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情과 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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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태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댓글 3건 조회 958회 작성일 2008-04-11 18:07본문
有情과 風流
法門 박태원 (시인. 문학평론가)
사람은 평생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그리워하며 살아가는데, 생명체는 물적, 심적 사랑과 정을 받으며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의 그리움이 어디에서부터 일어나는지 그 근원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사랑과 정이 샘솟는 근원은 무엇인가. 그리움의 생각이 일어나는 시원이 바로 상대가 없는 절대의 나인데, 생각하고 느끼는 상대적인 나와 언제 만나서 합일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나를 생각하되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적적하고 성성한 때이다. 절대아와 상대아가 一合相을 이룬 사람은 풍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풍류는 생명의 무애자재한 흐름이며, 구하고 찾는 것이 더 이상 없는 집착없는 삶이다. 풍류는 가없이 크나 큰 사랑이며,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고귀한 공덕이다.
신라시대의 석학인 최치원은 우리나라에 유불선 삼교를 포월하는 전통적인 현묘한 도가 있으니 그것이 풍류도라 하였다. 화랑들은 명산대천을 찾아들어가 이 풍류도를 닦았으며, 그 공덕을 나라와 백성들에게 회향하였다. 우리나라는 환인, 환웅, 단군을 三聖의 국조로 받들어 모신 유구한 일만년 역사의 나라이다. 문명은 발전하였지만 현대에도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절대아는 생명의 근원이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없는 것이다.
풍류가 담겨있는 시는 언제나 참신한 감동을 준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메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전문)
시인이 찾아 헤메는 것이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그것은 생각하여 말하기 이전의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의 나인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부터 묘하게 존재하였고, 내가 저 세상으로 간다하더라도 버리고 갈 수 없는 것이다. 나와 너가 분리되기 이전의 것이며, 본래부터 짝할 것이 없는 스스로 원만한 것이다. 그것을 찾아 온전한 내가 된다면 이 세상에서 버리고 찾을 것이 없으며, 그리움과 고독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사랑의 화신으로 하늘 끝까지 물결치며 여여(如如)하게 살다 갈 것이다.
철부지 시절
무심코 정말 무심코
널 보내고
망각의 시간 속에 잠기었었는데
반백이 넘은 지금
언제인지
넌 내 가슴 다락방에 슬며시 세 들어 사네
아득했던 그때의 추억이
영상기 돌 듯
하나하나 다가와
그리움이 인화되면 인화될수록
너와 난
숙명처럼 동거하고 있네
(동거 / 이전희 전문)
우리의 가슴 속에는 얼마나 많은 너와 나가 동거하고 있는지. 그것이 영화처럼 슬픔과 기쁨을 안기는 허구일 지라도, 언제나 꿈을 꾸며 사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꿈이란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번뇌가 보리(지혜)가 되어,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으며 행복한 삶을 누리다 가리다.
法門 박태원 (시인. 문학평론가)
사람은 평생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그리워하며 살아가는데, 생명체는 물적, 심적 사랑과 정을 받으며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의 그리움이 어디에서부터 일어나는지 그 근원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사랑과 정이 샘솟는 근원은 무엇인가. 그리움의 생각이 일어나는 시원이 바로 상대가 없는 절대의 나인데, 생각하고 느끼는 상대적인 나와 언제 만나서 합일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나를 생각하되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적적하고 성성한 때이다. 절대아와 상대아가 一合相을 이룬 사람은 풍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풍류는 생명의 무애자재한 흐름이며, 구하고 찾는 것이 더 이상 없는 집착없는 삶이다. 풍류는 가없이 크나 큰 사랑이며,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고귀한 공덕이다.
신라시대의 석학인 최치원은 우리나라에 유불선 삼교를 포월하는 전통적인 현묘한 도가 있으니 그것이 풍류도라 하였다. 화랑들은 명산대천을 찾아들어가 이 풍류도를 닦았으며, 그 공덕을 나라와 백성들에게 회향하였다. 우리나라는 환인, 환웅, 단군을 三聖의 국조로 받들어 모신 유구한 일만년 역사의 나라이다. 문명은 발전하였지만 현대에도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절대아는 생명의 근원이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없는 것이다.
풍류가 담겨있는 시는 언제나 참신한 감동을 준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메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전문)
시인이 찾아 헤메는 것이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그것은 생각하여 말하기 이전의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의 나인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부터 묘하게 존재하였고, 내가 저 세상으로 간다하더라도 버리고 갈 수 없는 것이다. 나와 너가 분리되기 이전의 것이며, 본래부터 짝할 것이 없는 스스로 원만한 것이다. 그것을 찾아 온전한 내가 된다면 이 세상에서 버리고 찾을 것이 없으며, 그리움과 고독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사랑의 화신으로 하늘 끝까지 물결치며 여여(如如)하게 살다 갈 것이다.
철부지 시절
무심코 정말 무심코
널 보내고
망각의 시간 속에 잠기었었는데
반백이 넘은 지금
언제인지
넌 내 가슴 다락방에 슬며시 세 들어 사네
아득했던 그때의 추억이
영상기 돌 듯
하나하나 다가와
그리움이 인화되면 인화될수록
너와 난
숙명처럼 동거하고 있네
(동거 / 이전희 전문)
우리의 가슴 속에는 얼마나 많은 너와 나가 동거하고 있는지. 그것이 영화처럼 슬픔과 기쁨을 안기는 허구일 지라도, 언제나 꿈을 꾸며 사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꿈이란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번뇌가 보리(지혜)가 되어,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으며 행복한 삶을 누리다 가리다.
추천3
댓글목록
엄윤성님의 댓글
엄윤성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유정과 풍류...
잘 배우고 갑니다.
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부는 해도해도 끝이 없나봅니다.
배움 하나 챙겨갑니다.
감사합니다. 박태원 시인님~~ ^^*
금동건님의 댓글
금동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유정과 풍류 의 주신글에
많이 배우며 깨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