그는 구토(嘔吐)하려다가 문득 깨달은바 있어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어쨌든 원효는 불교의 모든 종파사상(宗派思想)을 한 솥에 끓였고, 대승불교를 대중 불교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국선불교로 토착불교 또는 민족불교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화엄사상은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이 사상이 신라민족이 갖고 있는 화려한 감성과 샤머니즘의 만신사상(萬神思想)과 결합하기에 용이한 소지가 있었다. 화랑도라든가 석굴암이라든가 통일신라전후 국민정신(國民精神)과 미술문화는 결국 불교를 통해 세련된 고유사상 곧 민족사상과 융합된 불교전신의 소산이었다. 다시 말해 신라사상은 국선불교, 화랑불교, 호국불교(護國佛敎)를 낳았고, 충(忠) 효(孝) 신(信) 애(愛) 용(勇)을 근간으로 하는 유 불 선 혼융의 국민도(國民道)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라 우리 선민(先民)의 슬기롭고 어질고 아름답고 미덥고 용감한 바탕이 외래사상의 그러한 점과 어울려 별개의 맛을 이루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교의 조선숭배(祖先崇拜)도 샤머니즘의 조선숭배와 붙어서 더욱 강세가 되었고, 기독교의 신앙 심리도 무지한 부녀자에게는 샤머니즘과 동격으로 받아졌던 것은 지금도 헤아려 볼 수 있다.
 
 
  한국사상(韓國思想)의 특질(特質)
 
  한국사상의 특질이 무엇이냐 하는 대로 우리의 생각을 약간 멈추어 보기로 하겠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사상의 전개사와 여러 사상가의 저술을 분석하여 성질의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들 수 있는 점은 우리 민족이 항용 생각하는 바와 같이 감각(感覺)이나 정서(情緖)에만 치우친 민족이 아닌 매우 사색적(思索的)인 소질이 높은 민족이란 점이다.
 
  우리는 실학(實學)의 가치를 재래유학(在來儒學)의 부문위학성(浮文僞學性) 곧 현실일탈(現實逸脫)의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반립(反立)하는 면에서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공격의 대상이 된 도학이나 성리학이 도리어 실학과 같은 과학논리의 생성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철학 또는 논리적 사고가 발달되지 않은 곳에 과학의 발달이 더디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성리학의 이기설(理氣說)이나 사칠논쟁(四七論爭)은 공리공론임에는 틀림없으나 그처럼 여러 학자가 오랜 세월을 두고 같은 문제를 갖고 그만치 끈덕지게 파헤쳤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또한 실학자들의 논리의 기초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가 있다. 이 성리학논쟁(性理學論爭)은 상당히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철학논쟁이라 보겠다.
 
  또 다른 하나 한국사상의 특질은 모든 대립된 것을 한 솥에 넣고 끓여서 별다른 하나의 체계를 창출해 내는 절충(折衝)과 융섭(融攝), 수용(受容)과 환원(還元)의 성격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원효의 화쟁사상(和爭思想)이나, 지눌(知訥)의 정혜쌍수사상(定慧雙修思想), 휴쟁(休諍)의 선교융섭사상(禪敎融攝思想) 등이 모두 다 그 좋은 예이다.
 
  최수운(崔水雲)의 사상 같은 것도 유 불 도를 하나의 솥에 넣어 끓여서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사상은 3교를 융합했다고 일컬어지면서도 유 불 도가 합쳐서 천도(天道)가 된 것이 아니고 천도의 일부가 나누어진 것이 유불도라고 해석했다. 당시 천주교의 자극을 받아 그를 섭취하고 도리어 그의 도를 서학(西學)에 반립하는 동학(東學)으로 설정한 것도 이 환원성이 두드러진 표현이다. 최수운의 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은 그의 가학(家學)인 유학이요, 그의 선조인 최고운(崔孤雲)의 선행(仙行)과 원효의 민족불교 사상이었다.
 
  우리는 원효사상과 수운사상을 비교해보면 그 현격한 시대의 차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상으로서의 어떤 공통된 사고형식(思考形式)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단군신화와 신라시대 원효사상, 조선말의 동학사상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부합되는 점이 있는 데는 놀랍다.
 
  끝으로 나는 한국사상의 모색을 위해 먼저 한국사상이란 따로 없다거나 있어도 하잘 것 없는 남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파쇄(破碎)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사상이 어떻게 있느냐하는 우리의 관심은 한국사상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있는 그대로 찾아보려는 것이지 시원찮은 것을 과장(誇張)하거나 좋은 것을 엄폐(掩蔽)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입견을 깨뜨리기 위해서 우리의 모화주의학자(慕華主義學者)와 일본의 어용학자(御用學者),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신봉하던 학자의 한국사상에 대한 사고와 주장을 재수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의 역사부터 새로 바꿔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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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손근호님의 댓글

no_profile 손근호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상계]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지금은 페간이 되었지만 참으로 역사에 남은 책입니다. 남양주시에 연계된 조지훈 시인의 자료 잘읽었습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는 살아남기 위해서
도교와 유교를 완전 거부하고 제 것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도교와 유교를 적당히 받아들이며 민중속으로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
어느 사상이나 문학도 단독으로 홀로 서는 법은 없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들이 뒤섞여서 모방만 일삼았다고 할 수도 없지요.
어느 사상이나 문학이 최악의 불만이 고조되고보면
그곳 바로 최악의 상태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학이 싹트게 됩니다.

**********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긴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리겠습니다.



최경용님의 댓글

최경용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 금일밤도 지새워 탐구하여 보렵니다
 " 사상계"  학창시절과 초급장교 시절 에 즐겨 보기보다는 즐겨 샀지요
그때는 주위 과시용으로 연애할때 들고다니고 장교숙소에 과시용으로 비치하고 할 뿐이었는데
지금 나이먹어 " 사상계" 에 담겨진 옛 추억이 아쉬움과 함께 그리워 집니다

박태원님의 댓글

박태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오늘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선종(조사선)은 중국화된 불교라고 합니다만,
그 선종의 깨달음은 인간적인 석가의 깨달음(불성)이고  우리 선교의 성통공완의
경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가 모든 정신과 사물의 근본이
됩니다. 그것에 이르는 방법과 이치가 세속에 따라 변화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 예술에서 추구하는 진선미가 이러한 정신적인 궁극을 지향할 때 미학적인 감동을
주는 명작이 될수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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