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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흐르고 구름은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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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한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5건 조회 2,745회 작성일 2005-03-2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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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흐르고 구름은 머물다


오 한 욱



먼동이 틀 무렵 차창 밖으로 한없이 펼쳐져있는 옥수수 밭이 보인다. 이곳을 중심으로 옥수수 주산지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제법 큰 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연속해서 나타난다. 칭다오(靑島)에서 8시간을 달린 철마는 밤새 달린 탓인지 지친 듯 나를 비롯한 많은 무리의 사람을 태산 역에 토해냈다.

태산 시내는 여느 중국의 도시와 비슷했다. 큰 특징이 없이 콘크리트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고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은 늘 비슷하다. 시내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올라가면 중천문(中天門) 색도정류장에 도착한다. 색도는 우리말로 케이블카를 말한다.

태산에 오른다. 칠천 여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선다. 중국 오천 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무겁게 오른다. 쉽게 오를 수 없다. 이 세상 어느 나라의 역사도 쉽게 이루어진 곳이 없겠지만 특히 중국의 역사는 피와 고난의 역사이기에. 태산의 주위에 있는 산은 대개 경사가 심하지 않다. 그러나 태산의 계곡을 오르며 살펴보니 거의 사십오도 정도의 가파른 경사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한층 높아 보이고 산이 깊어 보일 수밖에. 바위 반, 나무 반으로 중국화에 나오는 산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까. 남천문(南天門)에 이르니 입구에 있는 승선방(昇仙坊) 옆 바위에 “하늘과 땅이 태산에서 만난다(天地交泰)”라고 써있다. 중국인들의 우주관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1,545 미터의 태산으로부터 중국의 정신적 역사가 시작됐으니.

공자는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음을 알았다고 했지만 황제들이 찾아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중국의 영산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댄다. 사람소리에 파묻혔나 생각하며 오르니 한 가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새소리가 없다. 태산에는 새가 떠났나보다. 8월초의 한국 산에 오른다 치면 새소리, 매미소리, 계곡에서 콸콸 노래하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시끄럽다고 느낄만한데 이곳 태산에는 이런 자연의 소리가 사라졌나보다. 그 대신 기암절벽에 붉게 치장하고 나타난 것은 현대 중국지도부 인사들의 붓글씨들이다. 인간의 헛된 욕심들이 태산의 피부에 빨갛게 생채기를 남겨놓은 듯하다.

가져간 물통이 두 개나 없어졌다. 마른 목을 축이면서 오르다 보니 태산의 정상 옥황정이 기다린다. 이천오백 년 전 공자의 일행이 이곳에 다다를 때도 태산은 말이 없이 정중하게 그들을 맞이했으리라. 옥황정(玉皇頂) 부근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경치는 참 좋다. 한라산보다 낮은 1,545 미터의 산이지만 산동성 너른 들판에 우뚝 솟아 있는 태산은 말 그대로 가장 크고 가장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중국정신의 본고장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돌려 옥황정 부근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공자나 중국의 영웅호걸들의 자취를 수천 년 뒤에도 이어가려는 마음으로 역사의 숨결을 눈으로 찍어냈다. 기암으로 둘러싸인 태산의 정상부근에 상서로운 구름이 살짝 덮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이곳을 찾아 힘든 길을 걸어 올라온 시인묵객의 조용한 호흡이 모여 안개가 되어 슬며시 후세 사람들의 옷자락을 붙잡는 양, 구름이 나름대로의 묵화를 그려낸다. 자연의 조화란 저리도 신비로운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내리깐다. 태산의 정기를 내 몸속에 조금 담아볼 요량으로.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끼면서 중국의 숨결을 맛본다. 산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찾아오는 이들은 모두 반기고 사람들이 떠날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는 게 자연이다. 태산이 그랬다. 내가 찾아왔다고, 그런 내가 이제 떠난다고 해도 묵묵부답, 산은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태산을 내려오면서 조금 전 오를 때 어느 계곡 바위에 힘찬 놀림으로 새겨져 있던 글귀를 떠 올린다: “물은 흐르고 구름은 머물다”(水流雲在). 물길은 아래로 흐르는 게 제 성질이고 구름은 멀리 떠난 듯 보이지만 태산 주위에서 머문다. 물길처럼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밀려 내려가는 인파들의 행진 속에 태산의 구름은 자리를 지키고 이제까지 수천 년을 기다려왔는지. 어디선가 아주 멋진 새소리가 들린다.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려 하다 곧 실망했다. 그 새소리를 사람들이 우리 돈 백 원이면 사서 부는 대나무 소리통에서 나는 새소리였다.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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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남하님의 댓글

no_profile 양남하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치 태산을 몸소 나닌 것 처럼 숙연해짐을 느낍니다. 특히,

"“하늘과 땅이 태산에서 만난다(天地交泰)”라는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종교든 학문이든 만나는 곳이 있기에......

잘 상상하고 감수다. 내려가민 연락헙쭈마씸.

양금희님의 댓글

양금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태산에 대해  더불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히 머물다 갑니다.

전승근님의 댓글

전승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눈을 감고 주변의 경치를 상상해 봅니다.
태산을 가 보진 못하였지만 이 글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 속을 거니는 듯 착각에 빠져 드는군요
좋은 글앞에 머물다 갑니다.
건필 건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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