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사랑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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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영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466회 작성일 2010-01-08 07:34본문
새와 사랑의 의미
김영우(시몬)
새들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기에 여러 새들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사연을 전해주었습니다.
미관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하고 슬픔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새는 우리에게 자신을 먹이로 제공하기도하고
성서적으로는 영성적 교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새야, 새야 파란 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배 곱았던 그 시절을 노래했던 옛 조상들의 생활을 상기해 봅니다.
청포도 울린 새, 아미 새. 참새. 사랑 깊은 펠릭스 새 부활을 장식하는 피닉스 새,
우리인간은 이러한 여러 종류의 새들과 깊은 사랑으로 인연을 맺고 살아왔습니다.
요사이 유행하는 현철의 노래 아미 새가 등장했습니다.
신 그루 사랑인가 아미 새야 아미 새야 하며 아름답고 미운 새를 노래합니다.
대 자연을 사랑하고 특별히 참새를 좋아했던 환경론자인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도
참새와 함께 태양의 노래를 불렀던 신비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철학자요 신학자이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도 “성체 찬미”에서
주 예수 사랑 깊은 펠리칸 이여!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찬사는 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의 “오월의 밤” 시의;
내용에 등장하는 새를 펠리칸 새로 성찬에 참여시켰던 것입니다.
어미 새 펠리간은 갓 낳은 굶주린 새끼들을 해변에 놓아두고
먹이를 구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오랜 여행에도 단 한줌의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옵니다.
여행에 지친 어미 새 펠리칸이 저녁 안개 속에서 갈대숲으로 돌아올 때
굶주린 새끼 떼들은 어미 새에게 몰려옵니다,
그러나 어미 새는 목을 흔들면서 늘어진 날개 속으로 새끼들을 포옹합니다.
그다음 순간 어미 새는 해변에 누운 채 자신의 심장을 새끼의 먹이로 내어놓았습니다. 어머니의 심장과 내장이 새끼들의 입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어미 새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자신의 심장과 생명을 주면서까지 또 하나의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남김없이 내어주신
한없는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 자체인 하느님은 미물 같은 새들에게도 깊은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과연 어떠한 사랑실천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부활을 상징하는 에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의 이야기 로
후기 그리스도의 문학과 성 미술과 모자이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집트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는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인 예수의 부활로 피닉스 새의 신화를 연결 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 피닉스 새는 헬리오 풀리스 “태양의 도시”에서 500년 동안 사는데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아라비아로 날라 가서 유향과 몰약과 다른 향로들로
등우리를 만들고 그 등우리 안에 들어가서 죽은데 죽은 몸에서 애벌래가 나와
죽은 어머니의 살을 먹고 자랍니다.
점점 자라서 날개가 나오고 튼튼해지면 어머니의 뼈들이 들어있는
등 우리를 가지고 어미의 고향인 에집트의 헬리오 풀리스로 날라 와 다시 500년을 산다는 것입니다.
500년 수명자체도 길지만 죽은 어미의 몸에서 새끼가 나온다는 점에서 성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과 새는 이러한 깊은 사연에서 하느님의 선물인 사랑으로 연결시켜주셨고
주님의 신비 속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와 성체의 상징으로 까지 승화 시켜
우리들의 형제/자매로 새와의 관계를 맺어 주셨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평화의 사도<2006년 9/10월 호에 등재>
김영우(시몬)
새들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기에 여러 새들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사연을 전해주었습니다.
미관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하고 슬픔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새는 우리에게 자신을 먹이로 제공하기도하고
성서적으로는 영성적 교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새야, 새야 파란 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배 곱았던 그 시절을 노래했던 옛 조상들의 생활을 상기해 봅니다.
청포도 울린 새, 아미 새. 참새. 사랑 깊은 펠릭스 새 부활을 장식하는 피닉스 새,
우리인간은 이러한 여러 종류의 새들과 깊은 사랑으로 인연을 맺고 살아왔습니다.
요사이 유행하는 현철의 노래 아미 새가 등장했습니다.
신 그루 사랑인가 아미 새야 아미 새야 하며 아름답고 미운 새를 노래합니다.
대 자연을 사랑하고 특별히 참새를 좋아했던 환경론자인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도
참새와 함께 태양의 노래를 불렀던 신비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철학자요 신학자이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도 “성체 찬미”에서
주 예수 사랑 깊은 펠리칸 이여!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찬사는 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의 “오월의 밤” 시의;
내용에 등장하는 새를 펠리칸 새로 성찬에 참여시켰던 것입니다.
어미 새 펠리간은 갓 낳은 굶주린 새끼들을 해변에 놓아두고
먹이를 구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오랜 여행에도 단 한줌의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옵니다.
여행에 지친 어미 새 펠리칸이 저녁 안개 속에서 갈대숲으로 돌아올 때
굶주린 새끼 떼들은 어미 새에게 몰려옵니다,
그러나 어미 새는 목을 흔들면서 늘어진 날개 속으로 새끼들을 포옹합니다.
그다음 순간 어미 새는 해변에 누운 채 자신의 심장을 새끼의 먹이로 내어놓았습니다. 어머니의 심장과 내장이 새끼들의 입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어미 새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자신의 심장과 생명을 주면서까지 또 하나의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남김없이 내어주신
한없는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 자체인 하느님은 미물 같은 새들에게도 깊은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과연 어떠한 사랑실천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부활을 상징하는 에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의 이야기 로
후기 그리스도의 문학과 성 미술과 모자이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집트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는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인 예수의 부활로 피닉스 새의 신화를 연결 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 피닉스 새는 헬리오 풀리스 “태양의 도시”에서 500년 동안 사는데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아라비아로 날라 가서 유향과 몰약과 다른 향로들로
등우리를 만들고 그 등우리 안에 들어가서 죽은데 죽은 몸에서 애벌래가 나와
죽은 어머니의 살을 먹고 자랍니다.
점점 자라서 날개가 나오고 튼튼해지면 어머니의 뼈들이 들어있는
등 우리를 가지고 어미의 고향인 에집트의 헬리오 풀리스로 날라 와 다시 500년을 산다는 것입니다.
500년 수명자체도 길지만 죽은 어미의 몸에서 새끼가 나온다는 점에서 성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과 새는 이러한 깊은 사연에서 하느님의 선물인 사랑으로 연결시켜주셨고
주님의 신비 속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와 성체의 상징으로 까지 승화 시켜
우리들의 형제/자매로 새와의 관계를 맺어 주셨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평화의 사도<2006년 9/10월 호에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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