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녀(狂女) >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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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은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8건 조회 2,252회 작성일 2007-07-19 22:36본문
미친 여자.
정신 나간 여자.
실성한 여자.
아니 狂女.
내 머리 속에 어리버리 저장된 마뜩한 단어들을 찾아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그랬다. 나이는 쉰이 갓 넘었을 아줌마. 지저분한 모습에 누더기 옷차림. 까치집을 열두 채도 더 지을 듯한 긴 머리가 엉덩이까지 정리되지 않은 채 헝클어져 있었다. 예의 아줌마들처럼 파마머리 한 번 못해보고 지났을 중년의 나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 아줌마는 거리에 서서 보이지 않는 환영에게 삿대질을 하며 무어라 끊임없이 떠들고 있었다. 종로거리 남들보다 이르게 문을 연 점포의 직원들이 나와서 싱글싱글 웃으며 아침부터 두 번 다시 못 볼 재미난 구경이라도 난 듯 바라보고 있는 그 분들의 모습에 실상 더 가슴이 아팠다.
'누가 그 여인을 정신 나가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 여인을 미치게 만들었을까?'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기억이라면 언젠가 아득한 시간 전에 대법원 뜰에서 만났던 狂女다. 머리를 산발을 하고 아픔을 간직한 젊은 여자는 남루한 모습에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아기를 끌어안은 듯 낡아빠진 가방 하나를 소중히 끌어안고는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길이 노랗게 핀 민들레꽃에 닿아있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그 여인은 너른 대법원 앞에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저울을 들고 있다가 저울질이 잘 못 되는 바람에 狂女로 화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눈가림보다 더한 마음을 가리고 만 그 여인들에게 누가 조소를 보낼 수 있겠는지 생각이 들었다. 그 여인들이라고 비너스로 신사임당으로 나이팅게일로의 삶을 꿈꾸지 않았다고 누가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른 평수에 고급 물건들로 몸이 안정된 삶에 놓여있다고 삶의 정신마저 평화에 정착되었다고 말을 할 수 없다. 우스개 소리로 현대 사회에서 안 미치고 사는 게 이상하다 할 정도로 우린 모두 정신없이 살고 있다. 정신이 없다는 건 정신이 나갔다는 말하고 별반 의미가 다를까 싶다. 삶을 마감하는 날은 그대들의 고통어린 아픔이 미소로 화(化)하여 하늘로 솟아올라 화답하리라 굳게 믿고 싶은 밤이다.
그대들에게 드릴 마땅한 호칭 하나 찾아내지 못한 나의 식견에 한심함을 느꼈던 날이기도 했다. 당신들에게 위로주 한 잔 건네는 이는 없어도 태양은, 달님은, 별님은 우리의 머리 위에도 당신들의 머리위에도 공평히 빛남을 잊지 말기를 바람 해본다. 차 한 잔 마주하고 당신들의 끊임없는 내면의 아우성을 해갈하는 그 날까지 열흘 낮밤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던 날이었다.
댓글목록
최승연님의 댓글
최승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녕하세요!
음악과 글이 잘 어울리네요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하세요
주신글 감사합니다.
전 * 온님의 댓글
전 * 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허탄한 세상, 미치지 않은 사람 있나요? 성한 사람찾기가 더 어렵지요.
그래도 그 여자분은 용기있는솔직한 분입니다.
가슴에 웅크린 감정 하나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요즘, 드물지요.
속에는 다 狂人의 피가 끓고 있는 현실 입니다.
멋진 글에 머물러 봅니다. 행복 하세요..
이미순님의 댓글
이미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은영 수필가님 안녕하세요
어쩜 이렇게 글을 잘 묘사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 뿐 입니다
나도 멋드러지게 수필 한번 잘 쓰고 싶은데...
좋은 글 접하고 갑니다
손근호님의 댓글
손근호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이은영 작가님. 살짝 미소를 짓습니다. 언제나 뵐때 마다. 저 분은. 공주와 마님의 행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만큼 예의가 바르시고 품위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월란님의 댓글
이월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신 없이 살고 있습니다.
정신이 언제 나가버리고 말았을까요
내면의 아우성을 해갈하는 그 날까지 몇 일이고 마주하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날이기도 합니다.
이은영 작가님의 글에 마른 목젖이 조금은 숨이 트인 기분입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에구, 다녀가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 무슨 일들이 숨고르기도 하지 않고 그렇게나 생기는지요.
너무 바빴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즐거운 일들로만 바빴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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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시인님, 머물러 주신 발걸음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날이 무덥고 습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꾸벅! ^^*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 * 온 시인님,
그렇지요? 용기 있는 여자겠지요?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안 미친 적 살아가는 삶이 문득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안개인가요? 스모그인가요? 서울하늘이 아닌 온 도시가 하루종일 잿빛이었습니다.
습한 날씨에 기분까지 눅눅해지시는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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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순 시인님,
부끄부끄~~ ^&^
몸둘 바를 몰라서 휑하니 달아나렵니다.
날씨는 습해도 기분은 쿨하시길요~~ ^^*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발행인님,
에구구~~~, 온통 부족함 투성이인 저를 어여삐 봐주셔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발행인님도 습한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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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란 시인님,
미국은 날씨가 어떤가요?
오늘 같은 날씨는 아! 정말 함께하고 싶지 않은 날이랍니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는 없겠지요? 건강 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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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가신 모든 분들께 살얼음 동동 떠오르는 식혜 한 그릇씩 대접해드리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